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우리말쓰기] 12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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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 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의 현대한글 해석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의 취지와 애민정신이 잘 드러나 있는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올해가 577돌이다. 말소리가 바로 문자가 되고 문자를 소리 내어 읽으면 그것이 말소리가 되도록 만들었으니 얼마나 과학적인가. 뿐만 아니라 자음과 모음 28자를 서로 합하면 1만개 이상의 글자를 만들 수 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한류문화의 확산으로 국제어로서의 한국어의 위상도 높아졌다. 한국어가 외국어 과목에 포함된 나라도 해마다 늘고 있어 전 세계 7천여개 언어 중 14위권 정도다. 한국어와 한국학 관련 학과를 개설한 대학이 1407곳(2023년 3월)이나 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의 유학생도 19만 7천 234명이다. 유학생의 경우, 한국어 능력시험(TOPIK)에서 3급 이상의 점수를 획득해야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태어나 한국어로 말하고 한글을 쓰고, 교육받아온 우리들의 한국어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유학생이나 220만이 넘는 체류외국인보다 어휘력이나 문해력이 월등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나? 실제 성인 남성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살펴보면 하루 200 단어 안팎이라고 한다. 여성의 경우엔 형용사와 부사 등 수식어사용이 많아 300 단어이상이다. 모두 사전에 올라있는 어휘 가운데 극히 일부분만 쓸 뿐이다.

최근엔 어른들에서도 문해력과 어휘력부족을 지적받고, 미디어에서도 줄임말이 널리 쓰이는데다 MZ세대의 유행어, 신조어, 외국어 사용이 확산되어 순우리말, 쉬운 우리말 어휘로 말하기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한국어는 유의어와 동음이의어가 많고 존칭어와 친족어가 발달해 어렵다고 한다. 또 색채어와 의성어, 의태어가 발달해 색깔, 소리, 모양 등을 세밀하고 다양하게 표현한다. 노란색을 나타내는 어휘만해도 ‘노랗다’ ‘누렇다’ ‘샛노랗다’ ‘싯누렇다’ ‘노르스름하다’ ‘누르딩딩하다’ 등 다양하다. 빨간색을 표현하는 어휘는 ‘빨갛다’ ‘발갛다’ ‘벌겋다’ ‘새빨갛다’ ‘불긋하다’ ‘벌그스레하다’ ‘벌그죽죽하다’ ‘뽈그름하다’ 등 더욱 많다. 양성 모음과 음성모음을 이용해 어감을 밝게 또는 어둡게 조절하고 예사소리와 된소리를 활용해 강도를 조절할 수 있으니 표현이 풍부해 문학과 시어로 적합한 특징을 지녔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 가운데엔 그 뿌리가 일본어인 어휘가 적지 않다. 일본이 서양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그 개념과 이름을 일본한자로 만들어 사용했고 1880년대 이후 조선이 일본을 통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일본에서 만든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던 탓이다. 특히 서양근대학문의 개념어를 번역한 일본식 한자가 의학, 경제, 사회, 사조 등에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말의 한자어로 음독이 가능한 일본어 어휘는 해방이후에도 순화대상에서 제외되어, 대체어가 개발되지 않고 우리말화 되었다. 과학, 철학, 미술 등.

또 특정 직종의 공사현장이나 노동현장에서 쓰이는 용어도 일본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다.

‘유니섹스’ ‘멘붕(멘탈붕괴)’ ‘가격파괴’ ‘스크린도어’ ‘프리사이즈’ ‘중2병’ ‘흑역사’ 등은 대중문화 개방이후인 9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유입된 어휘다. 흔히 쓰는 ‘견출지’ ‘기라성’ ‘노임’ ‘입장’ ‘대하’의 뿌리가 일본어인걸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뉴스진행자 조차도 무심코 쓰는 ‘계주(이어달리기)’ ‘계영’ ‘곤색’ 등을 들으며 한글날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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