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발언에
한국여성단체연합 "성노예제 문제를 외교와 국방문제로 치환시켜" 비판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용원 국가인권위 군인권보호관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앞은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연합뉴스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용원 국가인권위 군인권보호관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앞은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의 여성인권 현황을 설명하는 독립보고서를 국제연합(UN)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김용원 상임위원이 한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인권위의 문제제기를 “단호하게 반대”했으며, 국민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이유에 “국가안보를 흔들려는 시도가 포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은 26일 성명을 내고 김용원, 이충상 등 인권위 상임위원들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피해자 존엄 회복이라는 보편적 여성인권 의제를 외교와 국방문제로 치환시켰다"고 비판했다.

앞서 인권위는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6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여성차별철폐협약 가입국으로서 한국의 여성인권 현황과 인권위의 개선의견을 정리한 독립보고서의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제출을 의결한 바 있다.

CEDAW는 다음 달 정부가 제출할 협약 이행 보고서 심사에 인권위 보고서를 주요 자료로 사용하게 된다. 인권위는 보고서에 여성정책, 인신매매, 유리천장 등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한국은 일본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사실인정, 진상규명 및 공식 사과 등을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았다.

여연이 비판한 발언은 보고서 심의 과정에서 나왔다. 이날 김 위원은 “우리가 앞으론 이 같은 치욕을 당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는 것과는 별개로,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나서서 ‘한국은 일본에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사과 및 피해자 배상 등을 촉구해야 한다’고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합의한 회담을 언급했다. 그는 “당시 정부가 졸속하게 처리했다 하더라도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한일 간 합의가 이뤄졌다. 이를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예전 문제를 거듭 제기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이 고 채수근 상병 사건의 수사와 관련해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이 고 채수근 상병 사건의 수사와 관련해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국제정세와 국가안보를 거론하며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항의하는 국민 대부분은 순수하겠지만, 대한민국 국가안보의 기초와 기반을 흔들려는 시도도 포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주장을 두고 위원 간 논쟁이 벌어졌다. 남석훈 상임위원은 “현재와 미래를 향해 여러 고민을 해야 한다. 지금 정부의 손해배상을 권고하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동조했다. 반면 남규선 상임위원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제기를 뺀 보고서 제출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일”이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제기를 보고서에 포함하는 것에 대한 표결을 진행했다. 참석한 위원 10명 중 송두환 위원장을 포함한 6명이 찬성해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해당 내용을 보고하기로 결정했다. 보고서에 포함된 여성정책 후퇴, 인신매매, 부성주의 개선 등은 일부 내용을 수정해 보고하기로 정했다. 다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반대가 더 많아 채택되지 않았다.

표결 이후 김용원·이충상 등 일부 위원들은 “보고서가 인권위의 통일된 의견인 것처럼 보내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며 보고서에 반대 의견을 삽입하자고 주장했다. 보고서 분량제한 등의 이유로 반대 의견을 넣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고, 반대 의견을 낸 위원의 이름을 각주에 기재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경로이탈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공동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할 인권위원회 독립보고서를 원안대로 제출하라고 촉구했다. ⓒ박상혁 기자
경로이탈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공동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할 인권위원회 독립보고서를 원안대로 제출하라고 촉구했다. ⓒ박상혁 기자

김용원 위원은 지난 11일 제5차 전원위원회에서도 같은 취지로 발언해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그는 "현 국제정세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로 이어지는 블록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필요한데 자꾸 일본군성노예제 타령을 해 반일감정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며 보고서 통과를 막았다.

이에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80여개 시민단체는 12일 성명을 내고 “여성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존엄을 지키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회를 실현해야 하는 인권위 상임위원들이 자신들의 책무를 완전히 방기하고 회의 석상에서 망언과 궤변을 늘어놓음으로써 차별과 배제, 혐오 논리를 재생산·강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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