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선정 2023년 10대 뉴스 ]

다사다난한 2023년이 지나간다. 올해 성평등 정책은 뒷걸음질 치고 젠더 기반 폭력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집게 손가락 억지 논란으로 노동권 침해가 이어지는 등 답답한 소식이 잇따랐다. 페미니즘 열풍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으나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뿌리 깊은 여성 혐오도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여성신문이 올해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10대 여성 뉴스를 선정했다. 

1. 낙태죄 폐지 후 4년 입법 공백 여전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모임넷)가 지난 12월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유산유도제의 도입과 모자보건법 개정을 가로막는 보건복지부를 규탄하는 퍼포먼스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 제공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모임넷)가 지난 12월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유산유도제의 도입과 모자보건법 개정을 가로막는 보건복지부를 규탄하는 퍼포먼스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 제공

‘낙태죄’가 사라진 지 3년이 지났다.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할 보건의료체계는 준비되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 지정 필수의약품이자 세계 90여 개국에서 처방·복용되는 유산유도제, 한국에선 여전히 ‘불법’이다. 건강보험 적용은커녕 임신중지 비용은 병원마다 제각각이고 관련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도 적지 않다. 정부와 국회는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할 수 있는 포괄적인 보건의료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 여성징병제‧모병제 도입 논의

지난 9월 26일 헌법재판소는 병역법 제3조 제1항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대한민국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하여 현역 및 예비역으로만 복무할 수 있다’에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가 남성 의무 병역 조항에 대해 정식으로 판단을 내린 것은 2010년(재판관 6대2 의견), 2014년(전원일치)에 이어 세 번째다.

군 복무가 남성 역차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면서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수년간 지속돼 왔다. 무엇보다 국민적 논의가 우선이다. 여성 징병제 도입에 대해 여성과 남성 모두 “반대한다”는 의견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3. 보호출산제 2024년 7월 시행

6일 '위기 임신 및 보호 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보호출산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10월 6일 '위기 임신 및 보호 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보호출산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뉴시스·여성신문

영유아 사망이 잇따르자 국회는 대책으로 ‘출생통보제’에 이어 ‘보호출산제’를 도입했다.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직접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는 여야 이견 없이 지난 6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취지와 달리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자 보완책으로 ‘보호출산제’가 추진됐다. 신원 노출을 꺼리는 임신부에 대해서는 익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이다. ‘보호출산’은 최후의 수단이다. 

4. 여성 국회의원 19.46%… 내년 총선은?

전·현직 여성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의장 산하 사단법인인 한국여성의정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2023 남녀동수의 날 선포식’을 열었다. ⓒ한국여성의정
전·현직 여성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의장 산하 사단법인인 한국여성의정은 지난 5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2023 남녀동수의 날 선포식’을 열었다. ⓒ한국여성의정

여야 전·현직 여성 국회의원 모임인 한국여성의정(대표 이혜훈)이 5월 25일 ‘남녀동수의 날’을 선포했다. 5월25일은 ‘남녀동등 5=5’를 상징한다. 이들은 ‘제1회 남녀동수의 날 선포식’을 열고 “남녀동수와 동등참여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진정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했다. 21대 국회의원 298명 중 여성 의원은 58명으로 19.46%에 불과하다. 51명(17.0%)이었던 지난 20대 국회에 비하면 다소 증가했으나 남녀동수 국회로 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여성할당제에서 ‘남녀동등한 참여’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성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선거법 개편뿐 아니라 정당의 의지도 중요하다. 최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영입 인재 1호로 이수정 교수, 박지혜 변호사를 선택했다. 모두 여성이다. 4·10 총선에서도 여성 후보를 늘리는 방안이 적극 강구돼야 한다.

5. 사회 전반에 퍼진 ‘여성 혐오’

'집게 손가락'으로 논란이 된 던전앤파이터 여성 캐릭터 일러스트 ⓒX 캡처
'집게 손가락'으로 논란이 된 던전앤파이터 여성 캐릭터 팬아트 ⓒX 캡처

정치권의 여성 정책 지우기 분위기 속에 여성 혐오 문화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캐릭터가 집게 손가락 모양을 하고 있다며 남성 게임 이용자들이 반발했고, 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일러스트레이터를 비난하는 일이 발생했다. 넥슨이 하청업체인 스튜디오 뿌리 측을 압박하며 노동권 침해로 이어졌다. 지난 7월에는 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 개발에 참여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가 과거 SNS에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공유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계약 종료되는 일이 발생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차별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여전한 성차별을 관찰하고 개선할 방법을 찾기 위해 인력과 예산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기다.

