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철 여행육아] ④

하얀 눈처럼 휘날리는 민들레 홀씨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짓던 아이. 아이에게는 놀이감이 있는 모든 곳이 놀이터이다.  ⓒ오재철 작가
하얀 눈처럼 휘날리는 민들레 홀씨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짓던 아이. 아이에게는 놀이감이 있는 모든 곳이 놀이터이다. ⓒ오재철 작가

“애 데리고 여행하는 거 안 힘드세요?”
아장아장 걷는 돌쟁이와 캐나다 여행을 계획했을 때, 4살된 아이와 캠핑카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기승을 부리던 울릉도에서 50일 살이를 선포했을 때··· 매번 위와 같은 질문을 받았고, 우리는 매번 이렇게 답했다.

“저희는 아이와 함께 여행합니다.”
솔직히 고백하겠다. 414일간의 세계여행 후 세 권의 책을 냈고, 현재 여행 작가로 살아가는 우리 부부도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던 시절엔, 여행이 무척 힘들었다.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아이와 늘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였고, 유명한 전시관의 귀한 문화유산과 작품들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아이에게 서운함도 일었다. 그래도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는 것이 부모된 자의 도리라고 생각하여 억지로 보게도 해 봤다.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놀이터였던걸로 기억되는 이탈리아, 돌로미테에 있는 놀이터. 아이는 이 놀이터에서 행복해했다. ⓒ오재철 작가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놀이터였던걸로 기억되는 이탈리아, 돌로미테에 있는 놀이터. 아이는 이 놀이터에서 행복해했다. ⓒ오재철 작가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스친 생각 하나. ‘과연 아이는 우리와 함께 하는 여행이 즐거울까? 나의 괜한 욕심 때문에 전혀 즐겁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이 어린 아이에게 몇 백년된 성당이 신비로워 보일 리 만무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작가의 작품이 경이롭게 보일 리 없을텐데... 그러고 보니 아이의 표정은 여행 내내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의욕 넘치는 부모 따라다니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는 듯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렇다. 아이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사이가 좋은 친구끼리 여행을 떠나도 서로의 관심사가 다르고, 여행하는 방식이 달라 싸우기 일쑤인데, 아이와 어른의 여행 취향이 맞을 거라는 기대 자체가 오산이었다. 생각을 바꿨다.

 ‘나는 지금 취향이 전혀 다른 사람과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서로의 취향을 최대한 존중해 줘야하지 않을까?‘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여행하기 시작한 것이. 생각 하나가 바뀌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아이···, 3명의 여행이니 이 여행의 지분 3분의 1도 아이에게 있는 셈이다. 다시말해··· 적어도 하루 2,3시간 이상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해 줘야 한다는 뜻이다. 

완도에있는 자가발전 놀이터. 아이는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과학을 배웠다. ⓒ오재철 작가
완도에있는 자가발전 놀이터. 아이는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과학을 배웠다. ⓒ오재철 작가

아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래! 놀이터를 가자. 그때부터 우리는 세계의 모든 놀이터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고, 알프스 산을 닮은 스위스의 자연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먼 타국땅까지 와서 한국에도 있는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세계 곳곳의 다양한 놀이터에서 웃으며 뛰어노는 아이를 보니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렇듯 아이의 여행을 존중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자신의 시간을 존중받기 시작한 아이는 부모의 시간도 존중하기 시작했다. 함께 놀이터에서 뛰어 놀자 아이는 부모의 시간에도 호기심을 갖고 동참하기 시작했다. 함께 산을 오르며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감상했고,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시장의 유명한 그림에 관심을 두기도 했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우리의 여행은 당신의 생각만큼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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