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 들개이빨
“10여 년간 혼잣말 가까운 만화 그려
더 크게 떠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들개이빨’ 작가가 그린 자화상. ⓒ들개이빨 제공
‘들개이빨’ 작가가 그린 자화상. ⓒ들개이빨 제공

거침없는 언변, 번뜩이는 재치, 세상과 도무지 타협하지 않을 듯하다가도, 문득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열등감, 자기혐오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여자.

2023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자 ‘들개이빨(본명 유아영)’은 즐겁고 괴로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는 작가다. 일상 속 차별과 불평등에 민감한 동시대 여성(프리랜서 창작자)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분노, 뒤따르는 ‘현타’까지 아주 세밀하게 포착하는 솜씨 때문이다. ‘2014 오늘의 우리 만화’ 수상작 ‘먹는 존재’부터 ‘족하’, ‘홍녀’, 현재 카카오웹툰·카카오페이지 연재 중인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까지, 그는 여전히 복잡하고 흥미진진한 ‘여성서사’의 궤적을 그리는 중이다.

들개이빨 만화 ‘먹는 존재’의 한 장면. ⓒ레진코믹스
들개이빨 만화 ‘먹는 존재’의 한 장면. ⓒ레진코믹스
들개이빨 만화 ‘족하’의 한 장면. ⓒ위즈덤하우스
들개이빨 만화 ‘족하’의 한 장면. ⓒ위즈덤하우스
들개이빨 만화 ‘홍녀’의 한 장면. ⓒ저스툰
들개이빨 만화 ‘홍녀’의 한 장면. ⓒ저스툰

들개이빨은 “방구석에서 줄곧 혼잣말에 가까운 만화를 그렸을 뿐”이라며 “(수상은) 혼자 중얼거리지 말고 더 크게 떠들라는 말씀으로 알고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작업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제 만화를 평가하자면 별 다섯 개 만점에 별 한 개 주겠습니다. 제 눈에 제 만화는 한없이 아쉽고 부끄럽게만 보여서요. 다만 이 망측한 자아노출쇼를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는 점 하나만큼은 좀 대단한 듯합니다. 맨날 힘들다, 못 해 먹겠다, 그만둬야겠다 10년 넘게 골골대면서요. 한 개 남겨둔 별점은 그 10여 년의 세월에 바치는 것입니다. 애독자님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지요.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2년 펴낸 에세이 『나의 먹이』(콜라주)에서 그는 “(‘먹는 존재’로 한창 주목받던 때) 승리감에 도취했다기보다는 독자들이 언제 돌아설지 몰라 불안했다”고 했다. “작품 하나만 반짝 남기고 사라진 작가”가 될까 초조했고, 잘나가는 작가를 보면 마음이 부글부글 끓었다. “별다른 성과도 못 내면서 종일 먹을 궁리만 하는 나”, “멋쟁이로 가득한 살벌한 사교의 정글에서 말 못 하고 그림 못 그리는 만화가는 어쩌면 좋을까” 한탄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벌주듯 채소만 먹었더니 비만과 변비가 해결됐다며 기뻐하고, 유혹을 못 이겨 SNS에서 빵 사진만 몇 시간을 찾아봤다고 고백한다. 그 자조적 유머에 깔깔 웃다 보면 무한경쟁과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한국 사회를, 분노하고 좌절하면서도 또 하루를 살아내는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들개이빨 작가 에세이 『나의 먹이』(콜라주) 홍보 이미지 갈무리. ⓒ콜라주
들개이빨 작가 에세이 『나의 먹이』(콜라주) 홍보 이미지 갈무리. ⓒ콜라주

“여성서사 이슈가 대두됐던 초반에는 조금 고민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여성서사란 무엇인가? 내 작업은 여성서사가 될 자격이 있는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 자신의 고민이 그리 생산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혹시 만화에 이러저러한 내용을 넣으면 여성서사 기준에 위배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뭔가 약간 작업구상 단계 때부터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자아 검열의 쇠창살이 또 하나 추가된 거죠. 이건 좀 아니다 싶었습니다. 여자 작가들에겐 가뜩이나 유무형의 족쇄가 많은데 말예요. 그래서 지금은 최대한 아무 생각 없이 그리기로 했습니다. 뭐 내가 여자니까 내가 그리는 게 여성서사가 될 확률이 높겠지, 아님 말고, 알아서들 정의하고 평가해 주십시오, 이런 다소 무책임한 자세로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성서사 작품’을 묻자 “좋은 작품이 워낙 많아서 답하기가 괴롭다”면서도 “난다 작가의 ‘도토리 문화센터’, 정영롱 작가의 ‘남남’을 아주 재밌게 감상했다”고 했다. 차기작으로 만화가라는 직업에 관한 에세이와 교양학습만화를 준비 중이다. 음식에 관한 새로운 글과 만화도 구상하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