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녀의 전장은 없다…
31년 동안 남군만 타던 잠수함
여군 9명 선발·3000톤급에 배치
‘여군도 할 수 있다’ 담론 넘어
성평등·복지 향상 시급

성주빈 대위(왼쪽)와 유효진 대위(오른쪽)가 지난해 12월 22일, 해군 잠수함사령부 잠수함 조종훈련장에서 조종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성주빈 대위(왼쪽)와 유효진 대위(오른쪽)가 지난해 12월 22일, 해군 잠수함사령부 잠수함 조종훈련장에서 조종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여군에게 굳게 닫혔던 문이 또 하나 열렸다. 1993년부터 31년간 남군만 타던 잠수함에 올 초부터 여군 장교와 부사관들이 본격 배치됐다.

김경훈 중사(맨 앞쪽)가 지난해 12월 21일, 해군 잠수함사령부 잠수함 전술훈련장에서 어뢰발사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김경훈 중사(맨 앞쪽)가 지난해 12월 21일, 해군 잠수함사령부 잠수함 전술훈련장에서 어뢰발사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여군의 전투병과 확대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남방한계선 철책을 지키는 GOP, 포병, 방공, 기갑 등의 병과도 이미 여군에 문을 열었다. 육군의 항공작전을 총 지휘하는 항공작전사령관, 상륙함과 전투함을 지휘하는 함장들, 공군 전투비행대대를 이끄는 비행대대장, 해병대 헬기 조종사 가운데에도 여성들이 눈에 띈다.

젠더 편견과 한계를 뛰어넘어 기량을 펼칠 기회를 얻는 여성들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만큼 성평등한 조직문화 확산, 시설·제도 혁과 군 복지 향상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여군들이 써 온 눈부신 ‘최초’의 역사 중에서도 잠수함 승조원 탄생은 특기할 만하다.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장병들이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야 하는 임무 특성상 잠수함은 오랫동안 여군의 배치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군 인력이 점점 늘어나고, 기존 잠수함보다 2~3배가량 커서 여군이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확보된 3000톤급 잠수함이 도입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해군은 앞서 2022년 7월 여군 잠수함 승조를 의결, 2023년 5~6월 여군 9명(장교 2명, 부사관 7명)을 선발했다. 장교들은 29주, 부사관들은 특기에 따라 11주~24주에 걸쳐 고강도 훈련을 받고 잠수함 승조원이 됐다. 이들은 3000톤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과 안무함에 배치됐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4번째로 잠수함에 여군이 탑승하는 국가다.

2022년 6월 기준 여군은 1만6000명에 이른다. 여군 장교·부사관도 2018년 전체의 6.2%(장교 7.9%, 부사관 5.3%)에서 2022년 8.8%(장교 10.9%, 부사관 7.9%)로 늘었다. 인구 감소로 남군 병력 규모가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여군들에게 군의 다양한 병과가 개방되고, 군 내 여군의 수적·질적 위상도 점점 높아지는 모양새다. 국방부는 병역자원 획득 여건을 고려해 오는 2027년 여군 비율을 15.3%(장교 16%, 부사관 14%)까지 높일 계획이다.

아직 여군이 진출하지 못한 영역도 있다. 육군 특전사는 여군을 선발하지만, 단기 침투와 타격, 해상 대테러작전을 주로 수행하는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엔 남군뿐이다. 역시 시간 문제다. 지난 2018년 국방부는 이들 특수부대에도 여군 진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군 성범죄 증가세...2차가해도 지속
군에 대한 신뢰 떨어뜨려
여군 양적·질적 확대와 더불어
안전·평등한 조직 혁신 시급

장밋빛 전망 한편에서는 적지 않은 여군들이 고통받고 있다. 최근 3년간(2020~2023년 6월) 발생한 군 성범죄 사건은 총 4233건에 이른다.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가 접수한 군 성폭력 사건은 2020년 386건(127명), 2021년 866건(200명), 2022년 929건(154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성폭력 사건일수록 여성 피해자가 많다.

많은 군 내 성범죄 피해자들이 군의 일처리나 비밀유지, 피해자 보호 등을 신뢰하지 못해 신고나 보고를 꺼린다(국방부, 2021 군 성폭력 실태조사).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19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도 부대 내 성희롱·성폭력 관련 고충이 공정한 절차에 따라 처리되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48.9%에 불과했다. 2021년 공군 성폭력 사건으로 고(故) 이예람 중사가 사망한 이후 국방부는 △성폭력 실태조사 정기화 △전문상담관 보강 △군인권보호관 및 군인권보호위원회 설치 등을 추진하며 군 내 성범죄에 엄단하겠다고 밝혔으나, 갈 길이 멀다.

‘여군도 할 수 있다’, ‘나라 지키는 데 남녀가 없다’는 단순한 구호만으론 바꿀 수 없는 현실이다. 여군이 기량을 인정받을 기회가 늘어날수록, 안전하고 평등한 조직에서 일할 수 있는지 제도와 조직문화를 점검해야 할 이유다.

여군에 대한 문호 개방은 군 안팎의 여군에 대한 인식 변화와 실질적인 복무 여건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프랑스처럼 독립적인 군 성폭력 대응 전담 기구를 운영하고, 관련 인력과 예산을 늘려 여군이 안심하고 복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피해자들이 신고할 엄두를 못 내는 폐쇄적 환경, 조직적 은폐 시도와 피해자 보복 등 2차 가해도 근절해야 한다. 늘 그렇듯 답은 성평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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