지난 3월26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공립학교 예산 확충 요구 시위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3월26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공립학교 예산 확충 요구 시위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3월24일부터 4월4일까지 열흘간 스페인과 프랑스에 책을 팔러 다녀왔다. 스페인에서는 마드리드에서 진행된 마따데로 축제 중 문학 분야인 ‘Capitulo Uno’(제1장) 행사에 참가했다. 주마드리드 한국문화원에서 주관하고 아시아 전문 서점 ‘세르반테스 이 캄파냐’가 진행한 북토크도 참여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마드리드에서도 데모를 했다. 

행사 후 조금 여유가 생겨서, 동행한 남편이 미술관에 가자고 해서 관광을 나섰다. 그런데 숙소 근처의 왕복 6차선 대로에 녹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티셔츠와 현수막에는 Escuela publica de todos para todos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지만 publica는 뭔가 공공 영역 얘기인 것 같아서 얼른 번역기를 찾아봤다. “모두의 모두를 위한 공교육!” 이것은 중요한 의제다. 그래서 미술관을 포기하고 행진을 따라나섰다. 내가 미술관보다 행진이 재미있다고 주장하자 남편도 행진을 따라나섰다. 남편도 데모꾼이고 나와 남편 모두 대학강사 출신이라서 교육 의제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행진 참가자들은 연령도 성별도 장애/비장애 여부도 제각각이었다. “모두의 모두를 위한 공교육”이 적힌 녹색 티셔츠만이 공통점이었다(티셔츠 나도 갖고 싶다). 나는 손팻말과 현수막과 깃발에 적힌 “초등교육 민영화 반대” 등 주장을 열심히 번역기에 돌려 해석하고 “누구누구 물러나라” 등 구호에 나오는 이름을 검색했다. 그때 유아차를 밀며 느긋하게 행진하던 어떤 남성이 나와 남편에게 이게 무슨 행진인지 아냐고 영어로 물었다. 내가 대충 공교육 얘기인 것 같다고 대답했더니 남성이 기뻐하며 공립학교 예산에 관한 집회라고 설명했다. 

스페인도 한국과 비슷하게 공교육 예산에서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부분이 있고 지방정부가 책임지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교육예산에서 지방정부가 책임지는 비중이 늘면서 가난한 지역과 부유한 지역 간 교육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도 한국과 정말 비슷하게 마드리드, 즉 ‘수도권’에 모든 자원이 몰려 있다. 마드리드 안에서도 부유한 학구와 가난한 학구 간 격차가 굉장히 벌어져 있다는 것이다. 내게 설명한 남성도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자신의 소속 학교는 너무 가난해서 교사들에게 업무용 컴퓨터를 지급해 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한국도 똑같다고 나와 남편은 맞장구쳤다. 행진을 한참 따라갔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을 정도로 인원이 계속 늘었다. 6차선 대로 전체가 행진 인원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경찰은 맨 앞에 두 명 정도밖에 없었다. 반대편에서 오던 자동차들은 두 경찰이 안내하는 대로 방향을 돌리거나 다른 경로를 택했다. 일요일 저녁 수도 한복판의 대로를 시위대가 점거했는데 아무도 항의하거나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그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고, 조금은 부러웠다. 행진 대열은 즐겁게 구호를 외치며 교육부 쪽으로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나와 남편은 미술관 앞에서 행진 대열과 작별했다. 공립학교 교사들은 나라의 기둥이다. 녹색 티셔츠를 입은 교육 활동가들이 정당한 예산을 쟁취하기를 기원한다.

지난 4월16일 경기도 안산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9주기 세월호 기억식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4월16일 경기도 안산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9주기 세월호 기억식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한국에 돌아와 4월16일 9주기 세월호 기억식에 다녀왔다. 3년 만에 방역 규제가 풀려서인지 화랑유원지에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조금 기뻤다. 안산시에서 대단히 신경 써서 준비한 것 같았다. 유가족 안내 부스 천막과 416합창단 등 공연자들이 대기하는 천막 외에도, 지난해엔 없던 일반 시민 안내 부스가 두 개나 있었고 상황실 천막도 따로 있었다. 일반 시민 안내 부스에서는 기념품을 나눠줬다. 나는 받지 않았다. 대신 1시40분쯤부터 2시30분 정도까지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 입구 앞에서 안산 엄마의 노란손수건, 세월호 광주 시민상주모임 등 시민단체 분들과 함께 피켓팅을 했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 등의 문구를 한 글자씩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쓴 피켓이었는데 나는 “는” 담당이었다. 

