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정책 근거 KDI 논문 보니
임신·출산·양육, 여성 생산성 저하 요인으로 봐
여성의사 노동 생산성 90%로 간주
66세 이상 여성의사는 81%

서울대의대 함춘여자의사회(회장 김나영), 이화여대의대 동창회장(회장 임선영), 연세대의대 여자동창회(회장 이승헌), 고려의대 여자교우회(회장 전혜정), 가톨릭대 의대 여성동창회(회장 김찬주), 분당서울대병원 여교수회(회장 최성희), 연세대의대 여교수회(회장 박미숙) 총 7개 단체가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성차별 발언 논란’을 일으킨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연합뉴스
서울대의대 함춘여자의사회(회장 김나영), 이화여대의대 동창회장(회장 임선영), 연세대의대 여자동창회(회장 이승헌), 고려의대 여자교우회(회장 전혜정), 가톨릭대 의대 여성동창회(회장 김찬주), 분당서울대병원 여교수회(회장 최성희), 연세대의대 여교수회(회장 박미숙) 총 7개 단체가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성차별 발언 논란’을 일으킨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연합뉴스

“여성 의사 비율 증가, 남성 의사와 여성 의사의 근로 시간 차이까지 분석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지난 20일 의대 증원 정책 근거를 설명하면서 한 발언이 ‘여성 의사 성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박 차관은 27일 ‘여성 의사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했다. 고발에 나선 서울대의대 함춘여자의사회(회장 김나영)를 포함해 7개 여성 의사 단체는 이날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차관 발언은 여성 의사가 남성 의사와 비교할 때, 온전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깊은 좌절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수급 추계 방법론 설명일 뿐, 성차별 발언은 한 적 없다’며 일축했다.

논란의 불씨가 된, 복지부가 정책 근거 자료로 삼았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 보고서를 살펴봤다. 연구진은 임신·출산·양육을 생산성 저하 요인으로 간주하고, ‘여성 의사는 남성보다 생산성이 낮다’는 전제로 여러 분석을 시도했다. 여성 의사들은 이 보고서 자체가 “편파적”이라고 봤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의 ‘여성 의사 성차별 발언 논란’을 부른, 복지부가 의대 증원 정책 근거 자료로 삼았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 보고서. ⓒKDI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의 ‘여성 의사 성차별 발언 논란’을 부른, 복지부가 의대 증원 정책 근거 자료로 삼았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 보고서. ⓒKDI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2023년 작성한 이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국내 의사 인력 규모 전망치를 총 5가지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그중 ‘노동시장 이탈 위험률의 성별 격차’, ‘성별‧연령별 노동생산성 감소’를 반영한 시나리오가 3개다.

이에 따르면 여성 의사는 남성보다 빨리 퇴직하거나 중도 휴직해 노동시장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 시간도 남성보다 적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여성 의사의 노동 생산성을 90%로 간주해 분석했다. 다른 시나리오에선 66세 이상 여성 의사의 노동 생산성을 81%로 계산했다.

여성 의사의 진료 행위 유형이 특정 과목에 편중돼 인력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연구진은 복지부 통계, 미국의사협회 내과학회지(JAMA Intern Med.) 게재 연구 결과 등을 인용해 이같은 분석을 제시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 보고서 내용. ⓒKDI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 보고서 내용. ⓒKDI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 보고서 내용. ⓒKDI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 보고서 내용. ⓒKDI

“여성 의사 인력이 남성 의사 인력에 비해 노동시장에서 빨리 이탈하고 근로 시간이 적은 경향이 있어 실효 인력 측면에서 전문과목 의사 인력 규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성 의사 인력의 전문과목 선택은 내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영상의학과 등에 집중된다. (...) 정형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의 30~34세 여성 활동의사 인력 비중은 0%이다. 현재 의과대학 입학생의 성비를 고려할 때 향후 여성 의사 인력의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여성 의사인력의 편중된 전문과목 선택 경향은 향후 일부 전문과목의 의사 인력 규모에 영향을 미치고 전문과목별로 인력 수급 불균형 문제가 확대될 소지가 있다.” (182쪽~183쪽)

박 차관 고발에 나선 여성 의사들은 이 보고서 자체가 “편파적”이라고 본다. 고발대리인인 박현화 변호사는 “의료분야별 편차가 있는데 일부 과목, 의사 근무시간 등 일부 내용만을 조사했다. 객관적이지 않고 타당성도 없다”고 반박했다.

