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김학자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여성폭력 추방’ 릴레이 캠페인 추진
“지도층에서 벌어지는 여성혐오‧비하
여성지위 10년 전 수준 후퇴 우려”
복지 사각지대 메우는 ‘도시등대’
여성전문가 단체와 손잡고 추진

김학자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한국여성변호사회
김학자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한국여성변호사회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같은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든 사람들의 사진이 떠올랐다. 김학자 한국여성변호사회(이하 여성변회) 회장이 제안한 ‘여성폭력 추방’ 릴레이 캠페인 덕분이다. 여성 혐오 범죄와 이를 조장하는 여성 혐오 정치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자는 취지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김현 변호사와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 등 법조인뿐만 아니라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오명숙), 한국여자의사회(회장 백현욱), 대한여한의사회(회장 박소연), 한국여성건설인협회(회장 박기숙) 등 여성 전문가단체도 캠페인에 동참했다.

여성 전문가단체 ‘플랫폼’

김학자 회장은 이번 릴레이 캠페인에 대해 “어떻게 여성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이 범죄 이유가 된 것인지 개탄스럽다”며 “공동체 분열을 자신의 이익으로 이용하려는 지도층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잘못임을 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원석 검찰총장께서 최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범죄에 대해 지적하면서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자식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셨어요. 이 말이 마음에 남아요. 우리의 연결성이 성별로 구별되는 것도 아니고 노소로 단절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이 ‘설치는 암컷’ 발언으로 여성비하 논란을 달궜고, 2021년에는 또 다른 정치인은 ‘안티 페미니즘’을 정치에 이용했다고 얘기되고 있어요. 그리고 아직도 여성이 처한 여러 어려운 상황들에 대해 여성문제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스꽝스러운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지도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비하 및 혐오는 혹여 내년 총선,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결국 여성 지위가 10년 전으로 후퇴되지 않을까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앞서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달 28일 대검찰청 월례회의에서 숏컷(짧은 머리 모양)을 한 편의점 여성 아르바이트생이 20대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건을 언급하면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 전체를 향해 폭력을 휘두른 전형적 혐오범죄”라며 “공동체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범죄”라고 말한 바 있다.

여성을 타켓으로 한 혐오범죄, 혐오정치를 멈추기 위해서는 여성들부터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게 김 회장의 판단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주위에 알렸고, 여성 전문가단체들이 맨 먼저 이번 캠페인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사)한국여성변호사회(회장 김학자)는 UN이 정한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11월 25일)을 맞아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오명숙), 한국여자의사회(회장 백현욱), 대한여한의사회(회장 박소연), 한국여성건설인협회(회장 박기숙)와 함께 여성혐오 범죄와 이를 조장하는 여성혐오 정치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SNS 릴레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사)한국여성변호사회(회장 김학자)는 UN이 정한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11월 25일)을 맞아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오명숙), 한국여자의사회(회장 백현욱), 대한여한의사회(회장 박소연), 한국여성건설인협회(회장 박기숙)와 함께 여성혐오 범죄와 이를 조장하는 여성혐오 정치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SNS 릴레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김 회장이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여성변회는 의미 있는 활동을 위한 여성 전문가단체들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성단체들이 모여 취약계층을 후원하는 ‘도시등대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국가의 복지기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민간이 채움으로써 행복한 사회를 조성하자는 취지로, 김 회장이 단체들과 연대하고 기업을 설득해 이뤄졌다.

1호 사업으로 선정된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는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과 지적장애인에 대해 의학적 진단과 평가 및 치료, 법률지원, 상담 등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공간이다.

지난 2021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가 아동영상녹화진술에 대한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아동들은 해바라기센터처럼 자신이 상담 받던 곳에서 영상 중계장치를 통해 진술하는 형태로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진술 공간이 아동에게 편안함과 위안을 주는 환경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고 이에 ‘도시등대’가 나섰다. 책장과 놀이공간, 진술공간이 뒤섞여 있던 기존 해바라기아동센터는 이번 환경 개선 사업을 통해 진술공간과 휴식, 놀이공간이 분리되고 정돈된 모습으로 바뀌었다.

