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패브릭 랩(fabric wrap)과 시팅 쿠션(sitting cushion)논란으로 인터넷이 뜨거웠던 적이 있다. 패브릭 랩은 유명 인터넷서점이 서점 창립기념일에 맞춰 기념품으로 출시한 포장용 사각 천에 붙인 이름이다. 종이봉투나 비닐 봉투가 아닌, 친환경 다기능, 다회 사용 가능한 예쁜 컬러와 무늬에 천착했던 것 같다, 시팅 쿠션은 커피전문점이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소형 깔개였다. 두 상품 모두 기능성을 강조하며 개성있는 멋진 이름을 붙이려다 불러온 실수로 보인다.

이미 널리 통용되고 있는 순우리말 <보자기>와 <방석>이 있는데 이를 간과하고 영어이름에 몰두한 것. 네티즌의 따가운 질타에 바로 거두어 들여 더 이상의 논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3차 산업시대를 거쳐 4차 산업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 사회는 급속한 사회변화와 함께 언어생활에서도 놀랄만한 변화를 겪고 있다. 신기술용어는 물론 사회현상도 전에 경함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물밀 듯이 몰려드는 외국어와 외래어는 대체어가 다듬어지기도 전에 자리 잡아 신기술을 접하지 못하고 장년기로 접어든 세대는 도움 없이는 스마트 기기에 접근조차 하기 어렵다.

한글문화연대의 누리집에서 쉬운 우리말 사전을 훑어보다가 “ 아. 이게 예전에 쓰던 우리말 이었지”, 하는 단어가 적지 않아 놀라기도 했다.

<내레이션→해설> <네거티브→흠집내기, 부정적인> <골든 블록→금싸라기 동네> <노마진→원가판매> <노쇼→예약부도, 예약 어김> <노 스모킹→금연> <논픽션→실화> <뉴스레터→소식지> <다크호스→복병> <델타→삼각주> <드라이플라워→말린 꽃> <드링크→음료> <도미노→연쇄, 파급> <디도스→서버마비공격> <디바이스→기기> <디톡스→해독, 해독요법> <딜레마→진퇴양난> <러그→깔개> <랜드마크→상징물, 대표건물> <러닝타임→상영시간> <레이싱→경주, 경쟁> <레트로→복고풍> <리뉴얼→새 단장> <리크루팅→채용> <리터러시→문해력, 글 이해력> <리테일 스토어→소매점> <마이카→자가용, 자가차> <마타도어→흑색선전, 모략선전> <모니터링→점검, 조사, 관찰, 감시> <미디어 파사드→외벽영상> <비건→엄격한 채식주의자> <블랙마켓→암시장> <시드머니→종잣돈> <에코 백→친환경 가방> <워크숍→공동연수, 연수회> <제로섬게임→실익없는 게임, 경쟁> <클러스터→협력지구, 연합단지> <키맨→핵심인물, 중추인물> <하이앤드→최상급, 최고사양> <헤게모니→주도권> <호스피스→임종간호> 등등 분명히 우리가 쓰고 있던 말이 있었음에도 외국어와 외래어에 밀려 난 것들이다.

ⓒ여성신문
ⓒ여성신문

우리의 일상생활 중 중요한 장소로 자리 잡은 카페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잦고 그 숫자도 만만치 않은 데다 외국어가 넘쳐나는 곳으로 꼽힌다, 오더, 테이크아웃, 리필, 샷 추가, 아이스, 핫 뿐 만아니라 컵의 크기도 레귤러, 톨, 그란데, 벤티로 표기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카페 안엔 우리말보다 외국어가 넘친다.

사기전화(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경찰청에서 개발한 모바일 앱의 이름이 <시티즌 코난>인 것은 아이러니다. 코난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나온 탐정만화의 주인공이다. 현재 60대 이상의 장.노년층에겐 익숙지 않은 이름이다. ‘보이스피싱’ 보다 ‘사기전화’를 쉽게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시민 탐정> 이나 <시민 경찰>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최근 지역축제에선 누들 플랫폼(면요리 거래터), 누들 타운 등의 외국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새로이 들어오는 외국어, 외래어를 쉬운 우리말로 빨리 바꾸어 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우리말이 녹슬지 않게 지키는 일은 더욱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