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소방관 되려면 여성도 군대 가야”
이준석의 개혁신당 공약 논란
차별 부추기는 성별 갈라치기 정책
양현아 교수진

개혁신당의 이준석 대표와 양향자 원내대표가 1월29일 국회에서 '경찰, 소방 등의 공무원이 되려는 여성은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혁신당의 이준석 대표와 양향자 원내대표가 1월29일 국회에서 '경찰, 소방 등의 공무원이 되려는 여성은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을 앞두고 ‘여성도 군 복무’ 공약이 또 나타났다.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은 군 복무를 한 여성만 경찰·소방관·교정 공무원에 지원할 수 있다는 ‘여성 신규 공무원 병역 의무화’를 제시했다. 여성도 공무원 자격을 얻고 싶다면 군대 가라는 주장이다.

1999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으로 폐지된 ‘공무원 군 복무 가산점제’와 닮은꼴이다. “군 복무는 헌법이 정한 국방의 의무일 뿐 희생이 아니”고, “군 가산점 제도는 실질적인 성차별이며 병역을 면제받는 남자도 차별하는 제도”라는 헌재 판단을 귀담아들었다면 이런 공약을 내놓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개선 권고로 사라진 ‘경찰채용시험 응시 자격 군필자 제한’ 조치도 떠오른다. 이 대표는 “군 복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능력이 경찰 업무수행에 필요하다면 채용시험을 통해 검증하거나 채용 후 교육을 통해 해결할 사안”이라는 인권위 판단도 검토하지 않은 듯하다.

경찰·소방 공무원의 ‘남초 현상’을 깨고 성별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대하려는 국가 차원의 방침과도 어긋난다. 한국 정부는 공직과 공공기관에서 여성의 의사결정 참여와 여성 인력 활용을 늘리기 위해 2013년부터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 계획을 시행 중이다.

갈 길이 멀다. 2022년 기준 여성 경찰공무원은 전체의 14.5%, 소방공무원은 10.3%에 그쳤다. 그해 임용된 일반경찰공무원의 15.1%(2만381명)만이 여성이다. 여성 관리직도 5.7%(1335명)에 불과했다. 소방청이 지난 1일 발표한 올해 소방공무원 채용 계획에서 여성 채용인원은 17.4%(293명)뿐이다. 지난해엔 13.8%(216명)였다. 이런 현실엔 눈 감고 ‘여성 공무원 군필’ 제도를 도입해선 문턱만 높아진다. ‘유리천장지수 꼴찌 국가’ 오명만 이어갈 뿐이다. 

이 대표는 ‘여성 신규 공무원 병역 의무화’가 인구절벽에 따른 병력 감소 대책이라며 “공약이 실현되면 연간 1만~2만 명의 병역 자원을 추가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투병 역할 수행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요즘 군대는 현대전을 수행할 지식과 정보기술을 갖춘 스마트한 군인을 원한다. 전투와 파괴를 넘어 평화 중재, 공공 사회서비스 등 군의 임무와 활약 범위도 확장되는 추세다. 기존 병역제도 유지보다, 군의 패러다임 변화에 맞춘 병역제도 개혁을 모색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무엇보다도 “한쪽 성별만 부담했던 병역을 나머지 절반이 조금씩 더 부담해 나가는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이 대표의 주장은 한숨만 나온다. 구조적 성차별을 지적하기보다 여성을 탓하는 지겨운 ‘갈라치기’ 정치다. 이걸 개혁이라 우긴다. 논리적으로도 오류가 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병역 의무를 지지 않아’ 일어나는 기본권 침해 문제와, ‘남성만 병역 의무를 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기본권 침해 문제는 다르다.

남성의 병역 의무가 정말로 공무원을 희망하는 남성들을 ‘억울한 피해자’로 만드는지도 따져볼 문제다. 군 가산점제도는 37년간 시행됐다가 폐지됐지만, 군 복무 경력은 공무원 호봉 산정이나 연금법 적용 시 공무원 경력으로 인정된다. 국가보훈부는 나아가 공공부문에서 호봉이나 임금 결정 시, 군 의무복무 기간을 근무 경력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내용의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 개정을 추진 중이다. 공무원연금법에서도 현역병 또는 지원에 의하지 아니하고 임용된 하사관의 복무기간을 공무원의 재직 기간에 산입하고 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남성은 병역 의무를 부담하는 측면에서는 여성에 비해 불리한 대우를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여성은 병역 의무가 수반하는 훈련과 직업 선택의 기회, 그리고 공무원 임용을 통한 보상제도 등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됐다”며 “국가의 국방정책의 필요성에 따라 남성과 여성이 다르게 배치되고 활용된 결과, 양 집단이 서로 다른 차원에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해 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심한 취업난 속 군 복무로 인한 공백기를 부담스러워하는 구직자가 늘고 있다. 여성의 공무원 시험 합격률이 증가할수록 남성을 중심으로 ‘역차별’ 볼멘소리도 커진다. 그렇다고 차별적인 제도를 도입해서야 해결될 리 없다. 

남성들이 군 복무로 느끼는 박탈감을 줄이는 것은 여성들이 아닌 국가와 정치의 책임이다. 군 복무 환경과 인권 상황부터 개선해야 한다.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군대와 안보를 연구하는 김엘리 성공회대 시민평화대학원 외래교수의 일침이다. “여성 징집 요구는 남녀평등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도 ‘군대에 보내 사람 만들어야 한다’는 감정 배설의 뜻이 크다. (...) 더 나은 논쟁의 방향은 ‘여성’이 군대에 가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군대’는 갈 만한 곳인가다. 젠더 갈등이 아니라 ‘군대’가 논의의 초점이 돼야 한다.” 개혁신당이 귀 기울이길 바란다.

참고문헌

양현아, 『병역법 제3조 제1항 등에 관한 헌법소원을 통해 본 ‘남성만의’ 병역의무제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08

김엘리,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 동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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