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현지시각) 다보스포럼에서 연설하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EPA 연합뉴스
지난 17일(현지시각) 다보스포럼에서 연설하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EPA 연합뉴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0일 취임한 뒤 충격적인 돌발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한 지 47일 만에 기예르모 페라로 건설교통부 장관을 해임했다. 역대 최단기간 만에 각료를 전격 면직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건설교통부(현지명 인프라부)를 폐쇄하고 차관실로 격하시켜 경제부에 포함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밀레이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초대 내각의 장관 해임은 각료 회의에서 한 대통령의 발언을 페라로 장관이 언론에 유출한 것 때문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밀레이 대통령에게는 아르헨티나의 트럼프, 보우소나르(전 브라질 대통령)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영국의 BBC는 보리스 존슨(전 영국총리)에 처키 인형을 합한 것 같다고 평했다.

트럼프는 밀레이 대통령이 “아르헨티나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보우소나루는 "남미에서 다시 희망이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밀레이는 "좌파와 싸우자"고 선동하고 "마르크스주의 문화"를 비판한다.

맷 골더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극우 경제학자 출신의 밀레이 대통령에 대해 '민족주의(nationalism)', '대중영합주의'(populism), '급진주의'(radicalism)라는 세가지 표현이 어울린다고 말했다.

"중앙은행 폐쇄...달러화를 공식화폐로"

아르헨티나 버스 정거장 ⓒAFP 연합뉴스
아르헨티나 버스 정거장 ⓒAFP 연합뉴스

밀레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폭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달러화를 사용하고 중앙은행을 없애자고 제안했다 무능한 중앙은행과 가치가 급락한 페소를 비판하며 달러를 공식 화폐로 채택하겠다고 공언했다.

'사하라의 얼음처럼 녹고 있는 페소화'를 대신해 미국의 달러화를 공식화폐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아르헨티나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211.4%로 3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밀레이가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페소화 통화가치를 50%나 절하하는 등 충격요법을 시행한 영향이 반영된 것이다.

실질 구매력은 한해 사이에 10% 넘게 줄었고, 국민 40%가 빈곤선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다. 정부 부채도 국내총생산의 80%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진 빚만 460억달러(약 61조원)에 이른다.

물론 이런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밀레이 대통령의 정책이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중앙은행을 없애고 미국 달러를 법정 통화로 만드는 것은 아르헨티나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고 심지어 헌법을 바꿔야 한다.

마일리가 설득력 있게 대통령직을 차지했지만, 그가 이끄는 자유선진당 운동은 의회에서 세 번째로 큰 정치세력에 불과하다. 이는 가능성이 높지 않은 협상이 목전에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마일리의 계획이 실현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부의 국내 통화정책 운용 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르헨티나 통화로 미국 달러를 갖게 되면 금리 정책은 사실상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석유와 연료 수입 가격이 갑자기 오르는 등 미국 달러와 관련된 외부 충격에 더욱 취약해져 내부 조정이 더욱 고통스러울 수 있다.

아르헨티나가 페소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미국 달러가 있어야 한다. 350억~500억 달러가 필요하나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쉽게 빌릴수도 없다.

밀레이 대통령 자신도 이런 '충격요법'으로 경제 안정화 정책을 편다 해도 물가를 안정시키는데 최대 2년이 걸릴수 있음을 인정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다른 말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총파업

(부에노스아이레스 A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각)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의회 밖에서 이 나라 주요 노동자 단체 소속 노조원들이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벌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A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각)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의회 밖에서 이 나라 주요 노동자 단체 소속 노조원들이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벌이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곧바로 세금 인상, 공기업 민영화, 규제 철폐, 시장의 자유 확대, 노동자 권리 축소 등의 정책을 쏟아냈다. 경제학자 시절부터 옹호해 온 이른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 정책을 통해 아르헨티나 경제의 오랜 악폐를 근절하고 경제를 살려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루이스 카푸토 신임 경제장관은 밀레이 대통령 취임 이틀 뒤인 지난달 12일 공식 페소 환율의 54% 평가절하, 전기·교통 보조금 축소, 공공 건설사업 계획 전면 취소 등의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20일에는 광범한 분야에 걸쳐 366개 조항으로 구성된 긴급 행정명령을 전격 발표해 32개의 법률과 6개의 행정명령을 폐지하고 31개의 법률을 개정했다. 아르헨티나 헌법은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기 불가능한 예외적인 경우” 정부가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처에 따라 주택 임대료의 상한이 없어졌고, 특정 소비재에 대한 정부의 가격 통제도 사라졌다. 국영 기업의 민영화 금지법도 폐지돼 항공·철도·석유 등 국영 기업이 민간에 매각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 신입 직원의 수습기간을 3개월에서 9개월로 늘리고 해고 노동자의 법정 퇴직금과 산전·산후의 의무 임신휴가는 줄이는 등 노동자의 권리를 많이 축소했다.