이번 9주기 기억식엔 10.29 참사 유가족들도 왔다. 기억식 중 단원고 2학년 5반 고(故) 이창현군 어머니가 10.29 참사 유가족 어머니와 함께 촬영한 영상이 송출됐다. 창현군 어머니는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등 다른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면 ‘우리가 열심히 싸우지 않아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고 미안해했는데, 이번에 10.29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니 그 생각이 나더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열심히 싸웠거든요.” 창현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여기까지 듣고 우느라고 뒤는 못 들었다. 세월호 가족들 정말 열심히 싸우셨다. 내가 안다. 그런데 진상규명은 아직도 멀었고, 159명이나 또 사망하고, 참담하고 억울한 유가족이 또 늘고, 책임지고 사과해야 할 공공기관이 아주 당당하게 참사 분향소를 없애겠다는 막말을 하고, 답답하다.

이어 304인 시민 합창단이 기억합창 공연을 했고, 노래가 끝날 때 304명의 이름을 하나씩 적은 노란 손팻말을 들어 올렸다. 무대 전체가 노란 꽃잎 같은 손팻말로 뒤덮였다. 

2014년 7월 광화문 광장에 부모들이 가져왔던 바람개비를 생각했다. 노란 바람개비 날개에 아이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부모들이 좁은 화단에 바람개비를 꽂아뒀는데 여름 장맛비에 바람개비가 바람이 아닌 빗방울을 맞으며 돌았다. 아이들은 물속에서 죽고, 아이들 이름이 적힌 바람개비는 비에 흠뻑 젖었다. 단원고 2학년 6반 고 이영만군의 형이 추도사에서 “물 밖도 차고 깜깜하다”고 말해서 그 비에 젖은 바람개비가 또 생각났다. 

쌍용자동차 국가손해배상 및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 국가손배대응모임,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경찰청 앞에서 연 쌍용차 국가손해배상 사건에 대한 소송중단 촉구 기자회견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쌍용자동차 국가손해배상 및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 국가손배대응모임,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경찰청 앞에서 연 쌍용차 국가손해배상 사건에 대한 소송중단 촉구 기자회견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4월17일엔 서울 서대문경찰청 앞에서 쌍용차지회 동지들의 국가손배소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2022년 11월30일 대법원은 2009년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에 경찰이 기중기와 헬기를 동원해 진압 작전을 벌인 행위가 과잉 진압이었으며 쌍용차 노동자들의 저항은 정당방위였다고 판시하고 국가손배소를 파기환송했다. 그전까지 경찰청은 “대법원 선고를 듣고 결정하겠다”는 모호한 입장이었는데,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아직까지 손배소를 철회하지 않았다. 이미 대법원이 경찰 과잉진압, 노동자의 정당방위라고 판결했는데, 과잉진압 비용을 피해자보고 물어내라는 손배소는 어불성설이다. 

조문경 전 쌍용차/현 KG모빌리티 소속 노동자는 재판(파기환송심)을 또 해야 한다는 말에 “몸이 땅으로 꺼지는 것 같았다”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김득중 쌍용차지회 지부장과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 박래군 인권활동가 세 명이 민원실에 면담 요청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은 무사히 끝났다. 바로 지난달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지회 동지들이 대구 법원에 재판 촉구 요청서를 내러 갔다가 경찰에 가로막혀 한참 고생했던 걸 생각하고 긴장했는데, 서울 경찰은 다행히 아무도 막지 않았다. 

국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국가는 인간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적어도 자국 영토 안에서 사람들이 어이없는 참사로 이유 없이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 아니다. 생계를 위해 노동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위협하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 아니다. 국가의 역할은 사람이 건강하고 정당하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인간을 차별없이 교육하고 보호하고 삶의 선택지를 최대한 늘려주고 안전한 삶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심지어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참사가 일어나고, 혹은 공권력이 참사를 일으키고, 오히려 정부와 공공기관이 나서서 피해자를 탓하고 유가족을 모욕하고 사찰하는 국가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저항한다. 나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안전하고 정상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나중에 언젠가, “너는 그때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라는 질문 앞에 당당할 수 있도록,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나는 계속해서 요구하고 행동하고 투쟁할 것이다. 

세계적 권위 문학상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가 우리 사회 곳곳의 차별과 폭력에 대한 저항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월간데모’로 독자들을 만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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