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예지 국회의원
소프라노 조선형과 듀오 콘서트
‘Sereni noi insieme‘(우리 함께 행복한)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소프라노 조선형. ⓒ김예지 의원실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소프라노 조선형. ⓒ김예지 의원실

 21대 국회의원으로 있는 김예지가 피아니스트인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시각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이 된 줄로 알고 안내견 ‘조이’가 더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김예지 의원, 아니 김예지 피아니스트가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회를 갖는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맞아, 원래 피아니스트였지”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서 2월 7일 저녁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소프라노 조선형과 함께 가진 듀오 콘서트를 관람하러 갔다.

나도 이 기회에 연주자 김예지의 이력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됐다.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피아노 학사, 음악교육 석사를 하고 피바디음악대학에서 석사, 위스콘신대학교 메디슨 캠퍼스 대학원 피아노 연주 교수법 박사를 취득했다. 숙명여자대학원 초빙교수 및 유니온앙상블 예술감독을 역임하는 등 전문 연주자와 교육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 지금은 21대 국회에서 문화체육관광위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계속 정치를 할 것은 아닌 듯하니 다시 피아니스트로 돌아가게 될 것 같다. 김예지는 최근 발간한 책 『어항을 깨고, 바다로 간다』에서 “나는 지금도 피아니스트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 간다”고 말하고 있다.  

칠흙같이 어두운 무대 위
다정하고 서정적인 선율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소프라노 조선형. ⓒ김예지 의원실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소프라노 조선형. ⓒ김예지 의원실

시각 장애로 앞이 안 보이는 피아니스트는 어떻게 연주를 할까 궁금했다. 김예지는 안내견 ‘조이’와 함께 무대로 입장을 했다. 무대에 들어선 조이가 피아노와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려하자 오히려 김예지가 제 길을 잡아주기도 했다. 서로가 이끌어주면서 도우며 지내는 모습이다. 조이는 피아노 옆에 얌전히 엎드려 있었고 김예지는 슈만의 ‘헌정’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이날 연주에 특별한 기교가 발휘되지는 않았지만 여유로웠고 안정적이었다. 악보를 볼 수 없으니 암기해서 연주를 하는데 이미 익숙한 분위기였다.

1부의 압권은 김예지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7번 독주.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무대 위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연주자를 볼 수 없는 정도로 깜깜해졌다. 생각해 보니 앞이 보이지 않는 연주자에게는 조명이 켜지든 꺼지든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칠흙같이 어두운 무대 위에서 다정하고 서정적인 선율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7번이 들려왔다. 불꺼진 공연장에서 듣는 서정적인 선율의 느낌은 마치 베토벤의 야상곡을 듣는 것 같은 새로운 것이었다. 아름답기 이를데 없는 시간이었다.

이날 1부에서 김예지는 진지하게 클래식 음악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이어진 2부에서는 긴장을 좀 풀고 즐거움과 위로를 전할 수 있는 무대를 이어갔다. 김예지와 조선형 두 사람이 한 대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포핸즈’를 선보였다. 가브리엘 포레의 돌리 모음곡 중 1번 자장가,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 5번을 함께 연주했다. 두 사람의 합이 잘 맞았다. 앞이 안 보이는 연주자이기에 혹시 서로 꼬여버리는 실수가 나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은 기우였다. 듀오 연주는 훈훈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듀오 연주를 하면서 이루어지는 교감을 보니 김예지와 조선형은 그냥 무대에서 만난 사이 같지 않았다.  

‘포핸즈’ ‘음악에게’ 
김예지와 조선형의 교감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소프라노 조선형. ⓒ김예지 의원실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소프라노 조선형. ⓒ김예지 의원실

마지막에 김예지가 성악을 할 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예지는 소프라노 조선형과 함께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게(An die Musik)’를 불렀다. 슈베르트가 음악이 주는 위안에 감사하며 음악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지은 곡이다. “음악인으로서 음악을 통해 위로받았던 감사함을 관객들에게 돌려드리고 함께 노래하기 위해 이 곡을 마지막으로 선택했다”는 것이 김예지의 얘기였다. 그런데 김예지가 노래를 무사히 끝마치자 옆에 서 있던 조선형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뭉클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김예지와 조선형은 엄마끼리 친구 사이여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다고 한다. 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서는 만감이 오갈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 무대에 잘 알려지고 세계적 오페라하우스들에서 주역을 맡고 있는 소프라노 조선형도 김예지와 듀오를 잘 해낸 것이 무척 기뻤던 모양이다.

