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성, 권경원 선수(오른쪽부터)가 3일 오전(한국시각)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하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뒤 활짝 웃고 있다. 태극기 하단에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손글씨가 쓰여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트위터
지난해 12월 2일 조규성, 권경원 선수(오른쪽부터)가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한 뒤 활짝 웃고 있다. 태극기 하단에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손글씨가 쓰여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트위터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 

지난해 12월 2일 새벽, 카타르 에듀케이션 시티스타디움에서 포르투갈에 2-1 역전승을 거두고 극적으로 한국의 월드컵 축구 16강 진출을 결정지었을 때, 그라운드로 기쁨을 드러내며 달려나온 우리대표선수들이 든 태극기 아래에 쓴 글귀는 응원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전 경기에서 주심에게 항의하다 레드카드를 받아 수석코치에게 벤치를 맡기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했던 예상치 못한 힘든 상황에서 후반 46분 손흥민과 황희찬 선수의 멋진 호흡이 짜릿한 역전골의 성공을 이끌어 냈고, 승점이 같은 우루과이를 득점비교로 밀어내며 가까스로 조 2위를 지켜낸 대표팀이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는 다짐으로 뛰었다는 의지가 담긴 메시지여서였다. 이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줄임말인 ‘중꺾마’는 세대를 불문하고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라도 중요한 것은 곧은 마음이라는 뜻을 담은 유행어로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가끔씩 꼰대지수를 측정한다는 ‘줄임말 테스트’가 중장년층의 단체 톡방에 등장한다. 요즘 청년들을 이해하려면 이 정도는 이해해야하나? 하는 의무감으로 열심히 풀려고 해도 젊은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만점받기가 쉽지 않다. 

초등학교 4년 학생의 96.5%(2022년 여성가족부 조사)가 사용하고, 성인 97%(2022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가 쓰고 있어 이제는 스마트폰이 우리국민의 보편적 매체이다. 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문자와 SNS로 소통하고 있으니 시간을 단축하고 공간도 절약할 수 있는 줄임말은 소규모 커뮤니티에서는 날마다 개발되고 있다. 그 중엔 대중의 호응을 얻어 오랜 기간 널리 퍼져 유행어가 되는 것도 있지만 특정계층에서만 반짝하고 나탔다가 사라지는 것도 있다. 

과거에도 줄임말은 사용했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문체부’로, 여성가족부를 ‘여가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과기부’로 부르고, 쓰는 등 미디어에서도 정부부처를 줄여서 표기했다. 예술의 전당을 ‘예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언론에서도 긴 고유명사 일 때, 첫 번째 쓸 때만 원래의 명칭이나 대회 명 등을 제대로 표기하고 이후엔 줄임말로 대신하는 방법이었다. 일상생활에서도 비빔냉면을 ‘비냉’으로 물냉면을 ‘물냉’으로. 또 카페에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1잔과 ‘뜨아’(뜨거운 커피) 1잔을 주문해도 애교로 들렸다. 취업준비생을 ‘취준생’이라 할 때도 세태를 반영한 센스있는 언어로 받아 들였다. 하지만 문장 하나를 몇 개의 글자로, 또는 초성만을 딴 자음으로 표시하는 데까지 이르자 세대 간 소통에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쳐졌다. 

‘무물’(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만반 잘부’(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를 통과했더니, ‘쪄죽따’(쪄 죽어도 따뜻한 물에 샤워한다) ‘팬아저’(팬은 아니지만 저장하겠다)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가 등장했다. ‘갑통알’(갑자기 통장을 보니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 ‘일취월장’(일요일에 취하면 월요일에 장난 아니야)을 단번에 이해할 수는 없다.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최근엔 갈등을 키우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줄임말이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개근거지’(개근하는 학생 비하표현) ‘주거’(주공아파트 거지) ‘휴거’(휴먼시아 거지) ‘엘사(LH 사는 거지) ’빌거‘(빌라 거지)는 사라져야할 혐오표현이다. ‘누칼협’(누가 칼들고 협박했냐) ‘알빠노’(내가 알 바 아니다) 등도 편안히 쓸 수 있는 줄임말은 아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고 쓰는 이의 품격을 깎지 않는, 위로와 희망을 주는 새로운 ‘중 꺽 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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