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마이 라이프]
예순 넘어 시작한 도예로 국내외서 개인전
한옥·유럽 주택 등 ‘도자 건축’으로 인기
칠순에 프랑스 리모주 도자축제 초청돼
“더 깊은 예술의 근원 탐구하고파”

김현 작가는 나이 예순이 넘어 도예를 시작했다. ‘도자 건축’ 장르를 확장해 나가며 지난 10년 넘게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이세아 기자
김현 작가는 나이 예순이 넘어 도예를 시작했다. ‘도자 건축’ 장르를 확장해 나가며 지난 10년 넘게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이세아 기자

나이 예순이 넘어 도예를 시작했다. 수십 년간 살던 서울을 떠나 경기도 이천에서 흙과 함께 지냈다. 65세에 이천시립박물관 초대전으로 생애 첫 전시회를 열었다. 70세에 프랑스 도예 중심지 리모주에서 열린 도자 축제에 한국 대표 작가 중 하나로 초청됐다.

아이들에게 영어와 문학을 가르치던 선생님, 두 딸의 엄마, 도예가. 김현(74) 작가에겐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내가 세상을 향해 창을 하나 열었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고, 생존하려고 시작했다가 작가로 소개되고 전시도 하네요.”

김현 작가의 도자 가구 ‘여왕의 꿈’. 100×40×185cm. 이 작품으로 70세에 프랑스 도예 중심지 리모주에서 열린 도자 축제에 한국 대표 작가 중 하나로 초청됐다. ⓒ김현 작가 제공
김현 작가의 도자 가구 ‘여왕의 꿈’. 100×40×185cm. 이 작품으로 70세에 프랑스 도예 중심지 리모주에서 열린 도자 축제에 한국 대표 작가 중 하나로 초청됐다. ⓒ김현 작가 제공
김현 작가의 ‘도자 건축’ 작품들. ⓒ이세아 기자
김현 작가의 ‘도자 건축’ 작품들. ⓒ이세아 기자
김현 작가의 ‘도자 건축’ 작품들. ⓒ이세아 기자
김현 작가의 ‘도자 건축’ 작품들. ⓒ이세아 기자
김현 작가의 ‘도자 건축’ 작품들. ⓒ이세아 기자
김현 작가의 ‘도자 건축’ 작품들. ⓒ이세아 기자
김현 작가의 ‘도자 건축’ 작품들. ⓒ이세아 기자
김현 작가의 ‘도자 건축’ 작품들. ⓒ이세아 기자
김현 작가가 지난 2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조상권도자문화재단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김현 작가가 지난 2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조상권도자문화재단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그릇, 오브제를 거쳐 이제 그는 ‘도자 건축’이라는 자신만의 장르에 몰두한다. “‘집’이 주는 그리움과 위안, 안식처라는 근원에 대한 갈구”가 모티브다. 노르웨이 베르겐 브뤼겐 거리의 고풍스러운 목조주택들, 가우디의 독창적인 건축물, 체코 프라하에 있는 카프카의 생가 등 유럽에서 본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한 손 크기의 도자 모형으로 빚었다. 한국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도 도자기에 불어넣었다. 조선 후기 지방 사대부 가옥을 축소 재현한 듯한 ‘한옥 사대부의 집’은 담대한 스케일과 섬세한 세부 묘사가 인상적이다.

전문 교육은 한 번도 받은 적 없다. 자신의 두 손과 직관, 훈련으로 이룬 결실이다. “요즘 가장 의욕에 불타요.” 2023년부터 2024년 3월 초 현재까지 전국 곳곳에서 네 차례 전시를 열었다. 오는 17일까지 서울 성수동 갤러리스테어에서 그의 도자 건축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요즘은 선덕여왕이 세웠던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딴 도자기를 빚고 있다. 스케치 후 면적을 계산해 적당한 두께로 흙판을 만들고 재단한다. 한 층 한 층 따로 작업해 이어 붙여서 가마에 넣는다. 지붕 처마 모양처럼 균형을 맞춰 세밀하게 선을 긋는 까다로운 작업에만 긴 시간이 걸린다. 

“흙이 물을 만나면 언제나 부드러워져요. 일단 모양이 잡혀 굳어지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집스럽게 변하고요. 또 흙과 흙의 성질이 다르면 밀어내요. 아무리 해봐도 붙질 않아요. 작업을 할수록 새로워요. 시작은 쉽지만, 흙의 물성이 주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감내하고 살살 달래야만 하는 일이에요. 불에 들어가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죠. 만족할 만한 건 열 개 중 두 개 정도예요. 그래도 ‘못하겠다, 때려치우자’보다 ‘알았어, 다음엔 이렇게 해보면 나아지려나’ 싶어요.”

