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큐 ‘수라’로 돌아온 황윤 감독
군산 ‘수라갯벌’ 7년 기록해
환경영화제 대상·서독제 관객상

“모두 포기한 갯벌을 20년간 기록한 사람들
춤추는 도요새·쇠제비갈매기 가족
갯벌의 생명들 덕에 힘내 만든 영화
소중한 삶터, 신공항으로 사라져선 안 돼”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로 돌아온 황윤 감독. ⓒ스튜디오 두마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로 돌아온 황윤 감독. ⓒ스튜디오 두마 제공

‘죽은 뻘’인 줄 알았는데 살아 숨 쉰다. 저어새, 넓적부리도요, 흰발농게 등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소중한 삶터다. 새만금신공항 예정지인 남수라마을 인근 갯벌과 연안 습지인 ‘수라갯벌’ 이야기다. 수라란 ‘비단에 새긴 수’를 뜻한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물길이 막힌 지 15년이 넘었건만 생명은 강하다.

지난 21일 개봉한 황윤 감독의 ‘수라’는 수라갯벌의 경이로운 7년을 기록한 다큐 영화다.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작을 받았다. 갯벌 생태계 보전의 당위성을 앞세우기보다, 인간과 갯벌의 생명체들이 공존해 온 시간과 그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하늘을 덮는 철새들의 군무, 붉은 물결이 춤추는 것 같은 칠면초 군락지, 쇠검은머리쑥새의 노래가 주는 여운이 길다. 

“30년째 계속되는 토건 사업에서도 살아남은 마지막 갯벌에 대한 영화예요. 단지 관객이 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영화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영화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영화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영화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황 감독은 2014년부터 전북 군산에서 살고 있다. 이듬해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을 만나면서 카메라를 들고 갯벌 곳곳을 누볐다. 오 단장 아들 오동필 씨, 정희정 박사, 김경완 문화인류학자, 유승호 사진작가, 이성실 어린이책 작가 등 군산 일대 갯벌 생태계를 지키고자 활동해 온 조사단 멤버들도 영화에 등장한다. 2003년부터 20년째 매달 자기 시간과 돈을 들여 갯벌을 조사하고 기록해 온 사람들이다. 

최근 정부가 수라갯벌에 공항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시민·환경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시민들이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공항 건설계획 취소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수라갯벌은 이미 육지화돼 생태적 보호 가치가 없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영화 ‘수라’가 그 반증입니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 40여 종이 여기 살아요.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외치는 때에 우리는 국민 혈세를 쏟아부어 어마어마한 탄소를 배출할 공항을 새로 짓겠다니요. 영화를 보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분들, 수라갯벌을 직접 찾아오시는 분들도 늘어서 기쁩니다. ‘이 영화가 새만금 간척사업이 합법적이라고 인정한 2006년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하나의 사회적 재판이 됐으면 좋겠다’는 관객도 있었어요.”

영화 ‘수라’의 황윤 감독.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영화 ‘수라’의 황윤 감독.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아픈 기억도 털어놓았다. 황 감독은 앞서 2006년 전북 부안군 해창갯벌 등을 찾아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하는 지역 어민들과 시민·환경단체의 활동을 카메라에 담은 적 있다. 부안군 어민 류기화씨를 그때 만났다. 황 감독을 “다정하게 맞아주던,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언니”다. 몇 달 후 평소처럼 조개를 채취하러 갯벌에 간 류씨는 방조제 문이 예고 없이 열려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세상을 떠났다.

“큰 충격에 ‘새만금’ 세 글자를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어요. 촬영 테이프도 처박아 놓고 10년 넘게 잊고 살았죠. 그러다가 군산으로 이사를 갔고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사람들을 만났어요. 모두가 포기한 갯벌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데 청춘을 바친 용감한 분들이 있었다니 감격했지요. 미안한 마음도 컸고요.”

