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최고 화제 드라마 ‘닥터 차정숙’
좋은 엄마·아내·며느리에 충실했지만
존중받지 못했던 여성
인생 성찰·존중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여성상

*이 글에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엄정화 주연 JTBC 메디컬 코미디 드라마 ‘닥터 차정숙’ ⓒJTBC
엄정화 주연 JTBC 메디컬 코미디 드라마 ‘닥터 차정숙’ ⓒJTBC

최근 막을 내린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정숙(엄정화)은 여성이 관계성을 통해 어떻게 자신을 성장시키는지를 매우 잘 보여준 인물이었다. 정숙은 가부장 사회에서 규정한 관계 속에 살다, 점차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고 마침내 자신과 타인을 모두 존중하며 스스로를 통합해 낸다. 드라마 속 정숙의 삶은 여성이 어떻게 스스로를 정의 내리는지, 또한 여성에게 ‘관계’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하게 했다. 정숙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가부장제 하의 여성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주인공 차정숙(엄정화). ⓒJTBC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주인공 차정숙(엄정화). ⓒJTBC

드라마 초반 정숙은 가부장제에 매우 잘 적응한 여성이었다. 1회에서 정숙은 비혼으로 살며 피부과 의사로 성공한 친구 미희(백주희)가 “의사면허가 아깝지도 않냐”고 묻자, 이렇게 답한다. 

“하나도 안 아까운데. (...) 애 둘 부지런히 낳아서 키워서 사람들 둘 만들어 놨어. (..) 나처럼 사람 둘 만들어 키우는 것도 미래지향적이고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는 것 아니냐.”

가족 안에서의 관계에 몰두하는 정숙의 모습은 여성들이 가부장제에서 주어진 역할과 쉽게 동일시하는 면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관계’가 중요한 정숙답게 ‘관계’를 통해 ‘현타’를 얻는다.

정숙은 급성 간부전을 앓으며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상황에 처한다. 가족 중 정숙에게 간이식 가능한 사람은 오직 한 명 남편 인호(김병철)뿐이다. 인호는 정숙에게 자신의 간을 내어주는 것이 ‘아깝기만’ 하다. 우여곡절 끝에 다른 환자의 간을 이식받고 돌아온 후에도 정숙의 가족들은 정숙의 존재 자체를 환영하기보다는 자신들이 ‘편리해’졌다는 데 안도한다. 정숙은 그런 가족들을 바라보다 질문한다.

‘우아하고 완벽했던 나의 아름다운 가족. 그들에게 난 무엇이었을까’ (2회)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가족과 맺었던 관계가 진정한 ‘존중’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고는 변화를 결심한다. 오랜 꿈이었던 의사 생활을 다시 시작하기로 말이다.

스스로를 정의하는 과정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한 장면. ⓒJTBC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한 장면. ⓒJTBC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한 정숙은 레지던트 수련 중에도 ‘관계성’을 한껏 발휘한다. 돌봐야 하는 환자들과 진심으로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나누며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들을 살려낸다. 의료봉사 현장에서는 주부로서의 경험을 발휘해 건강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의 일상을 돌보기도 한다(9회). 이런 면들은 그녀의 관계 속 자아가 강점으로 활용된 부분이었다.

하지만, 정숙이 관계를 배려하는 방식은 때로는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정숙은 자신의 부재에 불편을 느끼거나 의사 생활을 반대하는 가족들을 설득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잠잘 시간도 부족한 병원 생활을 하면서도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게 집에 올 때면 살림을 하고, 고3인 딸 이랑(이서연)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심지어 이랑이 힘들어하자 진지하게 일을 그만둘까 생각도 해본다(5회). 6회에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남편에게 “날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줘”라고 허락을 구하기도 한다.

이런 정숙에게 또 한 번 ‘현타’를 가져다 준 사건은 남편의 외도다. 정숙은 인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동안 자신이 소중히 여겨온 관계에서 정작 ‘자기 자신’은 소외되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제 정숙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 또한 존중하기 시작한다.

