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익명 출산제 도입 주장에 부쳐
출생신고 되지 않은 ‘그림자 아기’ 2000여명
헌재 판단 이후 멈춘 안전한 임신 중지 논의
낙태해도 양육해도 손가락질 받는 미혼모들
엄마 책임만 묻는 영아유기, 아빠는 어디로?
위기 임신·출산 지원 제도가 더 우선이다

베이비박스 ⓒ홍수형 기자
베이비박스 ⓒ여성신문

출생신고 되지 않은 ‘그림자 아기’ 2000여명

연일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못했던 아기들에 대한 가슴 아픈 비보가 전해지고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부모의 선의에만 맡겨진 아동의 출생신고제도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출생통보제도의 도입을 촉구해왔고, 2020년 모 일간지에 출생등록되지 못하고 유령처럼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 죽음의 진실마저 묻히는 아이들에 대하여, 차가운 냉장고 속에서 꽁꽁언 땅 속에서 마주해야하는 아이들의 주검에 대해 경고하며, 당장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라는 내용의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지난 6월 22일, 감사원이 출생등록되지 못한 2000여명의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 냉장고 속 주검으로 마주한 두 명의 아이들로 인해 다시 세상이 들끓고, 거짓말처럼 8일 만인 같은 달 30일 10여 년 동안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출생통보제 법안이 가결됐다. 구하지 못한 아이들, 너무 오래 유령처럼 살아야 했던 아이들이 많았기에 차마 환영과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출생통보제로 인해 신원노출을 꺼려하는 여성들이 병원 출산을 기피하고 영아살해를 할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며 아동의 생명을 구하는 익명 출산제(보호출산제라고 하고 있으나 본질은 익명출산이므로, 이하 익명 출산제로만 칭함)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익명 출산제 도입에 반대한다. 미혼모 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더욱 공고히 하고, 음성화할 것이라는 우려와 무엇보다도 자신의 정체성을 알 권리를 침해당한 고아 아동의 양산에 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령처럼 살아가던 아이들에게 이제는 고아로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라 차마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식을 키우지 못하고 익명 출산으로 내몰리는 모성을 외면하고, 영아살해라는 위험한 모성으로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그저 아이를 내놓은 인큐베이터 정도로 모성이 취급당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익명 출산제 도입을 이야기하면서 안전한 임신중지권 보장과 관련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상황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2019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미혼모의 열악한 현실을 지적하고, 형사 처벌은 여성의 권리만 침해했을 뿐 실질적으로 태아의 생명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서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해 여성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설시를 했다. 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임신 갈등 상황에 놓인 여성의 삶은 나아졌는가.

헌재 판단 이후 멈춘 안전한 임신 중지 논의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재판부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지자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등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판결을 환영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9년 4월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재판부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지자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등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판결을 환영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여성신문

낙태죄가 폐지되어 불가피하게 임신중지를 하더라도 더이상 형사처벌되지 않으니 진전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 이후 의료보장체계 내에서 안전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라고 지속적으로 주문해왔지만, 정부와 국회는 묵묵 부답이다. 심지어 임신 초기 저렴하면서도 가장 안전한 임신중단 방법으로 알려진 미프진 등 유산유도제 조차 도입이 되지 않았다. 여전히 임신중지는 병원의 재량에 맡겨져 고가의 비용이 유지되고 있고, 임신중지가 필요한 여성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해 병원을 전전하고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시기를 놓치고 위기 출산 후 영아 유기, 영아 살해의 재앙적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지난 1월 전주에서 한 여성은 임신 28주차에 부정확한 정보와 유통경로가 불분명한 유산유도제를 복용하고 임신중단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조산아를 출산하고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번에 냉장고에서 발견된 두 아기의 친모는 임신중절 수술비가 ‘250만원이어서 남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남편에게도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겼다’고 말했다.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의료보장체계 내에서 안전한 임신중지를 하지 못하고, 고가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불법적인 경로의 임신 중단을 시도하며 건강을 위협받고 있고, 영아 유기, 영아살해 등의 재앙적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익명 출산제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재앙적 상황에 내몰린 여성들을 돕고 아동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익명출산이 여성을 재앙적 상황에서 구하는 제도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더라도, 무엇이 먼저여야 하는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원치 않는 출산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먼저다. 임신중지와 출산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여성의 몸의 일부로 존재할 때와 한 인간으로서 출생이 이루어진 상황이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원치 않는 출산이라도 이미 출생이 이루어진다면, 먼저 고민할 것은 ‘익명의 모’로 남을 방도를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모가 자신의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최선의 방도를 찾아주고 지원해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자신의 아이를 양육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익명의 삶으로 내몰도록 하는 익명 출산제도가 과연 여성을 재앙으로부터 구원한다고 말 할 수 있는가.

