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 ⓒAP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AP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25일(현지시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즉각적인 휴전과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결의를 개전 이후 처음으로 채택했다.

안보리는 이날 공식회의를 열어 이 같은 결의안을 이사국 15개국 중 14개국의 찬성으로 채택했다. 미국은 거부권 행사 대신 기권을 택했다.

이번 결의안은 한국을 포함한 선출직 비상임 이사국 10개국을 의미하는 'E10'(Elected 10)이 공동으로 제안했다.

새 결의는 이슬람 금식성월인 라마단 기간 분쟁 당사자의 존중 하에 항구적이고 지속 가능한 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내용도 담았다.

아울러 의료 및 기타 인도주의적 필요에 대처하기 위해 인도주의적 접근의 보장을 요구하는 내용을 함께 담았다.

또 구금된 모든 사람과 관련해 분쟁 당사자가 국제법상 의무를 준수하도록 요구했다.

결의에는 인도주의적 지원의 유입 확대가 시급히 필요하며 가자지구 전체의 민간인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도 담겼다.

안보리가 가자지구 사태와 관련해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보리 결의는 국제법상 구속력을 지닌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즉각적이고 지속 가능한 휴전, 즉각적인 인질 석방 담보, 인도주의적 지원 등 이번 결의에 담긴 목표들이 지난주 미국이 제출했다가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된 결의안에도 담겼다고 강조했다.

그는 "휴전은 첫 번째 인질 석방과 즉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며 "따라서 우리는 하마스가 그렇게 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격앙된 이스라엘 "미국, 유엔에서의 정책을 포기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가자지구 휴전 요구 결의가 미국의 기권 속에 처음으로 채택된 데 대해 이스라엘은 강력히 반발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25일(현지시각) 유엔 안보리 결의 직후 성명을 통해 "인질 석방 조건이 없는 휴전을 지지한 결의안에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전쟁 내내 유지해온 (미국의) 입장과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총리실은 "미국의 기권은 국제사회의 압박을 통해 인질을 풀어주지 않고도 휴전이 허용된다는 희망을 하마스에 심어줌으로써 (이스라엘의) 전쟁과 인질 석방 노력에 해를 끼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은 오늘 유엔에서의 정책을 포기했다"고 비난했다.

성명은 또 "이번 결정은 전쟁이 시작된 이래 안보리에서 일관된 미국의 입장에서 분명한 후퇴"라며 "하마스가 우리 인질을 석방하지 않고 휴전을 할 수 있도록 국제적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은 인질 석방 조건이 없는 이번 결의안에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면서 미국에 대표단을 보내기로 한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에 대표단을 보내기로 한 결정을 취소했다.

성명이 언급한 대표단은 앞서 네타냐후 총리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전화 통화에서 합의한 것으로, 양국 대표단은 피란민이 몰려 대규모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대한 지상전을 논의하기로 했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자히 하네그비 국가안보보좌관과 네타냐후 총리의 최측근인 론 더머 전략 담당 장관이 대표단으로 미국에 갈 예정이었다.

이스라엘 각료들도 잇따라 안보리 결의를 비난했다.

카츠 외무부 장관은 안보리 결의 이후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이스라엘은 포격을 멈추지 않겠다"며 "하마스를 궤멸시키고 마지막 인질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썼다.

미국을 방문 중인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은 본국에서 성명을 내어 "이스라엘은 모든 인질이 돌아오기 전에 가자 전쟁을 중단할 도덕적 권리를 갖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제 부랑아' 경고한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백악관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군사작전 논의를 위한 정부대표단 파견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온라인 브리핑에서 "(대표단 방문은) 라파 지상(작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실행가능한 대안을 놓고 충분한 대화를 위한 것"이라면서 "대표단이 워싱턴DC에 오지 않는 것은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커비 보좌관은 또 이날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우리의 정책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인질 협상의 일환으로 휴전을 일관되게 지지해왔으며 결의안은 현지 진행 중인 협상을 인정하고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하마스 규탄 등 우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표현이 최종 결의안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결의안을 지지할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커비 보좌관은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의 방미에 대해 "오래전 계획된 것으로 이스라엘 대표단과는 별개"라고 말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라파에 대한 전면 공격은 실수"라며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우려될 뿐 아니라 이스라엘 안보 역시 약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밀러 대변인은 안보리 결의 채택에 대해선 "결의안이 우리의 정책과 양립 가능하다고 보며, 이스라엘 정부의 기조와도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이스라엘 정부와 지난 24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블링컨 국무장관과 갈란트 장관이 이날 만나 가자 전쟁 상황 등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을 예정이라고 확인했다.

CNN은 바이든 행정부 관리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인 위기가 악화되거나 장기간 계속될 경우 '국제적인 부랑아(pariah)'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미국이 유엔 안보리 표결에서 기권한 뒤 "미국이 군사적, 외교적으로 중요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CNN은 "네타냐후에 대한 바이든의 인내심도 약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의 기권을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역사적인 동맹국들을 위기로 몰아넣고 장기간 지속되는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두 국가의 해결책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오랜 목표를 점점 더 무시한 데 따른 것이라로 보도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과 네타냐후의 극우 정부 사이의 근본적인 갈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전쟁 중단에 대한 미국의 요구는 이미 정치적 경계를 넘어섰다.

바이든의 대선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주말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전쟁을 끝내고 평화에 도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자신이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대안을 거부한다면 바이든은 자신의 좌절검을 공개적으로 표출할 것인지 또 잠재적으로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축소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수도 있다.

화약고 '라파'

25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공격받은 라파의 건물에서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5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공격받은 라파의 건물에서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은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정기적으로 접촉했으며, 그 논의에서 휴전은 인질 석방과 병행되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이 변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네타냐후 총리를 포함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하마스의 마지막 주요 거점이라고 주장하는 라파에서 대규모 지상공세를 벌이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백악관 관리들은 한 달 넘게 우려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미국 관리들은 이스라엘의 라파 지상전이 인도주의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또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군의 지시로 가자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 대피한 140만 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담은 취소됐지만 애초에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지는 미지수였다. 

네타냐후 총리는 일요일 저녁 이스라엘은 미국의 도움 없어도 라파를 침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도전적인 발언은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이 이스라엘이 지상 침공을 감행할 경우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이후 나왔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과거에도 일부 상반된 발언이 있었고 미국은 때때로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전쟁이 시작된지 5개월이 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독설이 무성하다도 보도했다.

미국 관리들은 이스라엘의 잇단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라파 작전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네타냐후 정부의 일부 관리들이 다음 단계의 전쟁을 촉발할 시기라고 경고했던 라마단은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갈등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가운데 시작됐고 또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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