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장이 업무 무관한 식사 동행이나 암벽 등반 강요
80대 남성 ‘지역 유지’라며 소개해 지속적 ‘접대’ 요구도
피해자가 진정 제기하자 근무태만 등 문제 삼아 역진정
서울청, ‘갑질’ 아니라며 ‘직권 경고’만… “덮자” 회유도
본청, 사건 알려지자 직접 조사… 비위 일부만 인정
피해자 “제 식구 감싸기식 조사… 2차가해 조치 없어”

박인아 경위가 소속 파출소장과 나눈 메시지 ⓒKBS 방송화면 캡처
'서울성동경찰서 성차별 사건' 피해자 박 모 경위가 A파출소장과 나눈 메시지. ⓒKBS 방송화면 캡처

16년차 여성 경찰이 관할 파출소장으로부터 80대 남성을 접대하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받는 등 ‘성차별적 괴롭힘’ 피해를 입은 사건에 대해 경찰청이 해당 파출소장의 비위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경찰청도 ‘제 식구 감싸기식으로 사건을 조사했고, 가해자 지인에 의한 2차 피해가 계속되고 있어 일상회복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사건 피해자 박 모 경위는 25일 기자들을 만나 “(경찰) 조직 내에서도 2차 가해를 방치하고 있는 게 일상으로 가지 못하는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16년차 경찰인 박 경위는 지난 2월 서울 성동경찰서 금호파출소에 발령받아 근무하기 시작했다. A파출소장의 점심식사 동행을 시작으로 업무와 무관한 안경점 방문, 실내 암벽장 등반 요구, 지역행사 참석 요구 등 끊임없는 ‘갑질’ 피해를 받아왔다.

부당한 요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해봤지만, 자신이 거부하면 다른 여성 경찰들에게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해 A파출소장의 강요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박 경위의 설명이다.

지난 4월부터는 ‘지역 유지’라는 80대 남성 B씨를 ‘회장님’이라 칭하며 박 경위에 동행을 요구했다. B씨는 ‘파출소장 비서가 과일 깎아보라’며 접대에 가까운 행위를 요구했지만, A파출소장은 이를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드려라’고 요구하는 등 부당한 지시를 이어갔다. 그 후 B씨가 박 경위를 끌어안는 등 강제추행 사건까지 발생했다.

박 경위가 지난 5월 병가를 낸 뒤 서울청에 진정을 제기했지만 A파출소장은 비교적 낮은 징계인 ‘직권 경고’ 처분만 받았다. 그간의 지시를 갑질이나 강요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A파출소장이 박 경위의 근무태만을 문제 삼아 서울청에 진정을 내면서 박 경위가 감찰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A파출소장이 다른 직원들에게 박 경위의 근태나 복장불량 등을 지적하는 내용의 진술서를 써달라고 요구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파출소 CCTV까지 돌려보는 등 보복 갑질을 저질렀다는 게 박 경위의 주장이다. 서울청으로부터 “앞으로 경찰 생활을 해야 되지 않겠냐”며 구두 경고에서 처분을 끝낼 테니 이번 사건을 덮자는 회유도 받았다고 했다.

박인아 경위가 파출소장, 80대 지역 유지 등과 함께 촬영한 사진 ⓒKBS 방송화면 캡처
'서울성동경찰서 성차별 사건' 피해자 박 모 경위가 강요로 인해 A파출소장, 80대 지역 유지 B씨 등과 함께 촬영한 사진. ⓒKBS 방송화면 캡처

박 경위가 지난 7월 이같은 사실을 공중파 라디오에 직접 출연해 알리자 경찰청(본청)에서 직접 감찰에 나섰고, 지난 18일 A파출소장의 비위 사실이 일부 인정돼 징계 처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박 경위는 본청 역시 ‘제 식구 감싸기식 조사만 했다’고 지적했다. 별도의 진정 처리 규정이 있음에도, 서울청에서 박 경위가 제기한 진정을 내부 ‘첩보’로 분류해 처리한 것 등에 대해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서다.

박 경위는 “(본청) 감찰 결과를 보고 다시 한번 무너지고 말았다. (경찰은) 자정 노력도 의지도 없는 조직임을 깨달았다”며 “(진정 관련) 규정에 따라 처리하지 않았음에도 (서울청의 업무처리) 방식에 대한 비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감찰로 인정되지 않아서 비위가 인정되지 않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잇따르는 2차 피해에도 본청 등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도 했다. 박 경위가 진정을 제기한 당시, 남자 동료들은 “병가 다녀와서 얼굴만 좋네” “소장님이 박 경위를 너무 믿으셨네” 등 문제적 발언을 일삼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15만명의 경찰들이 보는 내부망 게시판에 지속적으로 “여자가 피해자를 가장해서 하는 ‘을질’이다” “무고로 고소하겠다”는 식의 글도 올라오고 있지만, 본청은 ‘어쩔 수 없다’며 방치하고 있다. 결국 박 경위가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명예훼손과 스토킹 혐의로 고소를 진행 중이다.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울성동경찰서 성차별 사건 피해자 박 경위가 발언하고 있다. ⓒ이수진 기자
피해자 박 경위가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서울성동경찰서 성차별 사건 징계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수진 기자

박 경위는 “(경찰청은) 내부 게시판에 (올라오는) 저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치하고, 저는 그 고통을 스스로 이겨내야만 하는 처지”라며 “강제추행, 갑질 피해자임에도 일부 몰지각한 동료들에 심각한 2차 가해를 당했다. 경찰은 2차 가해를 방조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조직 내 피해자도 보호하지 못하는 곳이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보호하냐”며 “갑질 파출소장을 파면해 엄중 징계하라. 시대(변화)에 맞는 감찰 결과를 내놔라. 2차 가해를 엄벌하고 피해자 보호 대책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현재 박 경위는 시간제로 근무하며 상담 치료와 병원 등을 오가면서 힘겹게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부서이긴 하지만 여전히 A파출소장과 동일한 서에 근무하고 있어 ‘언제 만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A파출소장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로 시간을 끌며 형사 처벌을 면하고 퇴직 전 파면·해임을 피하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피해자가 남성이었다면 지역 유지 접대를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해당 사건을 “피해자가 여성이라 발생한 ‘성차별적 괴롭힘’”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사건 본질이 성차별에 있지만 경찰 부서 어디에서도 이 문제 본질을 꿰뚫는 대응을 볼 수 없었다”며 “여성 경찰은 차별받거나 접대에 동원돼야 할 존재가 아니다. 피해자가 경찰로서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하루빨리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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