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일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
20대 접어든 임윤찬과 베토벤 ‘황제’ 협연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임기 내 전곡 녹음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에서 협연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임윤찬.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에서 협연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임윤찬.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예매 시작 45초 만에 매진된 연주회. 떠들썩했던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얍 판 츠베덴(63)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가 지난 25일(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26일(롯데콘서트홀) 열렸다.

세계적 음악가들이 새로운 ‘피아노의 황제’로 눈여겨보는 임윤찬(20)의 명성을 재확인하는 무대였다. 이틀 모두 공연장 포토월엔 긴 줄이 늘어섰다. 티켓이나 프로그램 북을 들고 ‘인증샷’을 찍는 젊은 관객들이 많아 클래식 음악회라기보다는 아이돌 가수 콘서트 같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도 25일 공연장을 찾았다. 둘째 날 롯데콘서트홀 객석도 들뜬 분위기였다. 검은 연미복에 흰 나비넥타이를 맨, 갓 스물이 된 임윤찬이 수줍은 미소를 띠고 등장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그가 서울시향과 협연한 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다. 퍽 차분하고 여유로운 연주였다. 독주는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땐 튀지 않고 하나가 돼 마법 같은 소리를 선사했다. 섬세한 타건과 페달 사용으로 셈여림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1악장의 밝고 힘찬 카덴차, 2악장에선 느리고 여리게 속삭이듯 건반을 두드리더니, 3악장에선 또랑또랑하고 박력 있게 달려갔다. ‘황제’가 이렇게 변화무쌍한 곡이었다니!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에서 협연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임윤찬.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에서 협연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임윤찬.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2022년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후 임윤찬의 행보에 주목해 온 팬들에게 ‘황제’는 익숙한 곡이다. 임윤찬이 콩쿠르 우승 후 처음 녹음해 도이체그라모폰(DG)을 통해 공개했던 곡이고, 국내 연주회에서도 여러 차례 들려줬다. 음반 발매를 앞두고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인류에게 큰 시련이 닥친 후 이 곡을 연습하다 보니 그저 화려하고 자유로운 곡이 아니었다. 곡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앞서 임윤찬이 정명훈 지휘로 원코리아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황제’ 연주를 들었다는 한 관객은 “그때와는 또 다른 성숙한 해석이었다. 예매 경쟁이 치열해 썩 좋은 자리에 앉지 못했는데도 음향이 훌륭했다”고 했다.

앙코르로는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 중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를 쇼팽이 편곡한 버전을 들려줬다. 애틋하고 아름다운 선율에 객석은 환호했다. 임윤찬은 객석과 오케스트라를 향해 여러 차례 머리가 휘날릴 정도로 허리를 깊이 숙여 화답했다.

지난 2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 현장.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지난 2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 현장.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젊은 거장’에게 감동한 1부였다면, 2부는 츠베덴 감독과 서울시향의 새 음악 여정을 기대하게 하는 전율의 시간이었다. 말러의 첫 교향곡 ‘거인’. 고백하자면 이날 프로그램만 보고 사탕을 챙겨 갔다. 말러는 복잡하고 어려워서 듣다가 졸지도 모르니까. 폭풍 같은 연주에 압도돼 사탕은 손대지도 않았다.

20대 말러는 생의 양면성을 이 작품에 담았다. 삶과 죽음, 낭만과 이성, 우아한 선율과 통속적인 유행가를 한 교향곡에서 느낄 수 있다. ‘젊은 작곡가가 청춘의 모든 희망과 절망을 담아낸 자기 고백’이라는 평도 있다. 츠베덴 감독이 앞서 로열콘세트르헤보우와 뉴욕 필하모닉과의 첫 공연 때도 선택했던, 그와 함께 성장해 온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연주는 새 소리 같은 청아한 클라리넷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고요하고 신비로운 자연의 정경을 그리며 시작했다. 츠베덴 감독은 연주자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세밀하게 그림을 그리는 지휘자였다. 단원들도 호응했다. 웨인 린·신아라 부악장과 임상우 클라리넷 수석을 포함해 맹활약한 수석 연주자들은 물론, 각 파트 간 섬세하고 치밀한 호흡이 빛났다. 따스하고 흥겨운 왈츠풍의 2악장, 보헤미아 선율이 매혹적인 3악장을 지나 마지막 악장에선 강렬한 감정과 긴장감을 극한으로 몰아붙였다. 날카로운 플루트와 피콜로부터 장엄한 트롬본과 튜바까지 소리의 대향연이었다. 4악장 피날레에서 호른 주자 7명이 일어서서 연주하는 대목에선 응집된 기운이 폭발하는 듯했다. 

곳곳에서 기립박수가 터졌다. 젊은 관객들이 소곤댔다. “임윤찬 보러 왔다가 말러 입덕하겠네.” 츠베덴 감독과 서울시향은 말러 교향곡 전곡(총 10곡)을 녹음해 음반으로 발매할 계획이다. 

지난 2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 현장.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지난 2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 현장.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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