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25일 인신매매 토론회
엔터테이너로 일하게 해준다더니…
현실은 ‘이중계약·성착취 감옥’
가해자 처벌·피해자 지원 동시 강화해야

서울 강동경찰서가 15일 서울 강동구 양재대로 소재 한 노래방에서 성매매한 정황을 포착·단속하고 있는 모습이다. ⓒ강동경찰서 제공
ⓒ강동경찰서 제공

미국 국무부가 지난 6월 15일 발표한 ‘2023년 인신매매 보고서’는 한국 정부의 인신매매 방지 활동을 2등급으로 평가했다. 2002년부터 1등급을 유지해오다 지난해 20년 만에 2등급으로 하락한 뒤 올해도 같은 등급을 기록했다.

미 국무부는 한국이 외국 여성을 안마사로 일할 수 있다고 모집한 뒤 성매매를 시키거나 이주노동자를 노동착취 하는데도 정부가 확인에 나서지 않는 등 “일부 핵심영역에서 최소 기준에 미치지 못해“ 2등급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국내 전문가들도 취약계층을 상대로 빈번하게 이뤄지는 인신매매에 정부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올해부터 시행된 ‘인신매매등방지 및 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인신매매방지법)’을 보완해 피해자들을 보호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가 7월 30일 유엔이 정한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을 맞아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정부 관계자와 시민단체 모두 인신매매의 심각성에 동의하며 정책 방향성을 논의했다.

엔터테이너로 일하게 해준다더니…현실은 ‘이중계약·성착취 감옥’

이주여성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지원한 우정희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부설 현장상담센터 부소장은 “브로커 및 에이전시들이 외국인·이주여성들을 속여 식당과 유흥업소 등에 넘기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원회
이주여성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지원한 우정희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부설 현장상담센터 부소장은 “브로커 및 에이전시들이 외국인·이주여성들을 속여 식당과 유흥업소 등에 넘기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원회

이주여성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지원한 우정희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부설 현장상담센터 부소장은 “브로커 및 에이전시들이 외국인·이주여성들을 속여 식당과 유흥업소 등에 넘기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 부소장에 따르면 많은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 브로커의 “한국에서 엔터테이너로 일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에 속아 필리핀 에이전시와 공연계약서를 작성한 뒤 한국에 들어온다. 공연계약서는 통상 △급여 월 100만원 △1일 4시간 공연 △주 1회 휴무 △항공료 에이전시 부담 등으로 구성됐다.

여성들은 입국 후 한국 에이전시와 다시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필리핀 에이전시와의 계약과 다르게 △급여 월 60만원 △각종 명목으로 부채를 잡아 2달간 급여 공제 △도망가면 필리핀 가족에 20만페소 청구 등 기존 계약서보다 훨씬 불리한 계약을 강요당한다.

또한 이들은 에이전시로부터 소개받은 공연이 아닌, 외국인전용클럽에 소개돼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성추행을 당하거나, 급여를 받지 못한 채 2차 성매매에 끌려가는 등 성착취 피해에 시달린다.

여성들은 숙소생활과 CCTV 등으로 감시당하며 외출을 할 경우에도 업주 측과 함께 이동하는 등 피해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신분을 확인할 수 없게 여권을 압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며, 미등록상태인 경우 겨우 업장을 탈출해도 근무지 이탈로 강제출국될 수도 있다. 양국 에이전시와 한국 클럽 업주 등이 철저하게 공모해 이주여성들을 인신매매의 ‘늪’에 빠뜨리는 것이다.

인신매매 가해자 처벌·피해자 지원 동시에 강화돼야

이소아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변호사는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인신매매·추행·약취 등의 죄목으로 고소를 해왔으나 대부분 출입국 관리법 위반 등으로 가볍게 처벌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인권위원회
이소아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변호사는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인신매매·추행·약취 등의 죄목으로 고소를 해왔으나 대부분 출입국 관리법 위반 등으로 가볍게 처벌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인권위원회

유흥업소 외에도 인신매매 사건은 어선원·염전·농촌 등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인신매매방지법이 시행된 이유로도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라도 지역에서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지원해온 이소아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변호사는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인신매매·추행·약취 등의 죄목으로 고소를 해왔으나 대부분 출입국 관리법 위반 등으로 가볍게 처벌되는 데 그쳤다”며 “업주와 에이전시에 인신매매로 얻은 이익을 몰수하고, 여러 죄목이 겹치는 경우 철저한 조사를 통해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변호사는 인신매매의 경우 경찰서가 아닌 경찰청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신매매에 가담하는 업주들은 대부분 지역 경찰과 유착관계가 있어 경찰서 수사 시 처벌을 피하기 쉽다는 것이다.

우 부소장은 가해자 처벌과 더불어 △외국인 여성 특화시설 확장 △외국인 피해자 상담 위한 통역 지원 △출입국관리소에 인신매매식별지표 의무화 등 인신매매 피해자 지원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러한 지적에 지난 3월 제1차 인신매매등 예방정책 종합계획(2023~2027)을 발표하며 △인신매매등 방지를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 △피해자 맞춤형 지원 및 조기 식별 강화 △인신매매등 범죄 대응 역량 및 피해자 권리보호 강화 △인신매매등 방지 추진기반 조성 및 협력 강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재웅 여성가족부 권익구조과장은 “인신매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민단체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앞으로 포럼 등 자리를 꾸준히 만들어 나가며 소통의 장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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