고발인 대표 김나영 서울대의대 함춘여자의사회장은 “이번 문제는 여성 의사뿐 아니라 일하는 여성들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여성이 전체 의사 집단의 약 25%, 의대생의 약 35%에 이르고, 전 분야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있다. 정부는 (여성을 탓할 게 아니라) 일·가정 양립을 통한 저출생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서울대의대 함춘여자의사회(회장 김나영), 이화여대의대 동창회장(회장 임선영), 연세대의대 여자동창회(회장 이승헌), 고려의대 여자교우회(회장 전혜정), 가톨릭대 의대 여성동창회(회장 김찬주), 분당서울대병원 여교수회(회장 최성희), 연세대의대 여교수회(회장 박미숙) 총 7개 단체가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성차별 발언 논란’을 일으킨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이세아 기자
서울대의대 함춘여자의사회(회장 김나영), 이화여대의대 동창회장(회장 임선영), 연세대의대 여자동창회(회장 이승헌), 고려의대 여자교우회(회장 전혜정), 가톨릭대 의대 여성동창회(회장 김찬주), 분당서울대병원 여교수회(회장 최성희), 연세대의대 여교수회(회장 박미숙) 총 7개 단체가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성차별 발언 논란’을 일으킨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이세아 기자

의료계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기피 인력’이었다. 만연한 성차별이 이미 여러 조사로 확인됐다. 전국 국립대병원 중 5곳이 지난 2010년~2020년까지 11년간 여성 정형외과 전공의를 단 한 명도 선발하지 않았다. 3곳은 여성 전문의와 전임의도 뽑지 않았다. 

여성 의사 52.6%(394명)가 전공 선택 단계(전공의 선발)에서부터 ‘성차별을 겪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남녀 모두 출산·육아·가사 문제를 성차별 이유 1위로 꼽았다(한국여자의사회, 남녀의사 1174명 대상 ‘의료계 양성평등 현황’ 설문조사 결과, 2018). 여성 의사의 58.7%(436명)는 성별을 이유로 전공과목 선택에 제한이 있을 거라는 말을 듣거나 커피 심부름 등을 강요받은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여성 의사가 이처럼 전공, 업무 선택 시 제한이나 차별을 겪은 비율은 남성의 약 3.3배였다(인권의학연구소·국가권익위원회,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2018).

전문가들은 성평등한 의료계를 만들려면 여성 의사들이 출산·육아·돌봄과 노동을 모두 떠맡는 구조, 끝내 경력중단을 겪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복지부가 정책 근거 자료로 삼았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 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추계 연구’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여성 의사는 출산이나 육아 때문에 이직이 불가피하거나, 당직·야근이 어려운 상황이 많으므로 이에 대한 지원이 요구됨(122쪽)”

“수도권에 의사들이 집중되고 최근 공보의의 숫자가 감소(여성 의대 진학률 증가, 군필 대학원 과정에 진입하는 사람들 증가)하면서 필수 공공의료를 담당할 인력 부족: 최근 COVID19 사태 이후 자원인력의 헌신으로 부족함을 메우고 있으나 구조적 원인 규명 및 필수 인력 확보 필요)(357쪽)”

저출생 시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과 삶의 균형이 정부 정책의 주요 기조로 떠오른 시대, 여성은 더는 ‘기피 인력’일 수 없다. 김채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지난 23일자 프레시안 칼럼 ‘이젠 ‘여성 의사’ 갈라치기?…복지부 차관의 ‘女의사 발언’에 대해’에서 “임신과 출산, 양육을 비선호 노동자의 조건처럼 여기는 인식을 바꾸고, 기업과 노동시장 문화를 바꾸지 못한다면 저출생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대상화에서 비롯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인권 침해 문제들 역시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피상적인 숫자 놀이가 아닌 양성평등과 다양성, 통합이라는 본질에 기초한 정책을 통해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책임을 다하기 바란다”는 여성 의사들의 지적을 새겨들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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