나 자신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통합하다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주인공 차정숙(엄정화). ⓒJTBC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주인공 차정숙(엄정화). ⓒJTBC

자신과의 관계를 돌보면서 정숙은 단호하고 명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천해간다. 더 이상 허락을 구하지 않고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하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인호가 다른 자식까지 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분풀이를 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존중한다. 그리고 인호에게 이렇게 이혼 통보를 한다.

“이 모든 게 그냥 당신 혼자 잘못만은 아니라고. 옳고 그른 걸 가르치지 못한 당신 어머니. 그리고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허용적이었던 나 역시 그 책임에서 가벼워질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 나는 결정을 했어. 우린 이제 정민이 이랑이 부모로서만 존재해도 괜찮을 때가 온 것 같아. 애들 아빠로서의 당신은 봐줄 수 있어. 하지만 남편으로서의 당신은 이제 난 아무 의미가 없어. 난 이제 당신 미워하고 싶지도 않고 미워할 필요를 못 느껴. 우리 두 사람 이미 끝났어. 난 이제 이 마음의 지옥에서 해방되고 싶어. 헤어지자. 이혼해.” (12회)

이는 정숙이 분노와 배신감 때문이 아닌 스스로를 위해 이혼을 선택했음을 매우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동시에 정숙은 이혼으로 인해 상처받을 아이들의 마음도 살핀다. 13회 정숙은 아이들에게 각자 거취에 대한 의견을 물으며 마음을 매만져주고, 16회에는 인호의 외도상대였던 승희(명세빈)의 딸 은서(소아린)에게도 “이 모든 상황은 전부 어른들 잘못”이라며 “절대로 네 탓이 아니니 해맑고 즐겁게 지내”라고 당부한다. 자신을 존중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마음도 헤아리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결국 정숙은 인호와 이혼을 한다. 하지만, 자신이 헌신했던 결혼생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16회 합의 이혼 후 자신에게 사과하는 인호에게 “다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어. 좋은 기억도 있어”라며 결혼생활 역시 자신의 삶으로 통합한다. 그리고 마침내 전문의를 따고, 주부로서의 경험까지 살린 ‘건강 카페 겸 의원’을 차리며 환자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의사로서의 길을 걷는다. 물론, 엄마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면서 말이다.

‘닥터 차정숙’의 정숙은 여성의 관계성이 어떻게 자기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지를 잘 보여준 인물이었다. 삶의 위기에서 타인과 자신을 모두 존중한 정숙의 선택들은 주변 인물도 변화시킨다. 철부지 남편 인호는 자신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는지를 깨닫고 참회하며, 비록 툴툴대긴 하지만 의료봉사에도 적극적인 참여하게 된다. 이처럼, 자신과 타인을 잘 돌볼 줄 아는 여성들의 모습은, 스스로를 지켜낼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실에서도 정숙과 같은 여성들이 많아지길, 그래서 우리 사회도 조금 더 서로를 잘 돌보는 곳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JTBC 메디컬 코미디 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2023년 상반기 케이블TV 최고 화제작이다. 40대 여성의 경력 복귀·성장 서사에 엄정화, 김병철, 명세빈 등 배우들의 열연으로 인기를 끌었다. 최고 시청률을 거듭 경신했고, 최종회도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 최고 시청률 19.383%를 기록했다.

의대 졸업 후 20년 넘게 가정주부로 살던 주인공 차정숙(엄정화)은 생사의 고비를 넘긴 후 꿈을 좇아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1년 차로 복귀한다. 출생의 비밀, 고부 갈등, 불륜 등 요소가 더해진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현실적인 커리어, 인간관계, 결혼, 육아 고민도 다룬다. 차정숙은 불륜 남편의 따귀를 날리고 이혼을 요구하고, 희생을 요구하는 가족들에게 “엄마도 한 번쯤은 나 자신으로 살아보고 싶다” 선언하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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