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마이셀프 2024 클래스
이정혜 도잠 대표·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강연

이정혜 도잠 대표. ⓒ이세아 기자
이정혜 도잠 대표. ⓒ이세아 기자

좋은 가구는 삶을 음미하게 한다. 사람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끔 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모처에서 열린 (사)여성문화네트워크의 ‘러브 마이셀프 2024 클래스(Love Myself 2024 Class)’는 우리 일상의 풍경을 바꾸는 가구와, 그 가구를 만들고 향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이정혜 도잠 대표는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가구를 연구하고 제작한다. 얇지만 단단한 특수 소재 합판을 짜맞춰 가볍고도 견고한 가구를 만든다. 못이나 나사를 쓰지 않고 조선 전통 목가구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한다.

“합판이 가구를 만들기에 까다로운 소재인 건 맞지만, 유연하면서도 강한 게 여성을 닮았죠. 나무의 온전한 결을 볼 수 있어서 아름답고요. 재단하고 나면 가벼워져서 여성의 힘으로도 충분히 조립하고 돌릴 수 있어요.”

도잠은 “여성성이 드러나는 가구”를 추구한다. 실제로 도잠의 가구는 여성 작업자들이 직접 만든다. 여성의 힘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옮길 수 있는 가구여야 한다. 손잡이를 달거나, 힘주어 미는 것만으로도 쉽게 옮길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애초에 가벼운 합판 소재를 쓰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또 누구나 다치지 않게 안전하고 편안하게 쓸 수 있는 가구여야 한다. 모서리를 둥글거나 모나지 않게 처리하는 등 마감에도 신경을 쓴다.

“도잠은 여성의 힘으로 일군 회사예요. 제가 여성으로서 느낀 한계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가구이기도 하고요. 조선 목가구가 지닌 단아하고 군더더기 없는, 힘이 있으면서도 유연하고 다정한 느낌을 좋아합니다. 여성의 손으로 그런 것을 완성하고 싶어요.”

지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가 2월29일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여성신문의 ‘Love Myself 2024 Class’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지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가 2월29일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여성신문의 ‘Love Myself 2024 Class’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지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가 2월29일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여성신문의 ‘Love Myself 2024 Class’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지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가 2월29일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여성신문의 ‘Love Myself 2024 Class’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의자만큼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지닌 가구도 없다.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을 지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는 유럽 등 서구권을 중심으로 한 의자 디자인 변천사를 들려줬다.

로마 귀족들이 누워서 만찬을 즐길 때 사용하던 트리클리니움(triclinium), 왕이나 권력자의 권위를 드높이는 수단으로 쓰였던 포테유(fauteuil) 등 호사가들의 가구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최초의 대량생산 가구 중 하나이자 ‘의자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토넷(Thonet), 강철관 의자(tubular steel chair), 합판 의자(plywood chair) 등 근현대 주요 가구 디자인 이야기도 들려줬다.

코르셋을 찬 여성이 기진맥진해 셰즈 롱그에 누워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셰즈 롱그는 ‘기절 의자’(fainting couch)로도 불렸다. ⓒVictoria Albert Museum, London
코르셋을 찬 여성이 기진맥진해 셰즈 롱그에 누워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셰즈 롱그는 ‘기절 의자’(fainting couch)로도 불렸다. ⓒVictoria Albert Museum, London

특히 ‘여성을 위한 의자’였던 셰즈 롱그(chaise longue)가 어떻게 ‘여성을 대상화하고 억압하는 의자’로 쓰였는지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여성을 그린 서양미술 명화나 여성 톱스타들의 화보에 자주 등장하는 다리를 쭉 뻗고 누울 수 있을 정도로 긴 안락의자다. 18~19세기 서유럽 상류사회에서 널리 쓰였다는 이 의자는 코르셋을 너무 세게 조인 탓에 어지럽고 불편해하는 여성을 위한 의자이기도 했다. 여성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던 많은 화가들은 모델들에게 셰즈 롱그에 관능적으로 누운 자세를 주문했다. 김신 칼럼니스트의 말을 빌리면 “여성들을 떠받치는 듯 억압했던 시절의 산물”이다.

르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레, 샬로트 페리앙이 공동 디자인한 의자 LC4. 페리앙이 직접 모델이 됐다. ⓒCourtesy of Louis Vuitton Foundation
르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레, 샬로트 페리앙이 공동 디자인한 의자 LC4. 페리앙이 직접 모델이 됐다. ⓒCourtesy of Louis Vuitton Foundation

후대의 가구 디자이너들은 여성의 관능미를 보여주는 도구가 아닌, 편안한 휴식을 위한 가구로서의 셰즈 롱그에 주목했다. LC4 셰즈 롱그가 대표적인 사례다. 르코르뷔지에와 그의 사촌 피에르 잔레, 샬로트 페리앙 3인이 공동 디자인했다. 의자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다리가 45도 이상 각도로 구부러지는데 무척 편안하다. 디자이너들이 참조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동시대 독일 디자이너 안톤 로렌츠의 실험 결과 사람의 허벅지와 종아리가 45도 이상 구부러지는 자세가 가장 편안한 자세라는 결론이 나왔다.

LC4 셰즈 롱그 홍보용 사진을 촬영할 때 모델로 나선 샬로트 페리앙은 얼굴을 돌려 카메라를 외면한 채 의자에 누웠다.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겠다는 어떤 의지가 보이는 듯하죠.”

‘러브 마이셀프 2024 클래스’는 오는 6월27일까지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 열린다. (사)여성문화네트워크(대표 박선이)가 폭넓은 경험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나만의 취향을 찾고 나를 이해하는 장을 만들고자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를 빛나게 할 스타일링부터 가구, 음악, 디저트까지 일상을 아름답게 채우는 법을 알려준다. 더 자세한 내용과 참가 방법은 온라인 신청 웹페이지(https://forms.gle/4wLxR9FxF8tfFKk46)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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