노동단체들은 총파업으로 맞섰다.

아르헨티나 최대 노동조직인 전국노동자총연맹(CGT)은 아르헨티나자치노동자연맹(CTA-A), 아르헨티나노동자연맹(CTA-T)과 함께 대통령 취임 45일 만인 24일(현지시각) 정오부터 12시간 동안 한시적으로 공동 총파업을 벌였다. 이번 총파업은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 집권 시절인 2019년 5월 이후 5년 만에 조직된 전국 규모의 파업이다.

총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이날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 거리 시위를 벌였으며, 시위에는 야당과 시민단체 등도 참여했다.

이날 시위에 나선 이들은 “각종 규제 철폐로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각종 연금을 축소하는 정부 정책은 서민과 노동자에게 고통을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밀레이 대통령이 그동안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만들어낸 정책과 제도를 한 순간에 뒤엎으려 한다”며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밀레이 정부는 이번 총파업에 대해 “노조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파트리시아 불리치 치안 장관은 소셜미디어에 “마피아 같은 노조원, 빈곤에 빠트린 책임자들, 부패한 법조인과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향유하며, 밀레이 대통령의 결단력 있는 변화에 저항하고 있다”며 “파업은 우리를 멈춰세우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충격

'밀레이 배신자'라고 적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벽글씨 ⓒAP 연합뉴스
'밀레이 배신자'라고 적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벽글씨 ⓒAP 연합뉴스

밀레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공산주의를 조장하는 예수회의 수사(修士)", "지구상의 사악한 자의 대표자"라고 부르며 맹렬하게 공격했다. 

낙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언론 인터뷰에서 부패한 정부가 국민의 돈을 강탈한다고 주장하면서 "국가는 유치원의 소아성애자"라고 비난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첫날 정부 조직을 개편했다. 그의 공약이기도 했던 여성인권부와 환경부, 노동 사회보장부 등 일부 부처 폐쇄하고 정부 지출 삭감에 나섰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오늘 우리는 길고 슬픈 쇠퇴의 역사를 끝내고 아르헨티나를 재건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며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은 엄청나지만, 민족의 진정한 힘은 도전에 직면했을 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라를 경제 위기에서 끌어내기 위해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대자들은 사회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개혁은 이미 60건 이상의 소송이 제기되는 등 여러 측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으며, 그는 이미 여러 차례의 대중 시위의 반대주장에 직면해 있다.

직무 수습기간을 3개월에서 8개월로 늘리고 해고 노동자의 법정 퇴직금과 산전·산후의 의무 임신휴가는 줄이는 등 노동자의 권리를 많이 축소했다.법원은 이런 정책에 대해 의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저지했다.

밀레이 정부는 국영 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의회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밀레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범여권은 하원 257석 중 75석, 상원 72석 중 13석만 보유한 소수파에 머물고 있다. 제1야당인 페론주의 정당 ‘조국을 위한 단결’(UP)은 하원 102석과 상원 33석을 차지하며 범여권을 압도한다.

집권 초 밀레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를 보면, 대통령 지지도는 58%로, 지난해 11월 대선 지지율인 56%를 웃돌고 있다.

이런 지지세가 지속될지는 알수 없다. 밀레이 대통령의 정책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효과가 더디게 나타나면 국민들은 참지 못하고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국제통화기금은 올해 아르헨티나의 경제 성장률이 지난해와 비슷한 -2.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헌법상 행정명령 대상이 될 수 없는 조세·사법·선거·정당과 관련된 664개 조항의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광범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어 ‘옴니버스 법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 법안에서 ‘경제 분야에 대한 의회 입법권을 행정부에 위임해 줄 것’을 요구했다. 기한은 2년으로 하되, 필요하면 2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임기 4년 내내 위기 극복을 빌미로 경제 분야에서 의회의 견제 없이 법을 마음대로 만들어 시행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블룸버그통신은 하비에르 마일리 대통령이 그의 개혁법안을 아르헨티나 의회에서 자신의 전면적인 개혁 법안에 대해 물타기를 하고 있다며 이는 자유주의자의 충격요법이 정치적 장애물에 직면하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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