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달집태우기’ 4월 빌모트 재단서 개최
관객 참여-몰입형 전시...한국 전통과 현대미술 만남
고향 경북 청도 세시풍속 ‘달집태우기’서 영감 얻어
이탈리아 20대 여성 큐레이터 기획

작품을 제작하는 이배 작가.  ⓒ정재호 촬영/조현화랑 제공
작품을 제작하는 이배 작가. ⓒ정재호 촬영/조현화랑 제공
이배 작가의 고향 경북 청도에 설치된 달집. ⓒ정재호 촬영/조현화랑 제공
이배 작가의 고향 경북 청도에 설치된 달집. ⓒ정재호 촬영/조현화랑 제공

음력1월15일 정월대보름 밤, 청솔가지와 짚단을 쌓아 ‘달집’을 만든다. 사람들은 각자의 소원을 한지 조각에 적는다. 달집에 묶어 함께 태우며 송액영복과 풍년을 기원한다.

우리 전통문화 ‘달집태우기’다. 올해 지구 반대편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현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배 작가 개인전 ‘La maison de la Lune Brulee (달집태우기)’다. 작가의 고향 경북 청도의 세시풍속과 현대미술이 만난다. 베니스비엔날레 공식 연계 부대 전시로, 오는 4월20일부터 11월24일까지 이탈리아 베니스 빌모트 재단에서 개최된다. 2019년 이후 이배 작가가 다시 빌모트 재단에서 여는 전시다.

“제 근원으로부터 출발하는 전시입니다.” 이배 작가는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1964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많은 분들과 협업해 여는 전시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이고, 이번 전시를 통해 제가 새롭게 나아갈 길이 생겼으면 한다. 이 전시를 통해 제게 큰 변화가 생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숯의 작가’다. 프랑스 파리에서 우연히 바비큐용 숯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해 지난 30년 넘게 숯이 갖는 물성에 천착해 왔다. “숯을 통해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한다.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2018년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기사장을 수훈했다. 지난해 뉴욕 록펠러센터 채널가든에 높이 6.5m, 폭 4.5m, 무게 3.6톤의 검은 숯더미 형상의 조각 ‘불로부터’를 설치했다.

이배 작가. ⓒ조현화랑 제공
이배 작가. ⓒ조현화랑 제공
이배 작가가 개인전 ‘La maison de la Lune Brulee (달집태우기)’에서 선보일 비디오 설치작 ‘버닝(Burning)’ 렌더링 이미지. ⓒ조현화랑 제공
이배 작가가 개인전 ‘La maison de la Lune Brulee (달집태우기)’에서 선보일 비디오 설치작 ‘버닝(Burning)’ 렌더링 이미지. ⓒ조현화랑 제공

이번 전시는 관객 참여-몰입형 전시다. 이배 작가는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소원을 모아 전통 한지 조각에 옮겨 적어 지난 24일 청도에 설치한 달집에 묶어 함께 태우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비디오 설치작 ‘버닝(Burning)’(2024)이다. 빔 프로젝터 7대를 사용해 빌모트 재단 입구에서 주 전시공간으로 이어지는 복도 벽면에 투영, 전시 기간 상영된다.

전시공간 입구엔 대형 평면작 ‘불로부터(Issu du Feu)’(2024)가 우뚝 선다. 절단된 숯이 타일처럼 배열되고 마감돼 영롱한 심연의 빛을 띠는 작품이다. 관객의 발걸음은 바닥과 벽면에 굽이치는 ‘붓질 (Brushstroke)’(2024) 설치작 3점으로 이어진다. 이탈리아 제지 회사 파브리아노(Fabriano)의 친환경 제지를 전통 ‘배첩(marouflage)' 기법으로 바닥과 벽에 도배하고 청도의 달집이 남긴 숯을 도료 삼아 그린 작품이다. 여백의 미가 앞선 ‘버닝’의 가득함과 대조를 이룬다.

