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학생 간 발생하는 폭력은
젠더폭력과 상통되는 측면 있어
구조적 폭력 문제 해결에 있어
페미니즘 관점 중요 실마리 제공

20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극단 선택으로 숨진 20대 교사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놓여 있다. ⓒ박상혁 기자
지난 7월 20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극단 선택으로 숨진 20대 교사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놓여 있다. ⓒ박상혁 기자

젠더폭력은 청년층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대표적인 논쟁 이슈 중 하나다. 청년 남성들은 ‘성범죄에는 개인만 있을 뿐 성별은 없다’며, 젠더폭력이라는 문제 설정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을 편다. 이는 젠더폭력을 사실상 ‘남성의 폭력’으로 규정하는 청년 여성들의 주장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2021년 여초 커뮤니티 내 젠더폭력 관련 게시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가 ‘한남’이라는 분석 결과가 보여주듯, 청년 여성들이 말하는 젠더폭력에서 젠더는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의 관계로 상정된다.

가해/피해 집단에 성별을 붙이느냐 떼느냐를 두고 벌어진 이 같은 논쟁 구도는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젠더폭력 논의가 얼마나 개별 행위·사건과 그 당사자에 집중해 왔는지 보여준다. 관련 법·정책도 젠더폭력의 행위 유형을 정의하고, 가해자/피해자를 특정하여 처벌/보호 조치를 취하고, 잠재적 행위자들의 문제행동을 예방하는 일련의 과정을 체계화하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페미니즘이 젠더폭력을 통해 문제제기했던 ‘구조적 폭력’에 대한 대처는 이걸로 충분한가.

어떤 폭력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의 효과라는 페미니즘의 통찰은 모든 사회제도가 젠더를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분석에서 출발한다. 부양자-피부양자, 상사-부하 등 남녀 관계를 위계적으로 조직하는 가족, 학교, 군대, 기업에는 늘 폭력의 가능성이 잠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랑, 보호, 훈육이 폭력의 위험과 공존한다는 역설, 그로 인해 은폐되기 쉽다는 젠더폭력의 특수성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의 대상은 사람 자체라기보다 남녀 간 관계를 조직하는 방식이다. 관계 자체를 완전히 평평하게 만들 수 없다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재설정하고 그 바깥에 다른 장치들을 마련해야 폭력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임원 개인과 비서 개인을 일대일로 매칭하는 직무배치를 바꾸고, 비서의 지원 업무 자체를 줄여나가는 조직적 노력이 구조적 폭력에 대처하는 해법의 예시라 할 수 있다.

최근 아동 학대를 둘러싼 장애아동 부모와 교사 간의 공방은 구조적 폭력에 대한 대처가 충분치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학교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간의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교사-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젠더폭력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 관계의 불균형이 특히나 학교라는 제도의 근원적인 속성임을 감안하면, 구조적 해법은 훨씬 더 면밀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학습이나 생활지도를 지원하는 인력을 배치하여 교사-학생 일대일 관계의 집중도를 낮추는 방안 등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숙제를 방기한 채 학교가 사건 신고를 접수하고 가해자/피해자를 조치하는 데만 몰두할 때, 어떻게 당사자 간의 고통스러운 진실 공방만 남게 되는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제도에 내재한 위계 관계를 재배치한다는 기획은 요원하게 느껴질 만큼 쉽지 않은 숙제이다. 그럼에도 구조적 폭력을 둘러싼 우리사회의 혼돈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 페미니즘의 관점과 지식은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사건 당사자나 구성원 개인에게 집중된 시선을 제도와 조직으로 돌리고, 사건 처리가 아니라 사건이 드러낸 문제적 관계를 고쳐나가는 데 힘을 쏟아야 할 때다.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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