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반영해 미래 예측 ‘시뮬레이션’
대규모 데이터 다루는 ‘규모의 실험’
소모 시간·비용 빠르게 줄여 ‘효율화’
기후 문제 해결 실마리 될까

2023년 7월16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국립공원에서 ‘기후 위기’라고 쓰인 손팻말을 든 남성이 54도를 가리키는 온도계 옆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2023년 7월16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국립공원에서 ‘기후 위기’라고 쓰인 손팻말을 든 남성이 54도를 가리키는 온도계 옆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이제는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이상기후는 일상이 됐고, 재난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기후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고 있고, 관련 투자 금액도 점점 커지고 있다. 글로벌 조사 업체인 딜룸(Dealroom)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후테크 분야 벤처캐피털 투자 금액이 7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94조원에 달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인공지능(AI) 기술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능력은 뛰어난 예측력이다. 현실의 문제를 그대로 가상의 공간으로 옮겨가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기 때문에, 벌어질 일을 선제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를 ‘디지털 트윈’이라고 하는데, 기상 예측부터 분자합성 기반의 식품 및 소재 개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시뮬레이션이 적용되고 있다. 특히 의약 분야에서는 각기 다른 성분이 부딪혔을 때 어느 단백질과 상성을 띠는지를 실험해야 하는데, 아날로그에 가까운 기존 방식에 비해 현재의 프로그램 기반 방식의 효율과 성능이 더 좋다고 한다.

기상 예측률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과거의 기상 데이터가 현재의 극심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서 기상 예측은 더욱 어려운 영역으로 여겨지곤 했다. 시뮬레이션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화웨이, IBM,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더 정확한 기상 예측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지형 같은 다른 환경 변수를 결합하는 데이터 모델링부터 현재의 변화를 증강한 재분석 도구까지 다양한 방법론이 시도되고 있다. 더 다양한 데이터와 결합해 보며 더 거대한 규모의 모델링을 진행해 볼 수 있다. 규모 면에서도 실험이 가능해진 것이다.

AI 기술이 특히 잘 해내는 시뮬레이션과 규모의 실험을 넘어, ‘효율화’ 또한 기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가령 제조업의 생산 문제에서 소모적인 부분을 제하고 수요-공급을 정확히 예측해 효율적으로 제품을 만들고 유통할 수 있다. 탁월한 교통관제 시스템은 길에서 낭비되는 에너지를 줄일 수도 있다. 산불처럼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분야에서는 AI 기술이 발화지점을 빠르게 예측하고 산불이 번질 수 있는 통로를 확인해 더 효율적으로 불을 끄게 만들 수도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 식량 안보와 같은 상황에서도 효율적인 배분은 그 중요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단순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으로 자본이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로부터 시장 기회를 확인하는 사례는 꾸준히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당장 식품 제조사들은 급변하는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원재료 곡물 수급과 가격을 예측해야 한다. 밀가루 수입 업체 입장에서는 주 수입원인 지역의 수급 상황을 제대로 판단해야 안정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개인들이 열량과 성분을 보고 음식을 사듯, 탄소발자국을 미리 확인하고 소비에 나서게 될 수도 있다. 탄소배출 정보를 토대로 개인의 소비 습관과 행동 패턴을 바꾸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AI 기술은 대규모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를 필요로 하기에 오히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다는 비판도 많다. AI라는 좋은 도구를 써서 문제를 해결하려다, 도리어 그 도구를 만드는 데 드는 환경적 부담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행인 점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먼저 AI 모델을 설계할 때 시스템 단계에서부터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는 연구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뮬레이션을 잘 해내는 AI의 특성을 활용해 모델이 지닌 탄소 배출량 문제를 선제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효율의 문제와 맞물린다는 지점이다. 결국 모델을 학습할 때, 데이터센터를 가동할 때 컴퓨팅 파워가 많이 든다는 것은 전기요금과 같은 에너지 소비량과도 직결된다. 더 가볍게, 더 효율적으로 AI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자연스럽게 탄소배출 저감과도 연계될 수 있는 모양새다.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요소로서 AI가 단순한 보조적 도구가 될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게임 체인저’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기후 테크 기업 중 다수가 ‘딥테크’ 기업(Deep Tech, 과학·기술의 깊은 연구와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 기반 기업)인만큼, AI 기술을 제대로 활용해 보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의 목표다. 기존의 기후 테크 분야뿐 아니라, 각각의 영역에서도 힘을 모아야 한다. 문제는 더욱 빠르게 커지고 있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더 급격하게 위태로워지고 있다.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소셜임팩트 벤처캐피털 옐로우독에서 AI펠로우로 일하고 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로 인공지능 기술과 인간이 함께 협력해가는 모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AI랑 산다>는 장밋빛으로 가득한 AI 세상에서, 잠시 ‘돌려보기’ 버튼을 눌러보는 코너다. AI 기술의 잘못된 설계를 꼬집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AI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이들과, 그리고 그 기술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짚어 본다.

① 인공지능이 나에게 거리두기를 한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379

②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인간은 바빠야 한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310

③ 인간이 AI보다 한 수 앞서야 하는 이유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353

④ AI에게 추앙받는 사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684

⑤ 메타버스서 공포증 극복·명품 쇼핑...‘비바 테크놀로지 2022’ 참관기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824

⑥ 월경·난자 냉동... 79조 펨테크 시장 더 커진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977

⑦ 사람을 살리는 AI 솔루션이 필요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124

⑧ 이상행동 탐지·채팅앱 신고...AI로 스토킹 막으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068

⑨ 일하다 죽지 않게 만들 기술이 필요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998
⑩ ‘AI 예술가’는 이미 현실, 이제 창작자들이 연대해야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928
⑪ 요즘 대세 ‘챗GPT’ 이후의 AI는 어떻게 진화할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0850

⑫ ‘박사학위자의 결혼 조건은?’ 챗GPT에 물어보니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690

⑬ 편견·차별 없는 AI 만들려면? 챗GPT가 던진 질문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3074

⑭ 막 오른 빅테크 AI 대전...사람은 어떻게 일해야 할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4139

⑮ AI 시대, 밀려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242

⑯ “코로나19 응급실 어디야?” 빙AI·챗GPT도 답 못했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6388

⑰ 세계 첫 ‘AI법’ 제정한 EU...스타트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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⑱ 기업분석·자서전도 AI에 맡기는 시대, 인간이 주도권 쥐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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⑲ AI는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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