낙태해도 양육해도 손가락질 받는 미혼모들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두텁다. 미혼모들은 자신들을 손가락질받으며 숨어 살아야 할 존재로 보는 시선이 두렵다고 했다. ⓒ여성신문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두텁다. 미혼모들은 자신들을 손가락질받으며 숨어 살아야 할 존재로 보는 시선이 두렵다고 했다. ⓒ여성신문

여성과 아동을 위해 익명출산제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우리가 모두 외면하고 있는 것은, 왜 어떤 출산은, 어떤 출생은 익명이어야만 하는가이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한 사례 중 많은 경우 혼외자 출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지금도) 해외입양된 아이들의 대다수가 미혼모의 아이들이었다. 미혼모 등 법률혼 외에서의 출산과 출생에 대한 극심한 사회적 편견이 낳은 비극이다.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그 어떤 출산과 출생도 윤리 비윤리, 정상 비정상으로 갈라 차별하지 않고, 음성화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전 사회적 약속이 우선 돼야하는 것이 아닌가. 여성과 아동을 위해 익명 출산제를 도입하겠다는 주장이 오히려 그 차별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가. 한국에서 미혼모들은 낙태를 해도, 아이를 낳아도, 입양을 보내도, 스스로 양육을 해도 손가락질 받기 일쑤였고, 그 중에서 가장 허락되지 않는 것은 직접 아이를 키우는 선택이었다. 이제 한 가지 더 비난받을 일이 추가되는 것인가. 왜 익명 출산을 선택하지 않고 직접 아이를 키우느냐고. 

익명출산제 법안이 예정하고 있는 산모 시설은 과거 입양기관이 운영하던 미혼모 시설을 연상시킨다. 2011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되기 전 입양기관이 운영하던 미혼모 시설은 (해외)입양아동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공급처 역할을 했는데, 2011년 한부모가족지원법도 개정해 입양기관이 미혼모시설을 운영하지 못하도록 했다. 과거 미혼모들은 미혼모 시설에 입소하면 출산 전에 입양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아이를 출산하고 아이를 안아보면서 마음이 바뀌어도 미혼모시설에서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들어간 비용을 모두 변제해야만 아이를 데려갈 수 있다고 하여 궁박한 처지에 아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입양기관이 미혼모 시설을 운영하지 못하도록 법이 바뀐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법 개정에 대해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36조 제2항의 취지를 고려한 것으로서 정당하다고 결정했다(2011헌마363). 익명출산제는 모든 위기의 임신·출산 상황에 놓인 여성이 아닌, 익명출산을 신청한 여성에게만 산전 산후 각종 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출산 후 마음이 바뀐(직접 양육으로) 여성에게도 유지되는 지원일까. 과거 입양기관 미혼모시설처럼 지원받은 비용을 모두 회수 당하는 것일까.

