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의전화 ‘2023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
19시간마다 1명의 여성 살해·살해 위험 당해
피해여성 자녀·반려동물까지 살해하는 가해자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가 여성에게 장미를 건네고 있다. ⓒ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가 여성에게 장미를 건네고 있다. ⓒ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잠자는데 불을 켜서” “텔레비전 전원을 끄지 않아서” “휴대전화 잠금을 풀어주지 않아서” “내 말을 듣지 않아서” “맞아야 말을 들어서”

지난해 최소 138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이 같은 이유로 살해됐다.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최소 311명)까지 포함하면 568명에 달한다. 이 수치는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분석한 결과다. 최소 19시간마다 1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해있다. 주변인 피해까지 포함하면 최소 15시간마다 1명이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23년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분석한 ‘2023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를 세계여성의 날인 8일 발표했다. 이 통계는 언론에 보도된 최소한의 수치로 실제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사건을 포함하면 친밀한 관계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한 여성의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해자가 여성을 소유물로 보고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살인을 저질러도 된다고 인식”

총 568명의 피해자 중 연령대를 확인할 수 있는 291명을 분석했을 때, 피해자 연령대는 40대가 23.37%(68명)로 가장 높았고, 30대 20.96%(61명), 50대 19.93%(58명), 20대 17.53%(51명)로 그 뒤를 이었다. 60대 8.93%(26명), 70대 이상은 4.12%(12명), 10대는 5.15%(15명)로 연령을 가리지 않고 피해가 발생했다.

범행 동기는 “(피해 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해서”(53명·23.2%)라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홧김에, 싸우다가 우발적’(22.8%),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의심 등 이를 문제 삼아’(14.9%)는 등의 이유가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가해 남성들은 “연락이 끊겨서”, “여행 가자는 것을 거부해서” 등 온갖 이유를 들었다. 

한국여성의전화 ‘2023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의전화 ‘2023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 ⓒ한국여성의전화

가해자는 범행이 ‘홧김에, 싸우다가 우발적’(117명, 20.60%)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범행 동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보고 피해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살인을 저질러도 된다는 가해자의 인식이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가해자들은 ‘이혼·결별을 요구하거나 재결합·만남을 거부해서’ 104명(18.31%),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의심 등 이를 문제 삼아’ 80명(14.08%), ‘자신을 무시해서’ 25명(4.40%) 등의 순으로 범행의 이유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통제를 벗어나거나, 벗어나려는 시도를 할 때 피해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 주변인 피해 
반려동물까지 포함하면 최소 119건 

여성 살해 사건은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자 주변인과 반려동물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미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피해 사례 중 119건(20.95%)이 피해자의 자녀, 전·현 배우자·애인 등 피해자의 주변인 피해로 나타났다.

이 중 반려동물에게 위해를 가한 경우가 23건으로 주변인 피해의 19.32%에 달했다. 피해자의 눈앞에서 피해자의 반려동물을 죽이거나, 피해자가 키우는 고양이를 세탁기에 돌려 살해한 사례 등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범죄에서 반려동물 피해는 심각하나, 이에 대한 가해자 처벌이 미약하고, 피해자가 반려동물과 함께 지원받을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배우자 관계에서 발생한 주변인 피해는 자녀 피해가 33명(49.25%)으로 가장 많았고, 반려동물 피해가 18건(26.86%)으로 그 뒤를 이었다. 한편 데이트 관계의 주변인 피해는 전체 34건 중 전/현 배우자·애인 피해가 11명(32.35%)으로 가장 많았고, 동료·친구 등 지인(17.64%)이 뒤를 이었으며, 부모‧자매‧형제 등 친인척과 반려동물 피해가 각각 5명(건)으로 전체의 각 14.70%를 차지했다.   

한국여성의전화 ‘2023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의전화 ‘2023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 ⓒ한국여성의전화

15년간 친밀한 남성의 여성살해 최소 1379명
1.79일에 1명의 여성, 죽거나 살해 위험 겪어

2009년부터 2023년까지 지난 15년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 피해자는 최소 1379명에 달한다. 살인미수 등까지 포함하면 3058명, 피해자의 주변인까지 포함하면 3773명이다. 15년간 최소 1.79일에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놓여있다. 하지만 여전히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와 관련 공식 통계는 마련돼 있지 않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정확한 실태 파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22년 여성가족부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따라 여성폭력 발생 현황 등에 관한 통계를 처음 발표했으나, 기존의 파편적인 실태조사를 조합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단체는 “언제까지 언론에 보도된 한정된 정보만을 가지고 여성살해 실태를 파악해야 하는가”라며 “국가는 이제라도 성평등 관점에서 여성살해 문제를 바라보고 개인의 일탈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로서 여성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제대로 된 통계는 그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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