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 "변호사로서 윤리규범 준수했다"면서 사퇴
지역구 여성 공천자 10%대 상황에서 여성계 역시 고통스러운 선택
남녀 떠나 '국민의 대표' 자질 논의 필요
‘여성 30% 할당’ 대신 특정 성 60% 초과 금지’ 검토해야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의 스틸컷.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The Devil’s Advocate, 1997)‘이 떠올랐다. 30년 가까운 오래 전에 개봉한 영화가 내 뇌리에 갑자기 소환된 까닭은 한 여성 공천자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재판에 이기고 돈을 벌기 위해 흉악한 범죄자를 옹호하고 마침내 악마로 변해가는 변호사를 그렸다. 제자 성희롱 혐의로 기소된 대학교수와 아내와 아들 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억만장자를 유죄임을 직감하면서도 온갖 언변으로 옹호해 승소를 거듭하던 영화 속 변호사 모습이 최근 한 공천자의 과거 행적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면 과잉 반응일까.

민주당 서울 강북을에 공천된 조수진 변호사는 후보가 된지 3일만에 사퇴했다(민주당은 22일 한민수 대변인을 다시 공천했다. 또 다시 현역 의원은 아니었다). 이 분은 사퇴의 변에서 “변호사로서 언제나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 전 사과문에서 "과거 성범죄자 변론과 블로그 홍보는 변호사로서 윤리규범을 준수하며 이뤄진 활동”이라고 했던 것과 적어도 일관성은 있어 보인다. 

이 분 말마따나 성범죄 피의자도 방어권이 있고 법률조력을 받을 수 있다. 변호사로서 성범죄 피의자를 변호한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공천 전후로 불거진 여러 건의 변호 사례가 일반적인 사회통념을 벗어난 한마디로 선을 넘었다는 데에 있다.

여러 건이 있지만 두 건에 질려버렸다. 하나는 초등 4학년 여아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해 성병에 걸리게 한 태권도 관장을 변호하며 아버지 등 다른 성인으로부터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고 피해자가 ‘작화증’(상상을 현실로 인식하는 정신병의 일종)을 앓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며 2차 가해를 가한 것이다.

또 하나 30대 여성 환자를 성추행한 한의사를 변호하면서 피해자에게 “피해자답지 않다”고 주장했고 성범죄 혐의자에게 ‘강간 통념’(여성이 거절했더라도 실제로는 관계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 통념)을 적극 활용하라고 홍보한 것에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이게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을 했다고 자기 소개한 이의 과거 행적이다. 믿기는가?

조수진 변호사.  ⓒ연합뉴스.
조수진 변호사. ⓒ연합뉴스.

자진 사퇴의 모양새로 일단락되었지만 이 건은 여성계를 고통스럽게 했다. 여성계는 그동안 줄곧 정치권을 향해 여성 공천자가 턱없이 적다고 비판했었고 지역구 한자리도 아쉬운 판에 ‘사퇴/공천 취소’라는 이례적인 요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를 용납할 수 없었다. 변호사로서 그의 행적은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고 그 중 상당수가 미성년자인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 특히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에게 또 다른 올가미를 씌우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국민의 대표라는 점에서 자격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정치네트워크의 표현을 빌리면, “국회의원이라는 입법기관의 공직자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차별을 극복하고 법의 공정성을 회복하며, 약자와 소수자의 기회의 균등을 위해 노력하는” 남녀를 떠나 그런 인물이 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제 22대 총선에 출마할 후보가 모두 정해졌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22대 총선에서도 양당의 여성 후보비율은 10%대에 그쳤다. 지역구 기준 국민의힘 11.8%(30명), 민주당 17.1%(42명)이다. 양당은 모두 ‘전체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제47조 제4항) 이행에 노력을 덜했고 같은 내용이 들어 있는 자당의 헌법(당헌)도 지키지 않았다.

이제 별 도리가 없다. 여성 후보자들이 대거 생환하기를 빌 뿐이다. 여성계는 여의도 입성한 이들과 앞으로는 ‘여성 30% 할당’이 아니라 ‘특정 성 60% 초과 금지’로 바꿔 본격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민의 대표기관이 성평등해지는 날이 언제나 올까? 오기는 할까? 여의도 근처에도 가지 않은 총선과 무관한 사람이 후보등록 마감일인 22일 하루종일 여러 상념으로 머리가 아프고 입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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