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정동극장의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은 원작과 연극을 함께 연결했습니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한 장면.  제공=프로젝트그룹일다, 사진 KIM ILDA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한 장면.  제공=프로젝트그룹일다, 사진 KIM ILDA

“심장이 시몽 랭브르의 몸으로부터 빠져 나왔습니다.”
“검은 화면 위로 그녀의 심장 파동이 반짝거립니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 판정을 받은 청년의 장기가 기증되기까지 24시간의 기록을 긴박하게 다루고 있다.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지난 1월 20일부터 3월 10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2014년 프랑스에서 출간됐던 이 소설은 장기 기증이라는 강렬하고 미묘한 소재를 정면으로 다루어 삶과 죽음의 경계, 죽음에 대한 윤리와 애도, 생명의 의미 등의 깊은 주제들을 성찰해 낸 베스트셀러 작품이다. 연극은 원작자와 각색가 에마뉘엘 노블레의 긴밀한 작업으로 한 사람이 연기하는 1인극의 형태로 각색되었다. 이 연극은 국내에서는 네 번째 공연인데, 지난 시즌에 참여했던 손상규, 김신록, 김지현, 윤나무 네 명의 배우가 모두 출연해 다시 한번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포스터.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포스터. 

2월 2일 손상규가 출연하는 공연을 관람했다. 연극은 시몽 랭브르라는 19세의 청년이 친구들과 새벽에 서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시작된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코마 상태에 빠진 시몽은 뇌사 판정을 받게 된다. 의사 레볼은 “오늘 아침 병원에 왔을 때 시몽의 상태는 절망적이었다”고 부모 숀과 마리안에게 말한다. 하지만 시몽의 부모는 따지듯이 묻는다. “코마에서 깨어나는 경우도 있죠. 그런 일이 벌어지잖아요.” 레볼은 잘라 말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시몽은 뇌사 상태예요. 사망했어요. 죽었습니다.” 그런데 시몽의 육체는 아직 경직되지 않았다. 그의 육체는 따뜻하고 선명한 선홍색이었으며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결국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토마는 숀과 마리안에게 힘든 얘기를 꺼낸다. “두 분이 느끼는 고통은 잘 압니다. 하지만 시몽의 장기 기증을 고려해 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선뜻 답을 하지 못하는 부모에게 토마는 설득을 계속한다. “아드님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는거죠.” 숀이 토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알아요. 다 압니다. 이식 덕분에 생명을 구할 수 있고, 누군가의 죽음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할 수 있죠. 하지만 우린, 그게 시몽이란 말입니다. 우리 아들이요. 이걸 이해하겠소?”

아버지 숀은 “염병. 이럴 순 없어!”라며 신음을 내뱉었고, 마리안은 심장 뿐 아니라 신장, 간, 심지어 눈까지 떼어낸다는 설명에 기겁을 한다. 토마는 쫓기는 시간을 의식하며 “아드님의 몸을 원래 모습대로 되돌려 놓겠습니다”라고 약속한다. 토마는 <플라토노프>라는 희곡에 나온 구절을 떠올린다. “죽은 자들은 땅에 묻고 살아있는 자들은 고쳐야지.”

삶과 죽음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아들은 뇌사 판정을 받았지만 다른 몸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다니 이것은 죽는 것인가 사는 것인가. 이렇게 인간에게서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은 떨어지지 않고 서로 얽혀있다. 무대에 혼자 있는 1인 서술자는 해변가를 들어오고 나가는 이 청년의 몸과 기억, 그리고 24시간 동안 그의 심장을 만나게 될 사람들의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전해준다. 확장되고, 수축되고, 피를 실어 나르기 위해 쉴 사이 없이 애쓰는 심장과도 같은, 생의 순간이 무대에서 묘사된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한 장면.  제공=프로젝트그룹일다, 사진 KIM ILDA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한 장면.  제공=프로젝트그룹일다, 사진 KIM ILDA

압축된 연극 보다는 사실 원작의 깊이가 더하다. 원작은 죽은 아들의 장기를 적출해서 여러 환자들에게 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살아있게 표현하고 있다. “폐는 지방의 또 다른 지역들에 도착했다. 그것들은 다른 육신들을 향해 질주했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그녀의 아들의 단일성에서 살아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만의 특별한 기억과 이렇게 분산된 육체를 어떻게 결부시켜야 할까? 그의 존재, 이 세상에 비추어진 그의 모습, 그의 혼은 또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러한 질문들이 부글거리는 기포처럼 그녀 주위를 맴돈다. 그러다가 시몽의 얼굴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다. 말끔하고 온전하다. 그것은 나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그 아이다. 그녀는 깊은 안도를 느낀다.”