수라갯벌에서 만난 사랑스럽고 경이로운 생명들도 황 감독이 카메라를 놓지 않게 한 힘이다. “오동필 단장님은 어떻게 20년간 버텼을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7년간 따라다녔는데, 촬영이 끝날 때쯤 알겠더라고요.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도요새.... 먼지를 날리며 작업 중인 포크레인 옆에서 눈을 감고 엄마새를 기다리던 쇠제비갈매기 새끼도 잊을 수 없어요. 저를 7년간 버티게 한 힘은 그런 거예요.”

영화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영화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영화는 여성 어민들의 투쟁도 조명한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그물 끌고 나갈 수만 있으면 돈 벌어 자식 키울 수 있다고, 노후 걱정도 없다고들 하셨어요. ‘바다만 있으면 사회적 보장제도는 필요 없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죠. 특히 여성 어민들은 좁고 보수적인 어촌 사회에서 여자로 살면서 가슴 아픈 일이 많았을 텐데, ‘바다가 다 위로해준다’고 하셨어요. 그분들께 갯벌은 생계 수단 그 이상이었어요. 그런 갯벌이 파괴됐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겠죠. 영화에서도 어민들이 농어촌공사에서 제공하는 풀 베기 일을 하다가 조개가 나오니까 눈물을 뚝뚝 흘리시잖아요.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군산·김제·부안 일대에서 바다를 빼앗긴 어민들이 2만 명이 넘는다고 해요.”

관객들의 응원이 뜨겁다. 개봉 전 관객주도형 배급 캠페인 ‘100개의 극장’ 프로젝트를 추진해 약 6000만원을 모았다. 광주, 울산, 전주, 순천 등 각지에서 관객들이 직접 시사회를 열고 있다. “‘OTT가 아니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고 많이들 호평해 주셨어요. 지난 21일 총 158개 극장에서 동시 개봉했고, 이중 70~80곳은 관객들의 힘으로 개봉했습니다. 우리가 기적을 함께 만들어 온 것 같아요.”

황윤 감독 다큐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 스틸. ⓒ시네마 달 제공
황윤 감독 다큐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 스틸. ⓒ시네마 달 제공

동물원·축산농가 등 고통받는 동물들 통해
인간-동물 ‘운명공동체’ 다룬 영화 선보여
“소중한 생명들 이름 부르는 게 공존의 시작”

황 감독은 우리가 살면서 지나치기 쉬운 ‘비인간동물’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관한 영화를 여럿 만들어왔다. 새끼 호랑이 ‘크레인’을 포함해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이야기인 ‘작별’(2001), 로드킬의 비참함을 다룬 ‘어느 날 그 길에서’(2006), 공장식 축산의 잔혹한 실상을 알게 되고 채식을 실천하게 되는 이야기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 등이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녹색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 당시 정당 중 유일하게 ‘동물권 선거운동본부’를 출범하고 관련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고 착취당하고, 멸종위기에 처하고도 말도 못 하는 동물들이 약자 중 약자라고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비인간동물’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잘 전하는 것이고요. 동물들이 고통받고 사라져가는 세상은 인간에게도 얼마나 삭막한 세상인가요. 모두가 ‘운명공동체’니까요.”

황 감독은 “‘이름’을 붙이고 기억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를테면 ‘새만금’은 간척 사업자들이 만든 표현이다. 영화에서 ‘새만금’이라는 이름을 많이 쓰지 않으려 한 이유다. 갯벌 지키기의 시작은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부터다”라고 덧붙였다.

“수라가 관객들에게 ‘소중한 것’을 일컫는 하나의 보통명사가 된다면 좋겠어요. 이름도 없던 갯벌에 오동필 단장이 ‘수라’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더 소중해지고 각별해졌듯이요. 시사회마다 ‘당신의 수라는 무엇입니까’라는 제목을 붙여요. 각자가 지키고 싶은 강, 산, 나무 한 그루일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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