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나 위드진스카 폴란드 임신중지 활동가
임신중지 경험 후 단체 설립해 여성들 지원해
‘임신중지를 도운 혐의’로 유죄 판결 받았지만
“계속 임신중지 지원하며 ‘사회봉사’하겠다” 밝혀
태아 생명권과 대립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선
“임신중지, 개인 선택 문제… 타인 좌우해선 안돼”
한국, 4년째 입법 공백… 유산유도제 도입 촉구
“처방전 없이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중요”
정치적인 이유로 ‘줬다 뺏는’ 임신중지 권리에
“권리, 영원하지 않아… 때로는 싸워서 얻어야”

지난 24일 폴란드 임신중지 활동가 유스티나 위드진스카가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성혜련 사진작가/여성신문
지난 11월 24일 폴란드 임신중지 활동가 유스티나 위드진스카가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성혜련 사진작가/여성신문

유럽 내 임신중지가 가장 제한적인 국가로 꼽히는 폴란드. 그곳에서 17년째 임신중지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스티나 위드진스카 활동가가 한국을 찾았다. 임신중지를 도왔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선고받는 등 정부의 탄압이 계속되는 상황에도 멈추지 않고 “임신중지는 인권”이라고 외치는 그를 지난 11월 24일 여성신문사에서 만났다.

폴란드 임신중지 지원 단체 ‘임신중지 드림팀(Abortion Dream Team, ADT)’의 설립자인 유스티나가 본격적으로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건 2006년부터다. 그는 당시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을 겪고 있었고,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임신중지를 결심했지만, 수술비를 마련하긴 어려웠다. 대신 유산유도제를 구해 복용했고 “죽진 않을까”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몸에 어떤 부담도 없다는 걸 경험했다. 이후 자신이 알게 된 이 지식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자택에서 임신중지를 하는 건 전 세계에 저 혼자일 거로 생각했다.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 블로그를 열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알고보니 전 세계 수천 명의 여성이 이미 그런 경험을 한 사례가 있었다”며 “어떤 여성들은 저에게 (약 복용시) 고통이나 출혈이 있진 않은지 질문했다. 이런 대화를 금기나 편견 없이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온라인 포럼’이 시작됐다.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 포럼에서는 단순히 임신중지뿐만 아니라 여성의 건강권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약을 구하는 방법은 물론이고, 원치 않은 임신인지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상황 분석 상담도 제공한다. 사전피임약과 생리주기와 관련된 이야기도 자연스레 딸려 나온다. 유스티나는 그 과정에서 여성들의 결정을 온전히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23일 임신중지 활동가 유스티나 위드진스카는 주한 폴란드 대사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무죄를 촉구했다. (사진=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지난 23일 임신중지 활동가 유스티나 위드진스카는 주한 폴란드 대사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무죄를 촉구했다. (사진=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2019년에는 9개 유럽 인권단체와 함께 ‘국경 없는 임신중지’를 설립했다. 단순 정보 제공 외에도 여성이 자국에서 시술받지 못하는 경우, 외국으로 이동해 시술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까지 맡고 있다. 활동가들은 시술 경험조차 없는 의사들보다 임상적인 지식을 더 많이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단체에 계신 분들이 사례와 노하우를 쌓고 있기 때문에, 의사들도 제공 못 하는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90%가 가톨릭 신자인 폴란드에서 임신중지 시술은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임신이 임산부의 생명에 치명적이거나, 강간 및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인 경우다. 그 외의 이유로 임신중지를 돕는 일은 범죄다.

하지만 임신부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합법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태아가 자연 사망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병원에서 여성이 사망하는 사례가 최근까지도 계속 나오고 있다. 2020년 폴란드 헌법재판소는 기형 태아에 대한 임신중지도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임신중지를 더욱 옥죄고 불법화”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의사들은 양심적 사유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수사나 심문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시술을 기피하게 된다는 게 유스티나의 설명이다.