이배, Oblique, 2022, Charcoal ink on paper.  ⓒ김상태 촬영/조현화랑 제공
이배, Oblique, 2022, Charcoal ink on paper. ⓒ김상태 촬영/조현화랑 제공
이배 작가가 개인전 ‘La maison de la Lune Brulee (달집태우기)’에서 선보일 작품 ‘먹’ 준비 과정.  ⓒPicture by Nicola Gnesi/조현화랑 제공
이배 작가가 개인전 ‘La maison de la Lune Brulee (달집태우기)’에서 선보일 작품 ‘먹’ 준비 과정. ⓒPicture by Nicola Gnesi/조현화랑 제공

안쪽 공간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검은 화강암을 깎아 세운 ‘먹(Inkstick)’(2024)이 서있다. 높이 4.6m의 조각으로 한국 전통 서예문화 문방사우의 그 ‘먹’을 상징한다. 이렇게 한지 위의 획과 농담이 받아낸 명상과 성찰, 비움과 채움의 공간을 구성할 계획이다. 

전시는 베니스의 운하로 이어지는 빌모트 재단의 뜰로 이어진다. 설치 작품 ‘달(Moon)’(2024)이 관객을 기다린다. 내벽은 파브리아노 제지로 표구하고, 천장의 노란 유리 패널에서 내려오는 빛이 베니스의 라구나와 청도의 달집을 비추는 달빛을 연상케 한다.

붓 없이 허공에 붓질하는 퍼포먼스 영상도 선보일 계획이다. “그림만 그리기보다 조각, 설치, 영상 작업을 작업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그런 작업을 통해 새롭게 열려 가는 듯합니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고민을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새로운 걸 하려고 합니다.”

이배 작가는 앙리 마티스가 남프랑스 방스 로사리오 성당에 남긴 작품들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목탄으로 그린 성직자 그림에서 겸허함, 영성을 느꼈죠. 제 전시에서 사람들이 그런 느낌을 받는다면 좋겠습니다.”

세계는 한국 미술에 주목하고 있다. 이배 작가가 바라는 것은 동양 문화예술의 가치가 더욱 널리 인정받는 미래다. “작가로서 가장 안타까운 게 서양인들이 동양 문화예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죠. 내가 모네를 이해하는 것만큼 세상 사람들이 겸재 추사를 이해했으면 하는 뜨거운 열망이 있어요. (이번 전시가) 사라져가는 옛 것이 현대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를 생각하고 동양을 이해하는 하나의 코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발렌티나 부찌 큐레이터와 이배 작가가 20일 서울 강남구 1964빌딩에서 열린 이배 작가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개인전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발렌티나 부찌 큐레이터와 이배 작가가 20일 서울 강남구 1964빌딩에서 열린 이배 작가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개인전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전시를 이탈리아 출신 1995년생 여성 독립 큐레이터가 기획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발렌티나 부찌(Valentina Buzzi)는 2023년 이탈리아 유력 잡지 아르트리뷴 선정 ‘최고의 젊은 이탈리아 큐레이터’로 뽑혔다. 현재 한국외국어대 국제대학원에서 문화학 석박사 통합과정을 이수 중이다.

부찌는 이번 전시가 “현대 예술이 아시아의 전통과 예술을 어떻게 다시 읽을 것일까,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라고 했다. 한국의 전통에 담긴 철학과 지혜, 나아가 ‘전통’이 동시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역할과 가능성을 가졌는지 묻는다.

안영주 뮤지엄산 관장이 20일 서울 강남구 1964빌딩에서 열린 이배 작가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개인전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영주 뮤지엄산 관장이 20일 서울 강남구 1964빌딩에서 열린 이배 작가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개인전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솔재단뮤지엄 산과 빌모트 재단이 공동 주관하고 조현화랑이 협력·후원, 경북 청도시, 주이탈리아대한민국대사관, 주이탈리아한국문화원, 주한이탈리아대사관, 주한이탈리아문화원, 페로탕갤러리, 에스더쉬퍼갤러리, 파브리아노가 후원한다. 안영주 뮤지엄산 관장은 “이배 작가가 지극히 동양적, 한국적인 작품을 선보여 왔다는 점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의 흐름에 주목해 온 뮤지엄산과 방향이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평소 성원하고 싶은 작가로 주목해 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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