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변호사회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 강화’ 간담회

교제폭력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은 뒤 헤어진 연인을 살해한 피의자 김모씨가 5월 2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금천구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교제폭력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은 뒤 헤어진 연인을 살해한 피의자 김모씨가 5월 2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금천구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최근 경찰에 교제폭력을 신고했던 여성이 전 연인이었던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피해자 보호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로는 관련법의 정비와 교제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꼽혔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30일 서울 서초구 지방변호사회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교제폭력 피해자의 보호 방안을 모색했다.

경찰 일선 현장에서 교제폭력 사건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이길찬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과 경정은 “(교제폭력 피해자가)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교제폭력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한쪽은 교제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한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 등은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경찰청의 교제폭력 사건 통계에 따르면, 올해 1~5월에만 3만915건의 교제폭력이 신고됐다. 전년 대비 11.6%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이 중 검찰에 입건된 사건은 7%(2223건)에 불과했다. 피해자는 여성 60%, 남성 18%로 여성이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2023년 1~5월까지의 교제폭력 관련 통계 결과. ⓒ경찰청
경찰청에 접수된 2023년 1~5월까지의 교제폭력 사건처리 현황 분석 결과. ⓒ경찰청

또한, 지난해 1월 한달간 교제폭력을 전수조사한 결과, 3903건의 신고 중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의사를 밝혀 사건이 종결된 경우가 73%(2856건)에 달했다. 이 경정은 “반의사불벌 조항 때문에 피해자가 처벌불원 뉘앙스만 나타내도 처벌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됐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피해자 안전조치와 관련된 법률이 양산하는 ‘사각지대’에 대한 법리적 검토도 이어졌다.

민고은 변호사는 “피해자 보호 관점에서 현재와 같은 가해자 제재 방식은 한계가 있다. 스토킹처벌법, 가정폭력처벌법상 유치장 유치는 1개월을 초과할 수 없고 구속 판단시에도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는 고려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어 구속사유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피해자 안전조치가 연장되지 않으면 피해자가 이의제기할 방법이 없다”며 “피해자 보호의 연속성 측면에서 담당 검사와 경찰이 협조하는 방식 또한 필요하다. 이를 위해 근거법률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 지원을 위한 일선 경찰의 인적·물적 부족 문제, 경찰에서 안전조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사용하는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의 정확성 문제 등의 개선 필요성도 지적됐다.

30일 한국여성변호사회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 강화’ 간담회가 열렸다.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이수진 기자
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30일 한국여성변호사회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 강화’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수진 기자

형사법학 전문가는 ‘피해자 보호’ 측면에서 범죄피해자 안전조치를 바라볼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김한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재 강화가 가해자의 폭력성을 악화해 피해를 키울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범죄) 억지효과도 간과할 수는 없다”며 “제재가 신속적·즉각적이지 못해서 효과가 없었던 것이지, 제재 자체는 효과가 있다. 피해자 안전조치를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로 보지 않고, 피해자를 위한 특별조치로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집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들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위원은 “언론에 보도된 것만 봐도 두 달여 간 60건의 데이트폭력이 발생했고, 이 중 4건은 사건 이전에 신고이력도 있었다”며 “피해자 진정한 의사는 누적된 신고 건수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 경찰, 검찰이) 사건의 위험성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것 아닌가 싶다”며 “피해자들은 처벌불원이 향후에 미칠 영향을 잘 모르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일선 경찰이 ‘해봤자 처벌 안 될 건데 계속하시겠어요?’ 질문하는 경우도 많다. 피해자들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 가해자와의 관계, 사회적 비난 등 때문에 복잡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정폭력과 교제폭력은 결국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일원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송 대표는 “기존 법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개별법을 양산하는 것은 실질적인 여성폭력 근절에 도움되지 않는다. 가정폭력처벌법은 전면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30일 서울 서초구 지방변호사회관에서 한국여성변호사회 주최로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 강화’ 간담회가 열렸다. ⓒ이수진 기자
30일 서울 서초구 지방변호사회관에서 한국여성변호사회 주최로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 강화’ 간담회가 열렸다. ⓒ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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