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가 지난해 11월 22일 업주와 종사자들의 반발에도 성매매 업소 집결지인 파주읍 연풍리 이른바 '용주골'의 법규 위반 건축물에 대한 강제 철거에 나선 가운데, 철거 용역 업체 직원들이 통유리를 철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파주시가 지난해 11월 22일 업주와 종사자들의 반발에도 성매매 업소 집결지인 파주읍 연풍리 이른바 '용주골'의 법규 위반 건축물에 대한 강제 철거에 나선 가운데, 철거 용역 업체 직원들이 통유리를 철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앰창’이라는 욕을 아는가? ‘니 애미 창녀’라는 뜻이다. 초등학교 때 또래들 사이에서 가장 모욕적인 욕으로 쓰이곤 했다. 하지만 진짜 우리 엄마가 창녀라면? 그리고 우리 엄마가 창녀이면 안 되는 이유는 뭐지?

나의 첫 번째 직업은 모 경제지의 기자였다. 취재원이 잘못 걸린 날이면 나를 데리고 장르를 알 수 없는 유흥업소에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노래방 도우미로 유추되는 여성 분이 있었는데, 그 여성분이 노래를 부르고 나가면 뒤이어 헐벗은 남자가 들어와서 춤을 췄다. 그리고 그 다음은 내 차례였다. 취재원들은 자연스럽게 내 허리를 만지려고 했고, 내가 그래서 멀리 떨어져 앉으면 멋쩍게 연 기자는 무뚝뚝하다고 구시렁댔다. 나는 그때 고민했다. 그 순간에 그들을 나의 성으로 구워삶는 것도 여자 기자의 덕목인가? 나는 그 경험을 그 회사에 다니는 동안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왜 취재원한테 성희롱을 당했다고 동료에게 말하지 못했을까? 그것이 나의 무능력으로 평가될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미 나의 성은 노동의 영역에 있었다.

내 곁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성노동을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들은 나에게 소중하고 중요하며 존경스러운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은 나의 소중한 동료이고 삶의 자원이다. 나는 그 친구들이 있어 삶을 지탱해나가고 있다. 그중에는 청소년도 있고 비(非)청소년도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는 이미 엄마이며 앞으로 엄마가 될 것이다. 그러니 ‘앰창’ 따위는 욕이 될 수 없다. 창녀가 엄마든, 엄마가 창녀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성노동자들의 존재가 다른 여성들의 성까지 사고파는 것으로 만든다는 말을 자주 본다. 그럼 성노동자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성들의 성은 사고파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난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자였을 때처럼 여성의 성은 오히려 은밀하게, 예쁘다는 말로, 융통성 있다는 말로, 사근사근하다는 말로, 멋지다는 말로, 유능하다는 말로 덧씌워져서 정당하지 않게 그림자처럼 팔려 다닐 것이다. 성노동자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성노동을 모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성이 어떻게 사고 팔리는지 알 수 없게 될 뿐이다. 성노동이 존재해서 성이 사고 팔리는 것이 아니라 ‘성’만 정당한 노동으로 사유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노동’으로 사유해야 한다.

서른 살이 넘은 여성인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 중에 생활비를 감당할 만큼 임금을 주는 일은 많지 않다. 대학원생인 나에게 돈을 빌려주는 1금융권 은행 또한 없다. 내가 나를 살려야 하는 절박한 순간, 성노동이 가장 빠른 선택지인 세상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성노동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성노동이 나를 살린다면 나는 기꺼이 성노동을 할 것이다. 모든 노동은 서로 다르다. 성노동이 다른 노동과 다른 것은 딱 그 정도 차이이다. 하지만 성을 노동으로 사유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가 성노동을 모든 노동과 다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정말 성노동이 수치스러운 노동이고, 사람들을 성노동으로부터 구출하고 싶고, 성노동을 근절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지금 존재하는 성노동자들에게 먼저 귀를 기울이고, 성노동자의 인권을 다른 노동자들의 인권과 다르지 않게 존중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성매매 집결지인 파주시 용주골을 일방적으로 폐쇄하겠다고 발표하고, 지난 3월에는 용주골 성노동자와의 어떠한 논의도 없이 시의회 본회의에서 ‘탈성매매 실현 방안’을 논의하고 멋대로 예산을 편성했다. 3월 5일에는 파주시 학부모와 시민으로 구성된 반 성매매 시민활동단 ‘클리어링’ 40여 명이 아이들이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통학로 조성을 촉구한다며 ‘성매매 집결지 폐쇄 촉구 학부모·시민 기자회견’을 열었다. 마치 용주골 성노동자와 그 가족 가운데는 양육자도, 어린이·청소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어린이·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성노동자를 쫓아내서 성노동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성노동과 성노동 집결지의 역사에 대한 알 권리이다. 어린이·청소년의 존재를 ‘보호’라는 이름으로 도구화하여 성노동자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탄압하는 데 이용하고, 성노동자의 삶을 어린이·청소년의 삶과 분리하여 혐오하는 파렴치한 일이 반복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앰창’, ‘엄마 창녀’는 엄연히 어린이·청소년의 삶에 놓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연혜원 『퀴어돌로지』 기획 및 공저자
연혜원 『퀴어돌로지』 기획 및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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