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AP/뉴시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17년 10월10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회담하는 모습
[워싱턴DC=AP/뉴시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17년 10월10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회담하는 모습

세계 질서를 냉전에서 화해, 이른바 데탕트(Detente)로 이끈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별세했다. 향년 100세.

29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헨리키신저협회는 성명을 통해 "미국의 외교정책에 잊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겼으며 논란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헨리 키신저가 100세를 일기로 코네티컷에 있는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키신저는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대에 국무장관에 역임하면서 10년 동안 획기적인 세계적 사건들 중 많은 것들에 영향을 미쳤다.

독일에서 태어난 키신저는 중국의 외교적인 개방, 미국과 소련의 획기적인 군비 통제 회담, 이스라엘과 아랍 이웃 국가들 사이의 화해, 북베트남과의 파리 평화 협정 등의 미국 외교사에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키신저는 소련과 무기 통제 협정을 이끌어내는 데탕트 정책을 추진했고, 냉전의 긴장과 핵 위협이 영원히 지속될 필요는 없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 ⓒhenryakissinger.com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 ⓒhenryakissinger.com

그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 때에도 외교관으로 계속 일했고 그의 남은 생애 동안 강력한 의견을 제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탁월함과 폭넓은 경험으로 키신저를 환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반공 독재 정권에 대한 그의 지지로 그를 전범으로 낙인찍었다. 그는 다른 나라들이 그를 체포하거나 과거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려는 시도 때문에 해외 여행에 제한을 받았다.

1973년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의 평화상은 가장 논란이 많았던 상들 중 하나였다. 노벨위원회의 두 명의 위원이 그 선정에 대해 사임했고 미국의 캄보디아 비밀 폭격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포드는 키신저를 "슈퍼 국무장관"이라고 불렀지만, 비판자들이 편집증과 이기주의라고 불렀다. 포드는 그의 예리함과 자신감에 주목하면서 마음속의 헨리는 결코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헨리 키신저는 1971년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해 모택동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henryakissinger.com
헨리 키신저는 1971년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henryakissinger.com

키신저는 100세를 넘겨서도 백악관에서 회의에 참석하고, 리더십 스타일에 관한 책을 발간하고, 상원 위원회에서 북한에 의해 야기되는 핵 위협에 대해 증언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지난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을 깜짝 방문했다.

99세의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리더십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다. 2022년 7월 ABC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자신의 결정 중 하나를 철회할 수 있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키신저는 "나는 평생 이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왔다. 그것은 나의 취미이자 직업이다. 내가 제안한 것들은 그 당시 제가 할 수 있었던 것들 중 최고였다."라고 말했다. 

키신저가 2023년 5월에 100세가 되었을 때, 그의 아들 데이비드는 워싱턴 포스트에 아버지의 100주년은 "그의 성격과 역사적 상징성에 대한 사랑에 익숙한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것 같은 분위기이다. 그는 그의 또래들, 저명한 비평가들, 그리고 학생들 중 대부분보다 오래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90대 동안 지칠 줄 모르고 활동적이었습니다"라고 썼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