“망망대해에서 외롭게 항해하는 배가 희망을 갖는 빛이 등대잖아요. 외롭고 소외받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도시 속 등대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에 시작했어요. 서울해바라기센터는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자문 변호사로 연을 맺은 곳이에요. 그간 센터 내 진술이 이뤄지는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열악했어요. 이곳이 아이들이 제집처럼 편안하게 진술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되길 바랬습니다.”

도시등대 프로젝트에는 여변을 비롯해 한국여성건설인협회·한국여자의사회·대한여한의사회·한국여성공인회계사회·한국여성과학기술인단체총연합회·한국여성벤처협회 등이 참여했다. 한국중부발전 서울발전본부가 이번 사업을 ESG 경영 실현사업으로 선정해 후원했다.

“여성 전문가 단체들이 전문성을 살려 연대와 동행을 하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생각이 도시등대 프로젝트를 통해 현실로 이뤄졌어요. 각 분야의 여성 전문가들이 작지만 각자 잘하는 부분을 하나씩 맡아 취약한 계층과 분야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여성변회는 단체들이 하는 일이 빛이 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올해 처음 물꼬를 든 동행이 일회성 사업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바라요.” 

서울해바라기센터(아동) 환경개선 사업 이전 모습. ⓒ한국여성변호사회
서울해바라기센터(아동) 환경개선 사업 이전 모습. ⓒ한국여성변호사회
서울해바라기센터(아동) 환경개선 사업 후의 모습. ⓒ한국여성변호사회
서울해바라기센터(아동) 환경개선 사업 후의 모습. ⓒ한국여성변호사회

여성과 아동 곁의 동반자

최근 여성변회는 여성‧아동 인권 현안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보호출산제, 이대로 괜찮은가? 심포지엄’, ‘제1회 여성아동 인권보고대회’, ‘형사공탁특례 제도 시행 1주년 점검과 보완 심포지엄’, ‘이주아동 인권보호 방안 심포지엄’ 등을 열어 제도의 보완과제와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혐오범죄에 대한 검찰의 적극수사 및 양형가중 방침에 대한 환영의 목소리를 내는 한편, 아동 성착취 범죄자들을 선처한 1심 판결에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도 발표했다. 여성변회는 1991년 설립된 한국 유일의 여성변호사 단체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아동 등의 인권 보호와 권익 증진을 위해 법률 지원을 추진해온 점을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시 명예의 전당 성평등 분야 헌액자로 선정됐다.

협회는 1만명에 이르는 여성 변호사의 전문능력 향상을 위한 역량 강화와 직역 확대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여성 변호사가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 분야 중재전문가로 일할 수 있도록 대한상사중재원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협회가 젊은 변호사들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디딜 언덕’이 되겠다는 취지다. “여성 변호사가 약 1만명으로 늘었지만 아직도 취업에서 차별을 겪거나 직장 내 주요 의사결정에서 배제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여성 변호사들이 자신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여성변회가 적극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동안 쉼 없이 달려온 김 회장을 향해 대학교 2학년인 딸은 “사서고생”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자신의 건강은 뒷전이고 협회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일을 만드는 엄마가 안쓰러워서다. “처음엔 엄마가 사서고생 한다며 걱정했지만, 요즘에는 제가 하는 일을 많이 이해하며 응원하고 있어요. 바빠서 음식 할 시간도 없는데, 회장 임기가 끝나는 1월에는 맛있는 음식을 차려 딸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회장 임기는 2년이다. 단임제다 보니 남은 임기가 채 두 달이 되지 않지만 할 일이 산적하다. 김 회장은 “이번에 시작한 사업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임기가 끝나도 지속돼 실제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학자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사법연수원 26기를 수료한 후 1997년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수원·인천·춘천지검 등에서 근무하다 2008년 변호사로 나섰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감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한국여성변호사회 수석 부회장 등을 지냈다. 2022년 1월부터 한국여성변호사회 12대 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1991년 설립된 국내 유일의 여성변호사 단체로, 성폭력‧가정폭력‧스토킹 피해를 입은 여성과 학대받는 아동의 인권 보호 및 권익 증진을 위해 공익사건 법률지원 및 상담, 입법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 한부모 가정‧이주민 지원 등 우리 사회 약자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여성변호사의 역량 강화와 다양한 직역으로의 진출 확대를 위해 ‘미래여성지도자아카데미’, ‘비즈니스 아카데미’, ‘여성변호사 멘토링 프로그램’ 등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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