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뒷배‘ 자처 60대 활동가
“현세대 미래 망쳤다는 책임감 커”
10년차 에코페미니즘 청년활동가
“기후우울에도 오늘 하루 최선을”
제주 지역 청소년 기후행동 활동가
“기후대응 협탁에 앉는 여성될 것”
기후위기 스탠드업 코미디도 등장
“재밌게 환경운동 지속할 수 있길”

강남식 60+기후행동 공동대표가 국민연금 관계자에 의견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강남식 60+기후행동 공동대표가 국민연금 관계자에 의견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지구온난화’를 넘어 ‘끓는 지구’ 시대가 찾아왔다. 이대로라면 지구 평균 온도 1.5도 상승이 머지않았다는 전문가들의 엄중한 경고에도, 기후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가로막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막막한 상황에 ‘기후우울’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여성들은 세대를 넘어 연대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정부와 기업에 기후위기에 대응하라고 요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유쾌하게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도 등장했다.

60세 이상 노년층이 모여 만든 시민단체 ‘60+기후행동’은 최근 “생태 문명 전환을 위한 60+기후행동 ‘신노년 선언’“을 했다.

이들은 ‘경제성장 주역이었으나 의도와 상관없이 기후위기를 초래한 세대로서 자신과 미래세대를 위해 앞장서고 청년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청년 활동가들이 기업을 상대로 투쟁을 벌이다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 지지성명을 내고 재판에 함께한다. 자신들의 유산 10%를 기금으로 조성해 활동가를 지원하는 ‘십시일반’ 프로젝트도 있다.

20대부터 여성운동에 몸담았던 강남식 60+기후행동 공동대표는 “청년들은 기성세대에 빼앗긴 미래를 돌려달라고 말하고 있고, 특히 여성 청년들은 ‘할머니가 될 수 없을 거 같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의 미래, 미래세대들의 미래를 망쳤구나 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굉장히 크다. 노년들의 미래도 안전하지 않다는 의식도 있다”며 “모든 세대, 그리고 더 나아가 비인간 존재들은 서로 연결돼 있는데,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 아니겠나”고 전했다.

그는 ‘기후위기 앞에선 인종·성별·빈부가 없다’면서도 “기후재난 피해는 남성보다 여성이,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더 빨리, 더 심각하게 당하기 때문에 성인지 감수성을 갖고 대응해야 하는 건 맞다. 기후정의는 곧 젠더정의”라고 강조했다.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들이 '기후정의, 젠더정의' 등이 적힌 슬로건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여성환경연대 제공)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들이 '기후정의, 젠더정의' 등이 적힌 슬로건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여성환경연대 제공)

한편, 청년 활동가들은 기후우울증으로 ‘안 아픈 사람이 없는 정도’다. ‘정말 우리밖에 없나’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기에 오늘도 아픈 몸을 이끌고 투쟁의 현장으로 나간다.

에코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시민단체 여성환경연대에서 ‘기후정의팀장’ 직책을 맡고 있는 서연화(31) 활동가는 “계속해서 하루치만 생각한다. 오늘 기자회견, 내일 나가는 집회… 장기적으로 보면 어두우니까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환경 운동에서도 특히 ‘여성’을 중심 의제로 두고 월경권, 기후재난 속 여성들의 피해 사례 등을 알리는 데 집중하는 건 “남성중심 사회에서 보이지 않았던 가치가 기후위기 해결에 중요한 가치”가 되길 바라서다.

그는 텀블러를 사용하는 등 일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들에 “회의감을 갖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무 고민 없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우울하고 무력감을 느낀다는 건 투쟁의 흔적이다. 자랑스럽게 여기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은지 제주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사진=본인 제공)
이은지 제주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사진=본인 제공)

청소년들도 환경 운동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환경 운동에 뛰어들었던 이은지(20) 제주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지금 당장 내 엄마, 아빠, 소중한 사람들이 사라지겠구나’하는 위기감을 외면할 수 없어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활동가로 지내면서도 청년,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적인 차별을 받았다는 그는 “가끔씩 ‘여자애가 저렇게 기가 세서’ 등의 말이 들릴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멈춰 서지 않았다. 청소년녹색당 전 공동대표, 현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고, 제주도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월정리 해녀 투쟁 등에 참여했다. 오로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앞으로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기후위기 논의하는 협탁을 보면 대다수가 남성”이라며 “기후위기 활동에 여성들이 없는 게 아니다. 주축이 돼서 얘기하는 사람들 중 여성이 필요하고, 내가 한 번 해보겠다 하는 마음으로 올라가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기후위기를 주제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인 얼리버드 조크클럽이 공연 후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얼리버드 조크클럽 제공)
지난 9월 기후위기를 주제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인 얼리버드 조크클럽이 공연 후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얼리버드 조크클럽 제공)

활동가들은 입을 모아 기후위기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긴 싸움’이라고 말한다. 길게 가려면 의도적으로 가벼워져야 할 때도 있다. 유쾌한 ‘스탠드업 코미디’로 기후우울증을 해소하자는 ‘얼리버드 조크클럽’(earlybird jokeclub)도 그런 생각에서 시작됐다.

고다현, 고은별, 김한장, 진솔. 4명의 여성들로 구성된 이 모임은 모두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프리랜서로 ‘사회적 소수자’의 집합체다. 격주 화요일 ‘새 지저귀는 아침’에 모여서 농담을 하다가, 모임에서 ‘맏내’(맏이 같은 막내)를 맡고 있는 멤버 진솔 씨가 ‘기후위기’를 주제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아무리 텀블러 쓰고 배달음식 안 시켜먹고 해도, 기업에서는 (환경 파괴적인 것들을) 대량생산하고 내가 혼자 바꿀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기후우울증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무기력하고 불안감을 느끼는데 환경 관련한 교육을 듣는다거나 하면 우리를 계속 혼내고, ‘내가 지금 살아있어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같다”며 “우리가 이걸 좀 더 재밌게 얘기하면 환경운동을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험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난 9월 첫 공연을 선보였다. 50명 정도가 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보다 많은 70여명이 찾았다.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오는 11월 11일 또 한 차례 공연을 앞두고 있다. 제목은 ‘에코언박싱: 지구를 지키는 배드걸즈’. 기후위기를 주제로 하지만, 기후위기 속 일상을 살아가는 여성, 퀴어,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애환도 담겨있어 이같이 정했다. 예매는 얼리버드 조크클럽 인스타그램 계정(@earlybirdjokeclub)에서 할 수 있다.

큰 포부도 있다. 내년에는 전국투어, 최종적으로는 ‘넷플릭스’ 진출이 목표다. 진솔 씨는 “여성, 퀴어, 페미인데 기후위기를 얘기한다? 이렇게까지 소수자성을 가진 팀이 없다고 저희끼리 얘기를 한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넷플까지 진출하는 게 목표”라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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