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울림 편지콘서트 ‘쇼팽, 블루노트’

쇼팽: 난 늘 당신과 함께였어…. 그런데 당신 곁에는 나만 있었나? 당신의 그 수많은 친구들, 언제나 정신없고 떠들썩한 술자리, 도를 넘는 관계들, 그 속에서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어울리는 당신, 난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었어. 내 피아노는, 그런 방탕한 소음을 더 이상 견뎌낼 수가 없어.

상드: 당신 고향과 비슷한 곳에서,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 당신의 건강을 회복시키고 싶었어. 당신의 그 아름답고 고귀한 음악이 태어나는 걸, 함께 지켜보고 싶었어. 하지만 언제까지나 당신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어. 나도 예술가야. 난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게 필요해.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9년의 걸친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극 <쇼팽, 블루노트>에는 두 사람 사이의 격한 언쟁이 나온다. 폐결핵 등으로 병약했던 쇼팽에게 상드는 삶과 음악의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상드는 아픈 쇼팽을 계속 돌봤다. 하지만 쇼팽은 갈수록 병이 악화되면서 점차 예민해졌고 쇼팽을 돌보는데 지친 상드는 자유로워지고 싶은 열정과 욕망을 표현한다. “내 영혼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할 거야. 하지만 내 열정과 욕망은, 자유로워야 해. 그래야 내가 살 수가 있어.” 

산울림 편지콘서트 ‘쇼팽, 블루노트’ ⓒ김수경, 최강훈
산울림 편지콘서트 ‘쇼팽, 블루노트’ ⓒ김수경, 최강훈

쇼팽과 상드의 9년간의 사랑

극에 나오는 대사는 실제 대화는 아니다. 스토리의 대강은 사실에 기반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창작이다. 하지만 허구라고만 하기에는 충분히 그랬을 만한 내용들이다. 내가 쇼팽이었다면, 내가 상드였다면, 저 상황에서 충분히 저런 얘기를 했을 것만 같다.

소극장 산울림에서 지난해 12월 14일부터 31일까지 공연된 음악극 ‘쇼팽, 블루노트’는 10년 동안 계속된 ‘산울림 편지콘서트’의 2023년 판이다. 클래식 라이브 연주와 드라마를 통해 불멸의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하는 ‘편지콘서트’는 그동안 베토벤, 모차르트, 슈만, 슈베르트,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작 등을 다룬 음악극을 무대에 올려왔다. 지난 연말에는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일생을 다룬 극을 무대에 올렸는데, 특히 상드와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졌다. 극의 초반부에는 쇼팽의 병약한 몸과 천재성, 타지 생활로 인한 고립을 중심으로, 중반부에는 상드와의 운명적인 사랑, 후반부에는 상드와의 이별 이후에 닥친 외로운 죽음의 얘기가 펼쳐진다. 

산울림 편지콘서트 ‘쇼팽, 블루노트’ ⓒ김수경, 최강훈
산울림 편지콘서트 ‘쇼팽, 블루노트’ ⓒ김수경, 최강훈

사회주의 운동을 했지만 폭력적인 혁명에는 반대했던 소설가 상드는 1838년부터 쇼팽과 연인 관계를 맺었다. 극은 상드가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쇼팽의 삶과 음악을 시간 순서대로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으로 폴란드 국민들로부터 ‘새로운 모차르트의 탄생’이라는 칭송을 받던 쇼팽이었지만 조국의 불안한 정세와 자신의 음악적 미래에 대한 고민 속에 넓은 세상인 파리로 간다. 쇼팽은 그 곳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소설가 상드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성격과 성향은 달랐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오랫동안 좋은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문제는 쇼팽의 병이었다. 쇼팽은 갈수록 건강이 악화된다. 극에서는 상드가 마요르카 섬으로 가면서 선뜻 쇼팽과 동행한 것으로 나오지만, 상드의 자서전을 보면 큰 부담을 의식하고 고민했음이 나타난다. 상드의 아들 모리스도 병을 앓고 있어서 상드가 돌봤는데, 쇼팽은 자기도 모리스처럼 해주면 병이 나을 수 있겠다며 함께 마요르카로 가기를 원한다. “나는 그 말을 믿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여행에서 그를 모리스와 똑같이 생각하지는 못했다. 단지 그 곁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뿐.” (조르주 상드, 『내 생애 이야기』)

산울림 편지콘서트 ‘쇼팽, 블루노트’ ⓒ김수경, 최강훈
산울림 편지콘서트 ‘쇼팽, 블루노트’ ⓒ김수경, 최강훈

돌봄의 무게 짊어진 상드

상드는 두 사람이나 돌봐야 한다는 것을 무척 부담스러워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결국 쇼팽의 바람대로 함께 간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들의 바람대로, 또 나 스스로 쇼팽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함께 떠나자는 생각을 받아들인 것은 잘못이었다”고 후회한다. ‘두 아이’를 데리고 외국에 가는 것만도 상드에게는 이미 버거운 일이었다.

