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태아 생명보호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고 부모 권리 필요 이상 제약"

헌법재판소 ⓒ연합뉴스
헌법재판소 ⓒ연합뉴스

남아선호 사상에 따른 여아 임신중지를 막기 위해 마련됐던 ‘태아 성 감별 금지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28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해 재판관 합헌 의견 3명, 위헌 의견 6명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결정에 따라 해당 조항이 즉시 무효가 되면서 임신부 등은 임신 주수와 상관 없이 태아의 성별을 의료진에 문의할 수 있게 됐다.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 재판관)은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태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낙태 행위의 전 단계로 취급해 제한하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로 태아의 성별을 비롯해 태아에 대한 모든 정보에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는 부모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라며 "(금지 조항은)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고 강조했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이종석 소장, 이은애·김형두 재판관)은 다수 의견의 주된 취지에 동의하면서도 32주라는 현행 제한 기간을 앞당기는 게 맞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으므로 국가는 낙태로부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태아의 성별 고지를 앞당기는 것으로 개정해 침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단순 위헌결정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수단을 대안 없이 일거에 폐지하는 결과가 되므로 타당하지 않다"며 "태아의 성별 고지를 제한할 필요성은 계속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나 임부를 진찰하거나 검사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을 임부, 임부의 가족, 그 밖의 다른 사람이 알게 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는 과거 남아선호 사상에 따른 여아 임신중지를 막기 위한 조항이나, 최근 '저출산(저출생)이 심해지고 남아선호가 거의 사라진 현재 부모의 알권리를 위해 태아의 성별 고지를 보다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앞서 헌재는 2008년 임신 기간 내내 성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이 헌법에 맞지 않는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의료법은 임신 32주가 지나면 성별을 고지할 수 있도록 이듬해 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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