‘결혼이 최고의 취업’이던 1970년대에 김현 작가는 이화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당시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25.3%에 불과했다. 대학을 나와도 여성은 취직하기 힘든 시대였다. 남성들과의 경쟁을 뚫고 취직해도 결혼하면 경력이 끊겼다. 김현 작가는 직장을 그만두기 전까지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해외여행이 엄격히 제한되던 시절, 어학연수를 떠나는 아이들을 인솔해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시야를 넓혔다. 언제나 문학과 예술을 사랑했고, 두 딸을 무사히 키워 손주들을 보는 나이에 이르러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의 삶은 조상권 광주요 도자문화재단 원장과 재혼해 이천 모가면으로 이주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산자락에 지은 집과 거대한 오름가마, 스튜디오가 새로운 삶의 무대가 됐다. 시골 생활의 적적함도 달랠 겸 도자를 빚기 시작했다.

어느 날 조 원장을 만나러 온 이천시청 큐레이터가 김현 작가의 작업들을 보더니 ‘전시를 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2013년 이천시립박물관 기획초대전으로 작가 데뷔전을 치렀다. 2016년 재단을 방문한 프랑스 리모주 부시장도 프랑스에서 전시를 열자고 했다. 이후 국제성모병원 갤러리 초대전, SK하이닉스 행복미술관 초대전, 아산병원 갤러리 초대전, 경희의료원 갤러리 초대전 등 여러 전시를 개최했다. 누군가에겐 그리운 추억을, 누군가에겐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로 호응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 공예적인 작업을 선보였다면 앞으로는 더 발전시켜서 심원한 예술의 근원과 맞닿아 가는 길을 발견하고 싶어요. 개별 작품들을 하나로 묶어서 근사한 설치미술을 완성해 보고도 싶고요. 이런 생각을 하느라 밤에 벌떡 일어날 때도 있어요.”

김현 작가가 스튜디오 앞마당에 조성한 한국 전통 도자 정원. ⓒ이세아 기자
김현 작가가 스튜디오 앞마당에 조성한 한국 전통 도자 정원. ⓒ이세아 기자

김현 작가는 정원을 돌보는 일에도 푹 빠졌다. 뒷마당이 하늘로 뻗은 숲이다. 산자락에 자란 나무들이 정원을 이루고, 집을 둘러싼 산책로가 됐다. 스튜디오 앞마당에 심은 나무들을 가지치고, 잡초를 뽑고, 수선화와 튤립을 심고, 블루베리, 부추, 아스파라거스, 허브 등 텃밭도 가꾸느라 분주하다.

“도자도 정원 일도 열심히 하면 달라져요. 가사노동처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과는 달라요. 식물들을 키워 보니 땅 아래로 굉장히 깊이 뿌리를 내려요. 나도 새로운 곳에 그렇게 뿌리를 내린 것 같아요. 엄청난 도전이었고 잘했다, 참 잘했다고 가끔 스스로 칭찬해요.”

반평생 도시에서 살던 그에게 이천 전원생활은 깊은 깨달음을 준다. “알퐁스 도데가 ‘별’에서 ‘밤은 사물들의 시간’이라고 했죠. 아름다운 문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늘 밝고 소란한 도시를 떠나 자연 곁에서 살아보니 이해가 돼요.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나뭇잎이 바람에 날려 부딪히는 소리, 뭔가 꼬물꼬물하는 소리.... 그런 지각의 순간들이 전율처럼 찾아와요. 자연이 주는 새로운 은총을 매일 경험해요. 시인과 작가들이 쓴 말을 나는 이제야 이해해요.”

그가 누리는 행복한 일상 곁에는 엄마의 도전을 열렬히 응원하고 지지하는 두 딸이 있다. 큰딸은 최근 엄마를 따라 도예를 시작했다.

길어진 인생, 앞으로 뭘 해야 할까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일단 손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보라”고 조언했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시작하면 매 순간이 좌절이에요. 너무 비장하지 않게, 재미있게 시작해 보세요. 아니다 싶으면 또 다른 걸 하면 돼요. 돌아서서 가지 않은 다른 길로 가면 돼요. 그러다 진짜 자기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거죠. 우리가 각자의 기록을 충실히 남기다 보면 ‘허스토리’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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