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병역법 세 번째 합헌 결정
“평등권 침해로 볼 수 없다”
양성징병제‧모병제 검토 제안

 

전북 익산시 육군부사관학교에서 열린 ‘21~22기 부사관 임관식’에서 하사 계급장을 단 부사관들이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전북 익산시 육군부사관학교에서 열린 ‘21~22기 부사관 임관식’에서 하사 계급장을 단 부사관들이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헌법재판소가 남성에게 병역의무를 부여한 병역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재차 내놨다. 헌재가 이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2010년과 2014년에 이어 세 번째다.

헌재는 지난 9월 26일 병역의무를 이행 중이거나 이행 예정, 또는 병역의무 불이행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남성 5명이 제기한 헌법소원심판과 위헌소원심판을 기각하고, 병역법 3조 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쟁점이 된 병역법 제3조 제1항은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대한민국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하여 현역 및 예비역으로만 복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녀 차별 정당화할 이유 없어

헌법재판소는 9월 26일  대심판정에서 병역의무를 이행 중이거나 이행 예정, 또는 병역의무 불이행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남성 5명이 제기한 헌법소원심판과 위헌소원심판을 기각하고, 병역법 3조 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9월 26일 대심판정에서 병역의무를 이행 중이거나 이행 예정, 또는 병역의무 불이행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남성 5명이 제기한 헌법소원심판과 위헌소원심판을 기각하고, 병역법 3조 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

헌재는 이 조항이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고,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병역의무에 대한 남녀 차별을 정당화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헌재는 “국방의 의무를 부담하는 국민 중 병역의무의 범위를 정하는 문제는 국가의 안보 상황·재정 능력을 고려해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면서 국군이 최적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합목적적으로 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제반 사정을 고려해 법률로 국방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형성해야 하는 국회의 광범위한 입법재량을 존중할 필요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또한 “일반적으로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신체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무기 소지·작동, 전장 이동에 필요한 근력 등이 우수한 남성이 전투에 더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입법자가 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남성만을 병역의무자로 정한 것을 자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헌재는 이어 “현역 외 보충역·전시근로역도 국가비상사태에 즉시 전력으로 편입될 수 있어 일정한 신체적 능력이 필요하다”며 “징병제가 있는 70여 나라 중 여성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한 나라는 이스라엘 등 극히 한정돼 있다”고 했다.

헌재가 병역의무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헌재는 2010년에는 재판관 6대2(1명 각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2014년에도 “차별취급을 정당화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여성도 군대가라? “시기상조”

다만, 헌재는 “장기적으로는 출산율의 변화에 따른 병역자원 수급 등 사정을 고려해 ‘양성징병제’의 도입 또는 ‘모병제’로의 전환에 관한 입법논의가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해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시점에서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존 징병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입법자의 판단이 현저히 자의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근 군입대 자원 부족에 따라 병력 확보 방안으로 여성징병제(양성징병제)를 비롯해 모병제, 현역 복무기간 연장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2022년 12월 기준 우리 군의 병력은 48만명으로 2018년 70만명 대에서 감소하고 있어서다(한국국방연구원, ‘병역자원 감소 시대의 국방정책 방향’ 보고서). 특히 군 복무가 남성 역차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면서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수년간 지속돼 왔다. 여성계 내부에서도 “여성에 대한 군 복무 면제는 가부장적 사회가 조장해 온 제도”라며 여성 군 복무를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다만, 여성 징집을 하려면 군 조직을 바꾸는 병역제도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여성 징병제가 실현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여성이 훈련받을 수 있는 시설과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여성 징병제 도입은커녕 사회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실제로 국방부, 병무청 등 주무부처는 여성 징집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방부는 “여성 징병제, 군복무기간 확대, 대체복무 폐지 등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기식 병무청장 또한 “병역자원 감소에는 ‘국방혁신 4.0’에서 추진 중인 무인화 및 과학화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국민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여성 징병제 도입에 대해 여성과 남성 모두 “반대한다”는 의견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7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징병제에 ‘반대’의견이 54.9%, 찬성 36.3%로 집계됐다. 성별로는 여성(53.4%)보다 남성(56.3%)이 반대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연령대별로는 전 연령대에서 반대 응답이 많았다. 다만 70세 이상(찬성 41.1% vs 반대 48.1%)과 18~29세(42.2% vs 48.5%)에서는 찬반 비율이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