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주의가 초래한 기후위기 시대, 갖은 차별과 갈등 너머 공존의 시대로 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이날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앞으로 인류가 걸어가야 할 길을 엿볼 수 있었다.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국내 최대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이 개막했다.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향한 열망 가득한 관람객들로 붐볐다.
연차를 내고 도서전을 찾은 직장인부터 아이들의 책을 구경하러 온 학부모, 출판계 동향을 살피기 위한 관계자까지. 코로나19 이후 방역 조치가 전면 해제된 만큼 책을 찾아 나선 이들이 많았다.
특히 이날 행사 개막식에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도 참석해 축사하며 활기를 더했다.
이번 도서전은 방역 조치가 해제된 이후 첫 행사인 만큼 규모가 커졌다. 지난해보다 3배 늘어난 36개국 530개사의 출판사와 출판 단체가 참여했다. 주빈국인 샤르자를 비롯해 캐나다, 스페인 등 해외 국가의 참여도 늘어 170개 해외 출판사의 부스를 만나볼 수 있었다.
주제전시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에는 도서전측에서 선정한 600권의 도서가 소주제별로 진열돼 있었다. 인종차별, 젠더갈등 등의 폭력성과 비윤리성을 비판하는 책부터, 동물권과 돌봄 등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까지 두루 만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거나 여성서사를 별도로 모아 소개하는 출판사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퀴어의 삶을 조명하는 독립출판사,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던 엄마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다양성, 돌봄까지 소외된 모든 것들로 주제를 확장해가고 있는 독립잡지도 눈길을 끌었다.
한편, 독특한 컨셉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부스들도 있었다. ‘파인 다이닝’처럼 계절에 맞춘 도서를 모아 소개하거나, 빵집, 편의점 등 상점처럼 꾸민 출판사도 있었다. 자신과 동일한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만날 수 있는 ‘생일책’ 부스에도 인파가 몰렸다.
슬램덩크 부스도 길게 줄이 늘어서며 기대 이상의 인기를 얻었다. 대원씨아이 관계자는 “사실 ‘슬램덩크’가 이미 많이 판매됐고 이번 도서전은 팬들을 만나는 기회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준비했던 굿즈도 거의 동나서 주말이 되면 판매할 물량이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슬아 작가가 대표로 있는 출판사 ‘헤엄’ 역시 독립출판사 중에서는 가장 긴 대기줄을 자랑하며 인기를 과시했다.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적 식생활’을 맛볼 수 있는 ‘기후미식’ 부스도 꾸며졌다. 비건 김치, 비건 와인, 대체육 등 다채로운 대안 식료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참여했다. 관람객들이 직접 맛보거나 설명을 들으며 제품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한편, 이날 도서전 개막식에서는 한차례 소동이 발생했다. 오정희 소설가를 도서전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에 대해 한국작가회의 등 문화예술단체들이 비판하며 개막식 행사장에 진입을 시도했고, 대통령 경호처가 이를 제지하며 개막식에 앞서 일대가 소란스러워지는 등 혼란이 이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