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랑 산다]
기업 전략과 자아표현까지
AI에 외주 주는 시대 코앞

인터넷이 연 ‘정보의 폭발기’ 지나
AI가 연 ‘지식의 폭발기’ 대비하려면
주체적으로 문제의식 갖고 탐색해야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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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익히고,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쓰고, 글을 완성하는 일을 거뜬히 해내려면 적어도 십 년은 배워야 한다. 단순히 아는 것을 유창하게 풀어쓰는 능력을 넘어서서, 떠오르는 생각을 문장이나 그림, 음악, 무용 동작 같은 ‘표상’(representation)으로 구현하는 것은 오랜 교육과 훈련의 결과물처럼 여겨진다. 오랜 기간 경험을 쌓고 지식을 다져 몸 바깥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생성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으면 아주 쉬워진다. 현재는 사람이 말이나 문장을 입력하면, AI가 메시지의 의도를 파악해 구현하는 수준이다. 사람이 그 결과물을 매만지면 기계가 학습하고, 다음에는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든다. 인간과 협업하는 ‘부조종사’(copilot)다. 이다음 단계에는 AI가 사용자가 지닌 정보들로부터 일찌감치 인사이트를 뽑아내고, 사용자가 원했을 법한 결론을 내놓게 될 거라는 전망이 많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내부 문서들을 학습한 AI 모델이 모든 질문에 대해 척척 답을 내어주고 나아가 매출 전략이나 고객 확보 아이디어 같은 인사이트도 뽑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각을 표상으로 드러내는 일을 AI에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산업계를 중심으로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본래 아웃소싱이란, 내부의 역량을 일부 업무에 집중하고 그 외의 부분을 외부에 맡기는 개념이다. 드라마에 가끔 나오듯, 누군가의 이야기나 영감을 자서전이나 음악으로 대신 표현해 주는 사람들은 늘 있었으나, 부를 충분히 축적했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경우가 대다수였지 결코 대중적인 일은 아니었다. 특히 창작 영역에서의 외주화는 도덕적인 문제와도 맞물려 있었다. 생성 AI가 만든 결과물의 창작 주체를 누구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근래의 논의와도 맞닿는 부분이다.

우리의 몸 안에 오직 ‘생각하기’ 기능만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AI에게 양도할 수 있는 상황 또한 빠르게 오지 않을까? 만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서, 사정이 어려워서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라면 이 기술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치 트위터가 출시 초기 140자의 간단한 메시지로 정말 쉽게 생각을 올릴 수 있게 하고, 이로써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됐듯이 말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사회적 결과물에서 여러 한계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더 쉽게 끄집어내 지혜를 나눌 수 있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인류는 더 높은 지식수준을 향유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십 년도 넘게 배워왔던 교육과 훈련의 내용과 방식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굳이 글쓰기를 더 배우고, 그림 그리기를 억지로 시도할 이유가 있을까?

AI 기술이 모든 분야에 빠르게 번져 사람들의 삶에 깊이 스며들 것이라는 데에는 이제 이견이 없다. 최근 두 교육 현장에 다녀왔다. 한 곳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창업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중고등학생들의 데모데이였고, 다른 한 곳은 교육 연구를 진행하는 집단에서 AI 교육과 윤리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두 곳 모두에서 받은 강력한 인상은, AI 기술을 활용해 기존에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한 도전들, 예를 들면 ‘짧은 시간에 창업 아이템 프로토타입 만들기’ 같은 것을 이제는 꽤 어린 나이에도 해낸다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AI의 영향력을 충분히 알고 유연하게 컨트롤하며 활용할 수 있는 멘토가 현장에 무척 필요하다는 점도 가슴에 박혔다. 다행히 관련한 교육청 연수 프로그램들이 여름 내내 한참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 시대가 연 ‘정보의 폭발기’에서 더 나아가, 앞으로 우리가 살 시대는 AI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지식의 폭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시대의 지식을 만드는 생각의 주체는 미래를 책임질 우리 아이들일 것이다. 그들이 그저 AI가 뽑아낸 약간의 인사이트를 받아먹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가설을 세우고, 탁월한 해결책을 탐색해 빠르게 구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지속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지금이, 인간이 주도권을 쥐고 ‘지식의 폭발기’를 이끌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점이다.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소셜임팩트 벤처캐피털 옐로우독에서 AI펠로우로 일하고 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로 인공지능 기술과 인간이 함께 협력해가는 모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AI랑 산다>는 장밋빛으로 가득한 AI 세상에서, 잠시 ‘돌려보기’ 버튼을 눌러보는 코너다. AI 기술의 잘못된 설계를 꼬집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AI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이들과, 그리고 그 기술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짚어 본다.

① 인공지능이 나에게 거리두기를 한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379

②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인간은 바빠야 한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310

③ 인간이 AI보다 한 수 앞서야 하는 이유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353

④ AI에게 추앙받는 사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684

⑤ 메타버스서 공포증 극복·명품 쇼핑...‘비바 테크놀로지 2022’ 참관기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824

⑥ 월경·난자 냉동... 79조 펨테크 시장 더 커진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977

⑦ 사람을 살리는 AI 솔루션이 필요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124

⑧ 이상행동 탐지·채팅앱 신고...AI로 스토킹 막으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068

⑨ 일하다 죽지 않게 만들 기술이 필요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998
⑩ ‘AI 예술가’는 이미 현실, 이제 창작자들이 연대해야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928
⑪ 요즘 대세 ‘챗GPT’ 이후의 AI는 어떻게 진화할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0850

⑫ ‘박사학위자의 결혼 조건은?’ 챗GPT에 물어보니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690

⑬ 편견·차별 없는 AI 만들려면? 챗GPT가 던진 질문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3074

⑭ 막 오른 빅테크 AI 대전...사람은 어떻게 일해야 할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4139

⑮ AI 시대, 밀려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242

⑯ “코로나19 응급실 어디야?” 빙AI·챗GPT도 답 못했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6388

⑰ 세계 첫 ‘AI법’ 제정한 EU...스타트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7587
⑱ 기업분석·자서전도 AI에 맡기는 시대, 인간이 주도권 쥐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8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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