이날 김예지는 아주 즐겁게 자신의 음악적 기량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과시했다. 콘서트의 타이틀은 ‘피아노 김예지, 소프라노 조선형 듀오 콘서트’였는데 그 앞에 ‘Sereni noi insieme‘(우리 함께 행복한)이라는 말이 붙어있었다. 김예지는 연주 중간 중간에 마이크를 잡고는 관객들에게 오늘 이 시간이 행복하시냐고 물었고 관객들은 박수로 답했다. 자신의 역경을 딛고 사람들에게 행복한 마음을 전해주는 그녀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날 김예지의 모습은 관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절망이 아닌 희망과 용기의 감동을 주었다. 

사람들은 아마도 김예지가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피아노를 한 덕분에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러는 참 좋은 사람들도 많아서 지금까지의 삶이 즐겁고 행복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그 일에 내 모든 생각과 감성을 쏟아부으며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고 말한다. 살면서 장애에 부딪히는 사람이 자신만이 아님을 김예지는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장애를 극복한 쪽으로 내 삶을 바라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인간 승리의 모델이 아니다. 살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장애에 나름대로 대처하는 것은 나 뿐이겠는가? 모든 사람이 다 적당히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서로 조금씩 다를 뿐이다. 나는 장애가 큰 고통도 아니었고 말하기 어려운, 장애로 인해 겪은, 눈물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뭐 그런 역동적인 사연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앞이 보이지 않아서 비교적 일찍 점자를 배워 보이지 않을 때를 대비한 것이고, 매일 음악을 듣고 또 악기도 쉽게 배우고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하게 된 것이다.” (김예지, 『피아노 앞에서 아름다운 피아니스트 김예지』)

일본 유명 피아니스트 
쓰지이 노부유키도 공연

일본 피아니스트 쓰지이 노부유키. 사진=마스트미디어 제공
일본 피아니스트 쓰지이 노부유키. 사진=마스트미디어 제공

이날 또 다른 출연자가 있었으니 안내견 ‘조이’였다. 김예지를 향한 시선은 자연스럽게 조이를 향한 시선이 된다. 조이는 김예지가 연주할 때 옆에서 얌전히 앉아 있다가 종종 일어서서는 여기 저기 두리번 거리기도 했다. 2부 성악 때는 자기 위치를 이탈하여 무대 제일 앞까지 가서 조선형이 데려오는 광경도 있었다. 국회 회의장에서는 어떤가 모르겠는데, 조이는 아직 음악에는 그렇게 심취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커튼콜 때 조이도 함께 큰 박수를 받았다. 무대 위에 있던 모두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김예지의 얘기가 나온 김에 일본의 피아니스트 쓰지이 노부유키도 함께 해도 좋을 것 같다. 선천적인 시각 장애를 갖고 태어난 노부유키가 3월 3일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그 또한 선천성 소안구증으로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캄캄한 시야의 장벽을 넘어섰다. 2009년 미국의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무대에서 뛰어난 연주력을 선보이며 공동 우승을 거두었고 그 뒤로 세계 무대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노부유키를 가리켜 '기적의 피아니스트'라고 한다. 어렸을 때는 점자 악보를 보며 곡을 익히기도 했고, 최근에는 주로 왼손과 오른손을 따로 녹음한 음원을 듣고 곡을 익힌다고 한다. 한 곡을 수없이 반복해서 들으며 통째로 외워버리고 곡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음악을 들으며 이미지를 상상한다고 한다. 남들보다 수십배의 노력을 하는 셈이다.

노부유키는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귀가 대단히 예민하다.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때는 지휘자의 숨소리를 들으며 합을 맞춘다. 실제로 팀파니 소리 때문에 지휘자의 숨을 듣지 못해 곡을 시작하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협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현장에서 숨소리 주고받는 것입니다. 리허설을 반복하면서 호흡을 맞춰가요. "

김예지도 음악을 하는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역시 피아노 연주를 할 때이다. 오랜 시간 준비해 온 곡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감상하는 시간은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연주회 준비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나와 함께 흠뻑 연주에 빠져 버릴 관객들을 생각하다 보면 그날 경험하게 될 감사와 감동의 절정을 상상하게 되고 순간 진저리를 느낀다.”

김예지가 그렇듯이 노부유키도 즐겁게 음악을 한다. 그는 음악이 즐겁다. 서울 공연을 앞두고 한국 언론들과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음악은 장애의 유무로 구별되지 않아요. 누구든 하나가 될 수 있는 수단이죠. 그러니 무조건 즐겁게 해내길 바랍니다."

우리가 예술가들로부터 받는 감동은 작품 자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런 연주와 작품들을 만들어내기까지 있었던 그들의 투혼와 노력이야말로 우리 삶을 노래하는 교향시일 것이다. 

유창선 작가. 사진=여성신문
유창선 작가. 사진=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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