6. 안세영·신유빈·임시현… 여성 스포츠 선수 활약

2023년은 여성 스포츠 선수의 활약이 눈부셨다. 먼저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 선수가 지난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지난 1994년 방수현 선수 이후 29년 만의 아시안게임 여자 단식 금메달이다. 올해 17개 국제대회에 참가해 우승 10차례, 준우승 3차례, 3위 3차례를 달성한 안 선수는 명실상부 ‘배드민턴 여자 단식 제왕’으로 거듭났다.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 전지희 선수는 아시안게임 여자 복식 금메달을 수확하며 한국 탁구의 21년 묵은 ‘아시안게임 금메달 한’ 해소했다. 임시현, 안산, 최미선 선수로 구성된 최강 한국 여자 양궁은 아시안게임 단체전 7연패의 기록을 썼다. 대표팀 막내 임시현 선수는 37년 만에 양궁 3관왕에 등극했다. 
골프에서도 낭보가 전해졌다.  유해란 선수가 한국 선수로는 4년 만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신인왕에 올랐다. 2024 LPGA 투어에는 25명 이상의 한국선수들이 참가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7. 대낮 등산로에 발생한 ‘최윤종 성폭행·살인 사건’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등산로에서 대낮에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나 8월 17일 가해자 최윤종(30)은 등산로에서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철제 너클을 낀 주먹으로 폭행 후 목을 졸라 살해했다. 검찰은 최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가해자 최씨는 ‘여성을 강간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이 사건을 ‘동기를 알 수 없는’ 이상동기범죄로 분류하고 범죄에 강경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폐쇄회로(CC)TV를 많이 설치하고 흉악범을 수용하기 위한 교도소를 증설하며 의무경찰제를 도입하는 안이 발표됐다. 엄벌주의를 넘어 처벌의 확실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8.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이후 여가부 앞날은?

‘구조적 성차별’을 보여주는 근거들은 뚜렷하지만, 윤석열 후보의 ‘여가부 폐지’ 기조는 당선 이후에도 계속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한 지 1년6개월이 지났다. 여가부 폐지를 골자로 한 당정의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으나,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정부가 의결한 2024년 여성가족부 예산안은 1조7135억원 규모로 9.4% 늘었으나,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등 성평등 부문 예산은 오히려 줄었다. 특히 여성폭력 방지 및 폭력 피해자지원 관련 예산은 종합 142억원 삭감됐다. 윤 정부의 ‘여가부 무용론’ 기조는 지방자치단체의 여성 관련 정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평등정책 전담부서 위상이 격하되거나 조직에서 ‘여성’이 삭제되기도 했다.

9. 0.7명 합계출산율 쇼크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꼴찌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0.7명. 2023년 2분기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이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합계출산율 0.7은 가임여성 1명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걸 말한다. 2006년부터 17년간 320조원의 정부 예산이 저출산 문제에 투입됐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통계청은 최근 ‘장래인구추계: 2022∼2072년’에서 내년 출산율 0.7명이 무너지며 0.68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10. 부모 모두 육아휴직 쓰면 최대 3900만원 지원

서울시가 ‘서울키즈(kids) 오케이존’을 올해 500개소까지 확대했다. ‘서울키즈 오케이존’ 참여업체는 이처럼 인증 스티커를 붙여 알아보기 쉽게 했다. ⓒ서울시
서울시가 ‘서울키즈(kids) 오케이존’을 올해 500개소까지 확대했다. ‘서울키즈 오케이존’ 참여업체는 이처럼 인증 스티커를 붙여 알아보기 쉽게 했다. ⓒ서울시

내년 1월부터 자녀 생후 18개월 안에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쓰면 첫 6개월 동안 휴직급여를 최대 3900만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된다.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부모 맞돌봄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취지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자녀 생후 18개월 이내에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쓰면 첫 6개월 동안 각각 육아휴직 급여로 통상임금 100%를 받을 수 있다. 매달 주는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도 월 최대 200만∼300만원에서 200만∼450만원으로 높였다.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도 1개월 차 200만 원, 2개월 차 250만 원 등 매달 50만 원씩 상향돼 6개월 차에는 부모가 각각 최대 45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각자 통상임금이 450만 원이 넘는 맞벌이 부부라면 6개월간 총 3900만 원 급여를 받게 되는 셈이다. 7개월 차부터 다시 일반 육아휴직 급여가 적용된다.
아동수당 현금성 양육지원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동수당은 현행 ‘만 8세 미만 아동’인 지급 대상을 12세까지 확대하고, 현행 월 10만원에서 월 20만원까지 액수를 늘리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