익명출산 아닌 위기 임신·출산 지원 제도 부터

게다가 익명 출산제도는 경제적 위기의 산모에게 손쉽게 자녀 포기를 조장할 우려까지 있다. 경제적 위기의 가정에는 아동 양육을 위한 재정적 지원 등을 통해 원가정에 자녀가 양육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저소득 한부모 가정 아동양육비 지원 20여만원, 시설 보호 아동 한명 당 지원수당 150~200만원), 익명 출산을 선택한 산모에게만 산전산후 지원을 하고, 익명 보장까지 해주니 양육보다는 익명 출산을 선택할 가능성을 너무 쉽게 열어 놓은 것이다.

2010년도부터 2021년 5월까지  불법 시설인 베이비 박스에 유기된 아동이 2000여명에 가까운 것으로 확인되는데 익명 출산제가 도입되는 경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합법이라는 명분으로 부모가 있음에도 고아로 남겨질지 벌써부터 두렵다.

베이비박스가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구했다고 하지만,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의 이후의 삶에 대해서 사회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익명출산제가 도입되면 익명 출생된 아이들의 삶이 많은 부분 베이비박스 아이들과 닮아 있을 텐데 말이다. 베이비박스의 아이들 중 3% 정도가 입양 및 위탁가정에서 성장하고 있고, 나머지 97% 아이들은 시설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수도권의 한 아동양육시설(고아원) 실태 조사를 하던 분의 전언에 의하면 저출생으로 인해 문을 닫을 뻔했던 고아원이 2013년부터 폭증한 베이비박스 아이들로 인해 기사회생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웃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또 베이비박스의 아이들은 시설장의 성을 따르게 되는 데 한 시설장의 성이 특이한 성씨로 성씨만 봐도 아이들이 베이비박스 출신(?)인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 내내 폐쇄된 시설에서 외출도 금지된 상태에서 일반 가정의 아이들과 달리 고립되어 지내며 아이들이 겪었던 인권침해적 상황을 고려하면 그저 살렸다(?)는 것으로 아이를 구했다고 위안을 삼는 것은 일부 어른들의 대단한 착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엄마 책임만 묻는 영아유기, 아빠는 어디로?

영아 2명을 살해한 뒤 시신을 수년간 냉장고에 보관해 온 혐의로 구속된 고모씨가 지난달 30일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영아 2명을 살해한 뒤 시신을 수년간 냉장고에 보관해 온 혐의로 구속된 고모씨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연일 보도되는 영아유기 살해사건으로 인해 익명 출산제 도입이 힘을 얻고 있는 요즘, 익명출산될 아기들의 부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이 참 의아하다. 출생한 아이에 대해서는 생부 역시 부로서 엄연히 권리가 있고 의무를 부담하는데 말이다.

낙태도, 영아유기도 살해의 책임도 모두 모(母)의 죄이며, 익명 출산도 모두 모의 몫이며 그 결과로서 겪는 고통 또한 오롯이 모의 것이다. 생명을 살린다는 구호 아래 익명 출생된 아동 즉 고아의 고통 역시 전생애에 걸쳐 오롯이 아동의 것이다.

오로지 부(父)만이 자유롭다. 진지하게 제안해본다. 이 모든 고통의 근원은 피임하지 않은 성관계에서 비롯됐다(성폭력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무조건 ‘성관계 = 피임’이다. 대신 피임하지 않는 남자를 처벌하자. 이런 강력한 위하만이 고통의 싹을 자를 수 있는 근본적 수단이 아닐까 과격하게 생각해본다. 여성들의 오랜 요구에도 ‘스텔싱(stealthing, 성관계 도중 상대의 동의없이 몰래 콘돔을 제거하는 행위)’ 조차 처벌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이 길고 장황한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다. 익명출산제 도입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결국 여성의 재생산권을 둘러싼 환경의 열악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성을 익명출산으로 내몰지 마라! 피임과 안전한 임신중단권 보장하라! 스텔싱 처벌하라! 신속하게 유산유도제 도입하라! 위기 임신출산, 양육지원이 먼저다!

김수정 변호사
김수정 변호사

* 필자 소개: 글쓴이 김수정 변호사는 낙태죄위헌소송 대리인단 단장으로 저서『아주 오래된 유죄』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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