상드는 쇼팽을 사랑했지만 가족 관계까지 맺을 의사는 없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나는 쇼팽이 우리와 함께 여름 동안 잘 쉬면서 건강을 되찾고 겨울에는 자연히 파리로 불려 가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이 새로운 친구와 함께 가족으로 얽힌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였다.” 쇼팽의 병도 병이었지만, 상드는 쇼팽에게 묶이는 삶을 애당초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급기야 극의 후반부에서는 쇼팽과 상드의 말싸움이 계속된다. 병이 악화될수록 상드에게 의존하려는 쇼팽, 쇼팽을 돌보는데 발목이 잡혀 작가로서의 자유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상드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상드의 자서전에도 쇼팽에 대한 여러 가지 원망의 얘기들이 나온다. “그는 원래 겸손하고 보통 따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원초적인 감각에 있어 양보를 모르고 자기 자신도 모르는 교만함으로 가득 찼다. 그것은 천재인 그에게는 너무나 정당한 것이었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기에 그의 악덕과 미덕, 위대함과 비참함이 있었다. 부담스러운 것은 조금이라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으면서 그는 아주 작은 빛에도 뜨겁게 열광하며 그의 상상력은 그 태양을 보기 위해 어떤 것이라도 지불하며 솟아올랐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에게 따뜻했으며 동시에 잔인했다.” 상드는 쇼팽의 자기중심적인 모습이 무척 싫었던 모양이다.

쇼팽과 상드는 그렇게 갈등하다가 결국 이별했지만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우리 둘 사이는 그렇게 뜨겁지도 않았고 그렇게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우리 이야기는 소설하고는 전혀 달랐다. 우리 관계는 그렇게 서로가 싸우기에는 너무나 밋밋하고 너무나 진지했다. 나는 내 삶과 동떨어진 쇼팽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또 쇼팽도 이런 점에서 나와 생각이 같았고 그의 삶에서 정말 예외적인 우정으로 나를 존중해주었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서로 존중하며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상드는 쇼팽이 가진 음악적 천재성을 높이 사고 있었다. “쇼팽의 천재성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 깊은 감수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단 하나의 악기로 무한의 언어를 이야기하게 했다. 어느 때는 아이도 연주할 수 있는 10줄의 악보에 무한한 승천의 시와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역동적인 드라마를 담아낼 수 있었다.” 

산울림 편지콘서트 ‘쇼팽, 블루노트’ ⓒ김수경, 최강훈
산울림 편지콘서트 ‘쇼팽, 블루노트’ ⓒ김수경, 최강훈

두 명의 배우와 한 대의 피아노

95분의 극에 쇼팽의 일생을 담으려니 스토리는 대단히 압축적으로 전개된다. 연기자로는 쇼팽 역의 류영빈, 상드 역의 이다해, 두 배우만 출연한다. 그래서 단순할 것 같은 이 극의 진짜 매력은 쇼팽의 피아노곡들을 라이브 연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피아니스트 쿠르카 피오트르와 히로타 슌지가 날자별로 번갈아 가면서 연주했다. 쇼팽의 녹턴을 비롯해서 대표적인 피아노곡 9곡을 연극 스토리에 맞춰 라이브로 들으니 연극과 연주회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쇼팽과 상드의 얘기를 다룬 소설 『장송』의 작가 히라노 게이치는 상드와 관계가 나빴던 딸 솔랑주를 쇼팽이 돕는 데서 갈등의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극에서도 나오듯이 그 일도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갈등의 핵심은 상드가 쇼팽에게 치졌다는데 있었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쇼팽과 상드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살면서 종종 보기도 하고 겪기도 하는 일이다. 사랑은 아픈 사람을 돌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을 모르는 일방적인 희생이 될 때 사람들은 번민하고 갈등하며 상처받는다. 극의 마지막은 쇼팽이 외롭게 죽는 것으로 끝난다. 그는 병마로 고통 받으면서도 곡을 만들기 위해 피아노에 매달렸다.

지난주 짐머만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관람했다. 마침 쇼팽의 여러 곡들이 연주됐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피아노 소나타 2번 ‘장송행진곡’이었다. 처연한 장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1839년 쇼팽이 상드와 함께 노앙에 있을 때 만들었던 곡이다. 상드는 쇼팽의 건강이 악화된 그 무렵에 만들었던 곡들은 모두 걸작이었으며 “그중 몇 곡은 죽은 수도사들의 환영과 그들을 둘러싼 죽음의 노래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었다”고 말했다. 쇼팽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마주보며 곡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장송행진곡’을 들으며 죽음이 이렇게 아름답게 들려도 되는 것인가 생각했다. 자신의 외로운 죽음조차 아름답게 남긴 쇼팽이었다. 그러니 쇼팽과 상드가 함께했던 시간도 이별로 끝나기는 했지만 우리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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