유스티나가 도우려했던 아니아(가명)라는 여성도 가정폭력을 당하며 3주간 심각한 입덧에 시달렸지만, 적절한 임신중지 시술이나 약물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었다. 도움을 청하는 아니아의 절박한 메일을 받은 유스티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유산유도제를 우편으로 부쳤다. 하지만 약을 발견한 아니아의 파트너는 유스티나를 경찰에 신고했고, 1년여 간의 재판 끝에 8개월의 사회봉사형을 선고받았다. 유스티나는 판결에 불복해 현재 항소한 상태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진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진 2019년 4월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에서는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2021년 1월 1일 0시부터 임신중지를 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법의 효력이 상실됐다. 법적으로는 여성이 원한다면 제약 없이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회적 합의 부족’을 이유로 후속 입법과 정부 차원의 관리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임신중지 시술비는 높게 형성됐고 관련 정보 역시 불투명하다. 세계적으로 안정성을 인정받은 유산유도제의 수입은 수년째 좌절되고 있다. 여전히 임신중지를 ‘태아의 생명권’과 대립시켜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이 헤프다는 잘못된 인식도 만연하다.

유스티나는 유산유도제 도입이 이같은 한국의 상황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처방전 없이 임신중지약을 손쉽게, 저렴하게 입수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며 “그렇게 되면 임신중지가 지금처럼 문제시되지도 않을 거다. 오로지 개인의 선택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속한 단체에서 “대중의 손에 임신중지약을 쥐여주자”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 이유다.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하라는 건 국제사회의 요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비범죄화 이후 4년이 지나도록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그러는 사이 국회 앞에는 수년째 ‘낙태는 살인’이라고 강조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대립한다는 가치관은 여전하다.

유스티나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 의견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존중한다”면서도 “(임신중지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임신중지에 반대하는 분들은 여성이 임신중지를 하면 고통받고 후회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며 “실제 (임신중지를) 경험한 여성이 ‘내 경험은 다르다, 임신중지 덕분에 내가 이렇게 잘살고 있다’고 증언한 것이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여성신문사에서 폴란드 임신중지 활동가 유스티나 위드진스카가 '임신중지는 인권이다'라고 적힌 손수건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성혜련 사진작가/여성신문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여성신문사에서 폴란드 임신중지 활동가 유스티나 위드진스카가 '임신중지는 인권이다'라고 적힌 손수건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성혜련 사진작가/여성신문

임신중지 권리 운동은 여성운동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2016년 강남역에서 여성이 살해된 사건을 시작으로 한국의 온라인 기반 페미니즘 운동은 ‘리부트(reboot)’라고 불릴 정도로 붐이 일었지만, 7년여가 지난 현재는 동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폴란드 내 페미니즘 운동도 한국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유스티나는 “정부가 사회적 이슈에 마땅히 내놔야 할 지원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폴란드 내 페미니즘 운동은 지쳐있다. 공공부처에서 맡아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적 사건이나 의제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기존 이슈에 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최근 총선을 치른 폴란드에는 새바람이 불고 있다.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적어도 임신중지를 한 여성과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불필요한 검찰 수색이나 심문 등의 탄압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법 개정 등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유스티나의 생각이다. 그는 “선거와 무관하게 지금 당장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임신중지) 상황을 지원하겠다”면서 “목표는 임신중지 지원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여성의 몸은 ‘전쟁터’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면서 임신중지 요건을 까다롭게 바꾼 주가 속출했고, 여성들은 ‘원정 시술’을 받으러 가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기도 했다. 진보적인 국가로 알려진 네덜란드도 최근 총선을 거치면서 극우 정당이 집권해 임신중지 권리가 ‘회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권리를 줬다 뺏는’ 이런 상황을 두고 유스티나는 “권리라는 건 한 번 주어졌다고 끝이 아니라 (정부기관 차원의) 유지보수가 끊임없이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막막한 페미니즘 백래시 상황에도 여성들의 연대에서 희망을 본다. “여성에게는 그럼에도 여전히 대항할 힘이 있다. 우리에겐 인내심과 문제해결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계속 우리의 방식대로 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싸움꾼처럼 보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싸움도 필요하다.”

한편,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023 편지쓰기 캠페인(Write for Rights)를 통해 폴란드 검찰총장에게 유스티나에 대한 혐의를 즉시 취하할 것을 요구하는 탄원을 진행하고 있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링크(https://amnesty.or.kr/onlineaction/44989/)에서 편지를 작성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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