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은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본다. <편집자 주>

ⓒPixabay
ⓒPixabay

군대에 가고 싶은 사람이 없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에서 정복을 입고 수업을 다니는 ROTC 후보생을 여럿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벌써 옛날 일이 됐다. 작년엔 사상 처음으로 육군에서 후보생을 추가 모집했을 정도로 최근 지원자 수가 급감했다.

‘군대의 허리’라고 일컬어지는 부사관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22년 육군 부사관 임관자는 1700여 명에 달했는데, 작년인 2023년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800여 명에 불과했다. 사회가 청년들에게 ‘직업군인 하지 마라, 군대 가지 마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부족한 자리를 여성 군인들이 채우고 있다. 현재 여군의 규모는 1만6000여 명 정도이며 간부 중 여군의 비율은 약 9%다. 보도에 따르면 여군 장교와 부사관의 임관 비율이 5년 사이 61%나 늘어났다고 한다. 이들은 지원부터 전투까지 병과를 가리지 않고 누구보다 사명감 투철한 군인으로서 국가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군대 내 성희롱 예방 애니메이션 ‘한 발씩 내딛는 평등의 시간’의 한 장면. ⓒ국가인권위원회
군대 내 성희롱 예방 애니메이션 ‘한 발씩 내딛는 평등의 시간’의 한 장면. ⓒ국가인권위원회

군대에 페미니스트 중대장, 페미니스트 사단장이 필요하다

나는 ROTC 장교로 임관해 소대장 자리를 맡아 일을 시작했다. 우리 팀에는 3명의 여성 간부가 있었다. 이들은 내가 만난 어떤 군인보다도 존경스러운 군인이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 팀이 어떤 어려운 임무를 맡아도 충분히 완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들은 성적 대상화를 당하거나 진급 등에서 차별을 겪기도 했다. 일부 남성 간부들은 이들을 동료가 아닌 잠재적 연애 대상, 나아가 성적 대상으로 바라봤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조직 내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부당함에 대해 여군 동료와 나눈 대화가 아직도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다. “보통은 참고 버텨야 합니다. 여군이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중대장님 같은 분이 있어 다행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다짐했다. 전역하는 날까지 한 명의 페미니스트 중대장으로서 소임을 다하겠다고. 자랑스러운 군인인 이들을 부당한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지키겠다고. 

한 개인이, 그것도 초급 간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분명히 할 수 있는 일들도 있었다.

여성 군인을 성적 대상으로 두고 하는 농담을 같이 웃으며 넘기지 않는 일, 여성이라는 이유로 같은 동료임에도 더 참아야 하거나 양보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모른 척 침묵하지 않는 일, 그 모든 성차별적인 부당함 앞에 서는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그 행동들이 모여, 사람을 지키고 선을 만들어냈다. 사소하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나는 내 영역 안의 감시자일 뿐이었다. 내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엔 분명 더 많은 차별과 폭력이 도사리고 있었을 거다. 전역일은 금방 다가오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에겐 더 많은 페미니스트 중대장과 페미니스트 사단장이 필요하다’고.

고 이예람 공군 중사 ⓒ연합뉴스
고 이예람 공군 중사 ⓒ연합뉴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 전에, 군대에 있는 여성을 보라

선거철을 맞아 군대와 관련된 선심성 공약을 펼치거나 20대 남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여성 징병제’를 던지는 정치인들이 부지기수다. 이들은 마치 여성이 군대에 없는 것처럼 말하며, ‘왜 군대에 가지 않느냐’고 윽박지르듯 대한다.

여성에게 군대 가라는 말을 하려면 군대가 선제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여성을 포함한 청년들에게 군대가 더 나아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군대 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2021년 모두를 분노케 한 공군 부사관 고 이예람 중사의 사망 사건이 있었다. 대한민국 공군의 유능한 부사관이었던 그는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여러 차례의 신고가 조직적으로 묵살·은폐되고, 전출된 부대에서는 2차 가해에까지 시달리다 세상을 등졌다. 우리의 군인은 누가 지키는가. 

"군인들 이마이 마이 있는데 머 갔능교? 안 만내줄라고 그라는 거 아잉교?" ⓒpixabay
ⓒpixabay

‘복무하고 싶은 군대’ 위해 ‘평등 문화’ 만들어야

‘복무하고 싶은 군대’의 핵심은 ‘평등 문화’다. 명령에 살고 죽는 군대에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는 당연한 원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나 작전이 아닌 일상에서는 보다 평등해야 한다.

소대와 중대에 돌봄 문화가 자리 잡아 전투력 보존을 돕고, 권위적이고 꽉 막힌 상관이 아닌 세련되고 스마트한 리더가 팀을 이끌고, 비합리적인 일처리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효율적인 업무 방식이 선호되는 ‘평등 문화’와 그 시스템이 자리 잡아야만 복무하고 싶은 군대로 나아갈 수 있다.

단언컨대 많은 청년과 여성을 필요로 하는 군대에, ‘평등 문화’의 도입은 문제 해결을 위한 기막힌 비대칭 전력이 되어 줄 거라 확신한다.

김연웅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본인 제공
김연웅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본인 제공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