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아내가 면요리를 좋아한 덕에 내가 해보지 않은 메뉴는 거의 없을 정도다. 비빔국수, 멸치국수, 칼국수, 짬뽕, 짜장면, 막국수, 우동…특히 국수의 계절 여름이면 하루종일 더위와 씨름하다가 귀가한 터라 냉국수 요구가 많다.

“형아, 오늘 국수 해줄 수 있어요?”

“무슨 국수? 말만 해. 콩국수, 막국수, 메밀국수…”

나가 사 먹으면 내 몸이야 편하겠지만 이제 막 퇴근한 아내가 다시 무더위를 뚫고 외출하는 것도 어렵고 우리 형편에 먹고 싶을 때마다 외식하는 것도 무리다. 아니 우리 가풍(?)과도 거리가 멀다. 아내가 늘 하는 말마따나, 만사형통, 즉 만사가 형(나)을 통해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음, 냉모밀.”

“오케이, 잠깐만 기다려요.”

나는 물을 끓여 놓고 고명 준비를 한다. 무를 강판에 갈고 김가루를 만들고 쪽파를 다져 연겨자와 함께 그릇에 담아 놓는다. 쯔유는 생수와 1:3 정도의 비율로 희석한다.

외식은 번거롭고 경제적으로 부담도 되지만 쯔유를 만들어놓으면 냉모밀 정도는 10분이면 충분하다. 쯔유는 쓰임도 많고 만들기도 어렵지 않다. 양파, 대파 등의 야채를 불에 구운 뒤 표고버섯과 다시마 우린 물에서 20분 정도 끓인다. 물이 절반쯤 쫄면, 간장, 설탕, 식초를 추가해 조금 더 끓이다가 다랑어포를 살짝 담그는데 사실 음식점 찾아가는 노력과 시간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게다가 한 번 만들면 10번이고 20번이고 냉모밀을 즐길 수 있다.

엔데믹에 들면서 외식비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동네 갈비탕은 1년 새에 4000원이 올랐고 어느 식당에선 콩국수 한 그릇에 15000원이나 한다. 4000원 짜장면도 사라진 지 오래다. 세상 물가가 모두 오르는 판에 외식비라고 가만있으랴마는 넉넉하지 못한 서민들 입장에선 갑갑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유명 맛집의 맛을 집에서 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맛집의 맛만 맛이겠는가. 요리를 하며 깨달은 바가 있다면, “맛은 절대 틀리지 않다. 그저 다를 뿐이다”는 사실이다. 맛을 좌우하는 특성은 다양하다. 짜거나 싱겁게 먹는 사람이 다르고, 식당 분위기, 차림새도 맛에 한몫을 한다. 한식파라면 유명한 파스타, 피자도 된장찌개만 못하고, 채식주의자에겐 고급 소고기보다 상추 한 잎을 찾을 것이다. 결국 제 입맛이 최고의 맛이다.

“사람들이 ‘엄마의 손맛, 엄마의 손맛’ 하는데 도대체 엄마의 손맛이 뭡니까? 그게 다 미원 맛이에요.” 언젠가 유명 요리사의 얘기에 실소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상적인 맛이라는 자체가 허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점에서 미식가나 식도락가를 “맛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정의한 황석영에게 고개를 끄덕여도 본다.

우리 가족이 집밥을 찾는 이유도 내가 요리를 잘해서가 아니라, 늘 그들 입맛에 맞춰주려 애쓴 덕이 더 클 것이다. 내 음식에 익숙해진 것이다. 요리가 어찌 생계와 식도락만을 위한 도구이겠는가. 요리란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도구다. 내가 주머니를 털어 맛집 요리를 사주면 가족은 셰프의 솜씨에 감탄하겠지만 집에서 음식을 해주면 내 정성과 사랑에 감복하고 감응한다. 나로서는 후자에 운명을 걸 수밖에 없다. 내 돈 내고 가족 입으로 셰프 칭찬 듣고 싶지는 않다.

“형아, 날도 더운데 콩국수 가능해요?”

물론이다. 서리태를 갈아서 콩국도 만들어 놓았다.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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