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미적 연출‧의상‧동서양 음악 조화
한국춤의 미학을 응축한 안무로 호평
국립무용단 레퍼토리 최초 ‘10년 장기공연’
지난 14일~17일 4년만에 국내 공연

국립무용단 ‘묵향’ 중 종무.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묵향’ 중 종무.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묵향’ 중 난.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묵향’ 중 난. ⓒ국립극장 제공

막이 오르면 화선지처럼 하얀 무대다. 고아한 산조와 정가 선율에 맞춰 고운 한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먹을 새기고 난초를 치는 선비, 얼어붙은 겨울 끝에 홀연히 피어나는 매화, 가을 들판을 금빛으로 수놓는 국화, 호방한 기개를 간직한 대나무를 춤사위로 표현하며 한국의 사계절을 그린다. 한 동작 한 동작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국립무용단(예술감독 겸 단장 김종덕) 대표 레퍼토리 ‘묵향’이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14일~1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4년 만의 국내 공연은 박수갈채 속 막을 내렸다.

사군자를 상징하는 매·난·국·죽을 표현한 작품이다. 총 60분간 중간휴식 없이 총 6장으로 구성된다. 서무와 종무는 먹향을 품은 백색과 흑색으로, 2~5장은 사계절을 상징하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한다. 무용·의상·음악 등 요소는 최대한 전통 양식을 유지하면서, 극도로 세련된 무대 미학으로 동시대 한국춤을 새롭게 정의했다는 평을 받았다.

국립무용단 레퍼토리 중 최초이자, 한국무용으론 이례적으로 10년 장기공연을 이어왔다. 2013년 초연 이후 일본·홍콩·프랑스·덴마크·헝가리·세르비아 등 10개국에서 43회 공연했다. 최근 캐나다(국립예술센터)·미국(존에프케네디센터)을 찾아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국립무용단 ‘묵향’ 중 매.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묵향’ 중 매.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묵향’ 중 국.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묵향’ 중 국.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묵향’ 중 죽.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묵향’ 중 죽.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묵향’을 연출한 정구호 연출가와 안무를 맡은 윤성주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묵향’을 연출한 정구호 연출가와 안무를 맡은 윤성주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국립극장 제공

미술 작품을 보는 듯한 탐미적인 미장센이 인상적이다. 패션·공연·영화·미술 등 분야에서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온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연출했다. 각 장을 대표하는 분홍, 초록, 노랑, 흑과 백색이 흰 스크린과 바닥을 천천히 물들인다. 런웨이에서 볼 법한 세련된 한복 디자인도 눈에 띈다. 달항아리처럼 봉긋하게 부푼 치맛자락은 짧은 저고리와 균형을 이루고, 리듬감 있게 흔들리는 치마폭 아래로 살짝 보이는 버선코가 춤의 맛을 한층 살린다. 음악에도 현대적 요소를 가미했다. 전통 산조와 정가의 고아한 소리에 첼로, 바이올린 선율이 더해져 동‧서양 악기의 음향적 조화를 경험할 수 있다.

한국춤의 미학을 응축한 안무가 백미다. 윤성주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 고(故) 최현의 ‘군자무’(1993)에서 영감받아 만들었다. 현란한 기교나 폭발적인 감정표현은 자제하고,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호흡으로 정중동의 미학을 표현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길고 짧은 호흡, 치맛자락 아래로 언뜻 스치듯 보이는 내밀한 버선발의 움직임”이 핵심이다.

‘묵향’ 지도를 맡은 국립무용단 대표 무용수 김미애, 정관영 단원은 지난 13일 열린 프레스콜에 참석해 10주년 공연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전통의 격이 있기에 현대적인 미장센, 모던한 복식도 어색하지 않죠. 신선하고 자극적이면서도 역시 우리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미애) “발끝 손끝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보는 관객들이 자신만의 하얀 도화지에 무언가를 그리고 공연장을 나가시지 않을까요.”(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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