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현대미술 거장 필립 파레노
28일부터 리움미술관서 대규모 개인전
외부 센서로 데이터 수집-AI 기술 활용
예술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 제시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VOICES)가 오는 28일부터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홍철기 촬영/리움미술관 제공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VOICES)가 오는 28일부터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홍철기 촬영/리움미술관 제공
오는 28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VOICES) 전시 전경. ⓒ이세아 기자
오는 28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VOICES) 전시 전경. ⓒ이세아 기자
오는 28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VOICES) 전시작 중 ‘여름 없는 한 해’(2024). ⓒ이세아 기자
오는 28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VOICES) 전시작 중 ‘여름 없는 한 해’(2024). ⓒ이세아 기자

해질녘 주황빛으로 물든 미술관에 물고기들이 유유히 떠다닌다. 연주자 없는 피아노가 이따금 홀로 불협화음 같은 멜로디를 연주한다. 주황빛 눈이 피아노 위로 조금씩 떨어져 자그만 산을 이룬다.

프랑스 현대미술 거장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가 한국에 왔다. 오는 28일부터 리움미술관에서 국내 최초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1990년대 초기작부터 최초로 공개되는 대형 신작까지 총 40여 점을 미술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아름답고 쓸쓸한 꿈 같다가도, 이상야릇한 작품으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리는 매혹적인 ‘파레노 월드’다.

파레노는 지금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파리 부르스드코메르스와 퐁피두센터, 뉴욕현대미술관(MoMA), 런던 테이트모던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리옹 비엔날레, 맨체스터 국제 페스티벌 등에 참여했다. 퐁피두센터, 루마아를,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 파리근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MoMA, 테이트모던, 아이리쉬미술관, 반아베미술관, 와타리현대미술관, 워커아트센터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필립 파레노.  ⓒ김제원 촬영/리움미술관 제공
필립 파레노. ⓒ김제원 촬영/리움미술관 제공

전시도 하나의 작품이라고 보는 작가다. 미술관 밖의 세계와 관객이 상호작용하며 예술을 새롭게 경험하게 하는 전시를 연다. “미술관은 언제나 닫혀 있는, 작품의 보관·보존을 위해 폐쇄적인 구조를 유지하는 ‘버블’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공간에 틈을 내고 싶었습니다.” 파레노가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설명했다.

이번엔 리움미술관 야외 데크에 센서 기능을 갖춘 ‘인공두뇌탑’을 세웠다. 신작 ‘막’(膜)이다. 이 거대한 탑이 습도, 풍량, 소음, 대기오염, 미세한 진동까지 지상의 환경 요소를 수집해 미술관 내부로 보낸다. 데이터는 소리가 돼 전시공간 곳곳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또 쉬지 않고 변화하는 영상이 돼 미술관 로비 대형 스크린에서 흘러나온다. 야외 환경 조건에 따라 켜졌다 꺼지고 소리를 내면서 다소 기괴하고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주는 ‘차양’(Marquee) 연작(2014-2023)과도 연결돼 있다.

필립 파레노, 막(膜), 2024, 콘크리트, 금속, 플렉시글라스, LED, 센서, 모터, 마이크, 스피커, 1360 x 112.7 x 112.7 cm.  ⓒ홍철기 촬영/리움미술관 제공
필립 파레노, 막(膜), 2024, 콘크리트, 금속, 플렉시글라스, LED, 센서, 모터, 마이크, 스피커, 1360 x 112.7 x 112.7 cm. ⓒ홍철기 촬영/리움미술관 제공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VOICES)가 오는 28일부터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이현준 촬영/리움미술관 제공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VOICES)가 오는 28일부터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이현준 촬영/리움미술관 제공

배우 배두나와도 협업했다. 이름도 역할도 없는 일본 망가 캐릭터 ‘안리’에 목소리를 부여한 작품 ‘세상 밖 어디든’(2000)을 포함해 전시공간 곳곳에서 나는 소리를 잘 들어보면 사람의 말소리다. 배두나의 목소리가 인공지능(AI)와 만나 ‘실재하는 가상’의 목소리로 재탄생했다. AI가 만든 영상 작품 ‘대낮의 올빼미’(2020~2023)도 로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어느 물가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정지 화면 같지만 계속해서 변화한다.

파레노는 “AI를 인간과 최대한 비슷한 무언가로 만들려 하진 않았다. 어느 순간 ‘언캐니 밸리’, 진짜가 아님을 직감적으로 맞닥뜨리는 순간이 있다. AI는 훌륭한 도구이나 도구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전시 제목 ‘보이스’(VOICES)란 ‘다수의 목소리’를 뜻한다. “누구든 어떤 사물에 집중하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목소리들이 전시를 통해 기능을 갖고 이 세계의 일부가 됩니다.”

전시는 리움미술관 전관에서 펼쳐진다. 블랙박스는 영화관이 됐다. ‘최초의 차양’(2016-2024)은 영화 상영이 끝나면 공간을 환하게 밝히며 막간을 알리는 사이니지 조명 역할을 한다. 대중문화의 아이콘 마릴린 먼로를 AI로 되살린 영상 ‘마릴린’(2012), 고야가 집 벽에 그린 ‘검은 회화’(Las Pinturas Negras)를 철거 전 상태처럼 재현한 ‘귀머거리의 집’(2021), 인공정원에 관한 ‘C.H.Z.’(지속적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 2011)까지 네 편을 감상할 수 있다.

영화관 아래 그라운드갤러리는 키네틱 공간이 됐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작품들이 춤추는 연회장”이다. 벽을 따라 ‘깜빡이는 불빛 56개’(2013)가 늘어섰고, ‘움직이는 벽’(2024)이 서서히 넓은 공간을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 블랙박스와 그라운드 갤러리를 연결하는 두 대의 에스컬레이터에서 동료 작가 티노 세갈(Tino Sehgal)의 퍼포먼스 ‘라이브’도 볼 수 있다.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VOICES)가 오는 28일부터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이현준 촬영/리움미술관 제공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VOICES)가 오는 28일부터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이현준 촬영/리움미술관 제공

프랑스 그래픽 디자인 듀오 M/M(Paris), 네덜란드 패션사진 듀오 이네즈 앤 비누드, 동료 작가 피에르 위그 등과 협업한 파레노의 1990~2000년대 초기작도 감상할 수 있다. 파레노가 참석하는 아티스트 토크,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이 참석하는 큐레이터 토크 등 다채로운 부대 행사도 열린다. 니콜라 부리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의 강연, 작가의 작품 세계를 깊이 살펴보는 작가 연구 세미나, 작품을 감상하며 창작에 참여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이번 전시는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문화예술 후원 프로그램인 ‘메르세데스-벤츠 셀렉션’의 지원으로 진행된다. 김성원 부관장은 “혼자 와서 오랜 시간 경험해 보면 좋은 전시”라고 귀띔했다. 7월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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