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던전앤파이터 플레이마켓 행사
커뮤니티선 ‘페미 블랙리스트’ 만들고 여성 이용자 계정 공유
SNS 공개 요구·신변위협에 여성 참가자 대거 이탈
일부 이용자에 휘둘리는 게임 운영사
게임사의 피해자 보호 책임 법으로 명시해야

'집게 손가락'으로 논란이 된 던전앤파이터 여성 캐릭터의 팬아트 ⓒX 캡처
'집게 손가락'으로 논란이 된 던전앤파이터 여성 캐릭터의 팬아트 ⓒX 캡처

네오플이 개발하고 넥슨 코리아가 운영하는 온라인 게임 ‘던전앤파이터(던파)’의 여성 게이머들이 게임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전방위적인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 이용자들의 계정에 ‘페미 낙인’을 찍고 집단린치를 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넥슨 또한 이용자들에 SNS 계정 공개를 요구하고 여성 이용자의 항의를 묵살하는 등 집단린치를 방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던전앤파이터는 지난달 25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던파 페스티벌’을 열고 개발자와 이용자들이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코로나 19 이후 4년 만에 열린 오프라인 행사인 만큼 많은 이용자들이 참가 의사를 밝힌 상태였다.

페스티벌 프로그램 중에서는 이용자들이 부스를 열고 직접 만든 2차 창작물을 판매하는 ‘던파 플레이마켓(플마)’도 있었다. 던파는 사전 부스 배치도를 공개하며 44개 팀이 참가해 부스를 열 것이라고 소개했으나, 실제 행사에서는 18팀이 참여를 취소해 26개 부스만 열렸다.

10월 21일 던전앤파이터 플레이마켓 참가자들에게 발송된 부스 배치도 ⓒPM유저협회
10월 21일 던전앤파이터 플레이마켓 참가자들에게 발송된 부스 배치도 ⓒPM유저협회

부스 신청을 취소한 이용자 중에서는 던파 이용자들의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지하성과 용사 갤러리(지마갤)’를 중심으로 여성 이용자들에게 행해진 ‘페미니스트 낙인’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취소를 결정한 이들이 많았다.

지난 9월부터 사비를 들여 플마에서 판매할 2차 창작물을 만들던 여성 이용자 A씨는 지난 10월 29일 지마갤 이용자들에 의해 X(구 트위터)와 던파 계정을 노출당하며 ‘페미하는 여성 던파 이용자’로 지목됐다. 욕설이 담긴 플마 홍보물을 공개한 던파 운영진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공유했다는 이유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A씨를 비난하는 게시물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게임에서도 집단린치를 가했다. 던파에서 짧은 기간 다수의 이용자들에게 차단을 당하면 캐릭터 위에 ‘문제적 인물’임을 알리는 칭호가 붙는다. 이는 일종의 낙인으로 작용해 게임 내 다른 이용자들과의 교류를 어렵게 만든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이 점을 이용해 집단으로 A씨를 차단함으로써 하루만에 A씨를 문제 이용자로 낙인찍었다.

디시인사이드 지하성과 용사 갤러리 ⓒPM유저협회
디시인사이드 지하성과 용사 갤러리 ⓒPM유저협회

또한 이들은 던파 여성 캐릭터의 ‘집게 손가락’ 그림이 바뀐 것을 지적한 이용자들을 페미니스트로 간주하고 ‘페미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했다. 커뮤니티에 ‘플마에 참가한 페미니스트에게 위협을 가하겠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으며, 여성들이 모인 길드를 ‘페미 길드’라고 부르고 사건과 관계없는 구성원들까지 공격했다. 피해자들은 운영진에 해당 사실을 알리며 구제 요청을 했으나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운영진은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이용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겠다’며 플마 참가자 전원에 SNS 계정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제출을 거부할 시에는 거부 사실까지 공개하겠다고 밝혀 부스 참가자들을 ‘페미니즘 사상검증’의 심판대 위에 올라서게 만들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A씨는 창작물 제작에 들인 손해를 감수한 채 플마 참가를 포기했다. 현직 일러스트레이터, 코스튬 플레이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 이용자들도 같은 이유로 참가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부스 참가를 포기하면서 얻은 손해는 각각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달한다.

A씨는 “게임 내 산재한 문제는 아무리 지적해도 고치지 않으면서, 사건의 본질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특정 이용자들의 억지 주장을 들어주는 (운영진의) 편파적인 행동에 실망했다”며 “글로벌 게임사들은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는 한국 게임사들이 게임 문화 강국을 만들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피해자 보호해야 할 게임사가 사이버불링 부추겨…책임 법으로 명시해야”

문화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여성민우회 등 문화예술노동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11월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가 든 피켓에 ‘집게손이,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무섭냐’라고 적혀있다. ⓒ여성신문
문화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여성민우회 등 문화예술노동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11월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가 든 피켓에 ‘집게손이,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무섭냐’라고 적혀있다. ⓒ여성신문

게임을 즐기는 여성 이용자의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지만, 남성 중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성 이용자와 게임업계 여성 종사자들을 공격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게임 운영사가 남초 커뮤니티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면서 사이버불링을 부추기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환민 IT노조 부위원장은 “이번 사건에서 1차 가해자는 사이버불링을 행한 일부 개개인들이지만, 내부 갈등을 완화시킬 책임이 있는 넥슨은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사상검증을 요구하며 사이버불링을 조장했다”며 “넥슨의 기업적 도덕성에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민성 PM유저협회 대표도 “현재 우리나라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통계적으로 추산할 수 없는, 아주 적은 일부의 극단주의적인 목소리가 마치 전체의 뜻인 것 마냥 과대 대표되고 있다”며 “전체 소비자의 일반적인 의지가 이런 극단적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게임업계가 명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여성 대상 공격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게임사가 게임 및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사이버불링을 막을 책임을 법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부위원장은 “커뮤니티는 게임에서 제공하는 장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만큼 게임과 불가분의 공간으로 봐야 한다”라며 “게임사가 내부 갈등을 완화시키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서비스 공급자의 의무를 지게끔 게임 서비스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여성신문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넥슨 측에 수차례 문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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