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7월 시행 보호출산제 쟁점은?]
①아동 유기 수단으로 악용 우려
②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 등 침해
③여성 재생산권·자기결정권 침해
“임신중지권과 양육 환경 보장 없인
아동권리·여성 자기결정권 모두 침해”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 국회 통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 국회 통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초저출생 국면에 잇따른 영유아 사망 대책으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성의 임신중지권이나 양육 환경에 대한 보장 없이는 아동 유기의 새로운 통로가 될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보호출산제)이 지난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내년 7월19일 ‘출생통보제’와 동시에 시행된다.

※ 출생통보제: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의료기관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아이의 출생을 알리는 제도

※ 보호출산제: 위기 상황에 놓인 임산부가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지원하는 제도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직접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는 여야 이견 없이 지난 6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취지와 달리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자 보완책으로 보호출산제가 추진됐다. 신원 노출을 꺼리는 임신부에 대해서는 익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이다.

다만 ‘보호출산’은 최후의 수단이다. 임신부는 보호출산 여부를 선택하기에 앞서 반드시 관계기관 상담을 받아야 한다.

지역 상담지원기관은 위기임신부에게 양육을 설득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연계해준다. 출산·원가정 양육지원 상담을 거친 후에도 임신부가 여전히 보호출산을 희망할 경우, 신청방법과 절차를 설명 듣고 의료기관에서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게 된다.

친모는 보호출산을 신청할 때 자신의 이름, 보호출산을 선택하기까지의 상황 등을 작성해 남겨야 한다. 이때 작성한 서류는 아동권리보장원에 영구 보존되며 보호출산을 통해 태어난 사람은 성인이 된 후에 서류의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보호출산제를 둘러싼 쟁점은 크게 3가지다. △아동 유기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 △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 침해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 등이다.

보호출산은 이미 베이비박스 등에 버려지고 있는 아이들을 국가로 옮겨오는 결과밖에 되지 않으며, 오히려 ‘국가가 책임져줄 것’이라는 인식으로 아동 유기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부모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사회적 차별이 해소되지 못한 상황에서 장애아동 등을 임신한 경우에는 이같은 갈등을 더 심하게 겪을 수 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지난 6일 본회의에서 “원치 않은 임신 예방과 양육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현실은 방치한 채 보호출산제만 통과된다면 아동을 유기하는 통로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면서 “장애아동을 키우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을 감안한다면 장애아동임을 인지하는 순간 익명출산제를 고민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보호출산은 태어난 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와 ‘원가정에서 자랄 권리’ 등을 침해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러 국가에서 비준하고 있는 유엔(UN) 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에게 “가능한 한 부모를 알고, 부모에게 양육 받을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경우, 생모가 동의하지 않거나 동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면 해당 아동은 자기 친부모의 인적사항을 영영 알 수 없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정치하는엄마들 외 10개 단체가 '익명 출산, 비밀입양은 아동인권유린이다 김미애 의원 대표발의 보호출산특별법 즉각 철회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정치하는엄마들 외 10개 단체가 '익명 출산, 비밀입양은 아동인권유린이다 김미애 의원 대표발의 보호출산특별법 즉각 철회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여성계는 보호출산제가 추구하는 ‘산모의 숨겨질 권리’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나영 대표는 “국가가 임신중지를 최대한 보장하고, (임신을) 유지하거나 아이를 양육하려는 여성을 위해서는 실제로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데, 지금은 둘 다 안 되기 때문에 (임신중지가) 지연돼서 출산하게 되거나, 양육하고 싶어도 부모·상대방 등에 의해 양육 포기를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보호출산법 제9조 2항은 위기임부가 의사 결정할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 ‘보호자의 신청을 위기임부의 신청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취약계층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나영 대표는 “부모나 제삼자의 결정을 ‘당사자의 신청으로 본다’는 건 매우 강력한 표현”이라며 “이미 청소년이나 장애인은 그런 (부모나 제삼자가 양육 포기를 종용하는) 일을 많이 겪고 있는데, 이를 제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뢰출산제’를 시행하고 있는 독일은 전국 곳곳에 1800여 개의 ‘임신갈등상담센터’를 운영하며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피임, 임신중지, 양육, 입양 관련 상담을 총체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전문가 역시 국가가 출산 전부터 충분한 상담을 통해 위기임신부가 진정한 의미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낳고 나서는 늦다”며 “아이를 낳기 6개월 전, 최소 3개월 전에는 주거문제나 아이 키우는 방법 등을 여성들 스스로 감당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 사후에 있어야 하는 건 최소한의 3회 정도의 상담 의무화”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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