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①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본인 제공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본인 제공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이라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 후에는 항상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뒤따른다. 아무래도 우리사회에서 ‘남성’과 ‘페미니즘’이 한 자리에 붙는 경우가 여전히 흔치 않기 때문이리라. 남함페는 이렇게 남성과 페미니즘이 서로 형용모순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그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는 단체다.

유별난 활동을 한다고 생각해본적 없으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대체 어쩌다가 이런 활동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 한다. 대단한 결의나 엄청나 사건을 계기로 변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다. 그저 자연스레 여성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페미니즘의 필요를 느꼈다.

한 친구는 늦은 밤 택시를 탈 때면 혹시나 불편한 이야기를 하거나 위험한 상황이 닥칠까 항상 전화하는 척을 한다고 했다. 자취를 하던 친구는 한 번도 마음편히 창과 커텐을 열고 환기를 시킨 적이 없다고 했다. 동시대를 사는 동년배 친구들의 경험이 성별에 따라 너무 달라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여성신문
©여성신문

2017년 독서모임으로 시작한 모임은 불법촬영 시청가해 규탄 캠페인과 성폭력 2차 가해 규탄 집회를 진행했다. 페미니즘 교육과 남성성 연구, 돌봄모임과 독서모임 운영 등 성평등을 실천하기 위한 활동도 이어갔다.

그렇게 페미니즘을 공부 모임을 이어가던 차, 2019년 수면 위로 드러나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던 이른바 ‘N번방 사건’을 접하게 됐다. 더 이상 페미니즘 공부만 하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가해 행위에 가담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문제시하지 않았을까.

가해자들은 그것을 성적인 욕구 때문이라 이야기 했지만, 그것은 도저히 성적인 욕구라고 표현할 수 없는 타인을 향한 끔찍한 폭력과 지배 뿐이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넘어서서 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했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먼저 어떻게 남성과 함께 페미니즘을 할 수 있을지 실마리를 얻고자 남성 페미니스트를 만나 인터뷰하고 보고서를 썼다. 그들이 페미니즘을 접한 계기, 페미니즘을 접하며 생긴 고민 등을 들으며 남성과 페미니즘 사이 접점을 늘려나갈 필요를 절감했다.

이후 다양한 주제로 가볍게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를테면 작년에는 5차시로 ‘신-남성 연애스쿨’이라는 강의를 열었다. 수많은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연애에 대한 고민과 환상, 돌봄에 대한 오해 등을 이야기 나누며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우리에게는 기존 가부장제의 왜곡된 남성성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남함페 활동가 다섯이 모여 같이 글을 써보기로 했다. 여성신문 지면을 낭비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와 발화권력에 대한 염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뒤에 서 있는 건, 겸손을 빙자한 책임회피가 아닐까. 특히 청년 남성을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백래시가 거세게 몰아치는 지금, 누군가 이들과 대화를 시도해야한다면 남함페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정기 연재 프로젝트 제목도 <벌거벗은 남자들>로 정했다. 문제 상황에서 한 발짝 떨어져 근엄하게 타인을 꾸짓는 글이 아니라 나의 과오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글, 미약하지만 무엇이라도 해보겠다고 다짐하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소재도 정치, 사회 등 거창한 문제만 다루기 보다 연애, 가족, 돌봄, 군대 등 일상에 맞닿은 고민이 페미니즘과 어떤 접점으로 이어지는지 풀어내보고자 한다.

언젠가 페미니즘이 너무 당연해, ‘남성과 함께’라는 수식어가 무의미해지는 날이 올 수 있도록 한 발을 내딛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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