장기 적출을 할 때 숀과 마리안이 병실에서 나간다. 문 앞에 있던 토마가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제게 하십시오”라고 말한다. 숀이 힘들게 소리를 내며 청을 내놓는다. “들어낼 때, 시몽의 심장, 그때, 시몽에게, 그러니까 정지시킬 때, 심장을, 말해 줘요, 내가, 그 애에게 꼭 말해 줘요, 우리가 있다고, 함께한다고, 우리 모두 그 애를 생각한다고, 우리 모두의 사랑을.” 마리안이 뒤를 받는다. “그리고 루와 쥘리에트도요, 그리고 할머니도.” 그러더니 다시 숀, “바닷소리, 들려줘요.” 그가 토마에게 이어폰과 MP3 플레이어를 내민다. “7번 트랙이에요. 맞춰 놨어요. 아이가 바닷소리를 듣게요.” 그러자 토마가 그 의식을 두 사람의 이름으로 완수하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시몽에 대한 장기 적출은 끝났다. “그의 육신은 이제 가죽만 남았다. 생명이 물러가면서 남겨 준 것, 죽음이 전장에 놓아둔 것. 그건 침범당한 육신이다. 골격, 뼈대, 피부, 청년의 피부는 서서히 상아빛을 띠기 시작한다.” 그러나 극은 그런 감정에 머무르지 않는다. 장기 기증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들에게 빨리 장기를 갖고 달려가서 24시간 안에 이식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과정은 건조하기만 하다. 세상을 떠나고 자신의 장기들을 다 떼어준 청년에 대한 애도과 슬픔 같은 것은 자리할 여유가 없다, 무대 위에는 시간이 긴박하게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커다란 시계가 설치 돼있다.

1인극이지만 장기 이식과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청천병력 같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사이도 없이 장기 기증을 제안받고 설득당하는 부모, 그런 부모를 앞에 두고 장기 기증을 제안하고 설득하는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와 의사, 수혜자 선정에서부터 운송에 이르는 장기 이식 의 전 과정을 관리하는 총괄국의 담당자, 전국의 병원에서 장기를 가져가기 위해 달려온 적출팀, 그리고 불안한 청춘의 격랑과 직무 사이에서 흔들리는 수술실 간호사도 나온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한 장면.  제공=프로젝트그룹일다, 사진 KIM ILDA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한 장면.  제공=프로젝트그룹일다, 사진 KIM ILDA

이식 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심장이 수축하며 진저리를 친다. 거의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경련이 이어진다.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면 그 미약한 박동을 볼 수 있다. 그러더니 그 이식된 장기가 차츰차츰 몸 안에서 혈액을 펌프질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규칙적이지만 이상하게 빠른 박동이 나타나다가 곧 안정된다. 그 박동은 태아의 심장 박동을, 처음 초음파를 찍을 때 볼 수 있는 그 툭툭 튀는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분명, 지금 들리는 소리는 최초의 박동, 첫 번째 박동, 여명을 알리는 박동이다. 죽은 몸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것이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한 장면.  제공=프로젝트그룹일다, 사진 KIM ILDA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한 장면.  제공=프로젝트그룹일다, 사진 KIM ILDA

극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군들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있다. 그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시몽의 몸에서 장기들을 적출하고 그 장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들을 위해 긴박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그들의 일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죽음 앞에서 특별히 슬퍼하지도 않고 장기를 적출해 다 떼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기계적이며 냉정하기까지 하다. 관객들에게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담담하고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무대, 영상, 조명 그리고 음악의 정교한 미장센이 돋보인다. 비스듬히 놓인 상부는 거대한 스크린으로도 사용되는데, 스크린 가득 영상이 띄워지며 거대한 파도의 영상과 소리가 공간을 압도하는 순간은 공연의 백미로 손꼽힌다. 장면의 정서와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음악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관객들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이 연극의 매력은 1인 배우가 100여 분의 시간 동안 다양한 캐릭터의 인물들을 무대로 불러내서 서술하는데 있다. 그만큼 순간순간 캐릭터를 바꿔야 하는 치밀한 연기와 절제가 요구된다. 1인극으로 이렇게 다양한 스토리를 풀어갈 수 있음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다만 1인 다역의 빠른 템포는 때로는 관객의 정신을 빼놓기도 한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음미하고 되새길 여유를 주지 않은채 연극은 빠르게 흘러간다. 객석에는 생각보다 젊은 관객들이 많았다. 아직 죽음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그들은 장기를 적출당한 시몽의 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떠올렸을까. 그는 죽은 것일까, 새 생명을 얻은 것일까. 죽은 자의 장기를 다 떼어내고 죽어가던 생명을 살리는 것은 고장난 물건을 ‘수선’하는 것과는 다른 일임에 분명하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영혼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여성신문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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