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자회·전국여성노동조합 정책 발표
주 35시간 근무제·지역 내 좋은 일자리
돌봄노동자 노동권 보장·성차별적 괴롭힘 규율 제정
특수고용노동자 등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여성 노동자들이 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5대 성평등 노동 정책’을 발표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여성 노동자들이 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5대 성평등 노동 정책’을 발표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여성 노동자들이 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8일 ‘5대 성평등 노동 정책’을 발표했다.

5대 성평등 노동 정책은 404명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5개 분야 23개 과제로 제안된 정책 중 ‘나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을 고르는 설문조사를 2월 26일부터 3월 11일까지 실시해 도출한 결과다.

여성 노동자들이 뽑은 5대 성평등 노동 정책은 △노동자의 돌봄권이 보장되는 일터 △청년 여성 노동자의 독립된 삶이 보장되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일터 △성별임금격차가 해소된 성평등한 일터 △예방과 근절을 중심으로 하는 안전한 일터 △모두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리는 사각지대 없는 일터이다.

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가지 정책은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각 정당은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본 정책들을 실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먼저 ‘성평등한 삶과 일이 공존하는 노동자의 돌봄권이 보장되는 일터’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는 ‘주 35시간 근무제’가 꼽혔다. 이들 단체는 “현재 많은 정당에서 ‘주4일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주4일제는 임금 삭감 없는 실질적 노동 시간 단축이 전제돼야 한다”며 “법 밖의 노동자들에게도 과노동이 일상화된 현실이다. 기준 노동 시간의 단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웹툰 작가인 정화인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사무장은 현장 발언을 통해 “최근 연구 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는 평균 주 51시간을 일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정 사무장은 “우리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법정근로시간을 보장받지 못한다”며 “창작노동자들이 이렇게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의 표준화된 노동시간 자체가 너무나 비정상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5대 성평등 노동 정책’을 발표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여성 노동자들이 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5대 성평등 노동 정책’을 발표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청년 여성 노동자의 독립된 삶이 보장되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일터’를 위해선 ‘지역 내 지속 가능한 좋은 일자리’가 중요 과제로 꼽혔다. 이들 단체는 “지역의 청년 여성 노동자들은 나고 자란 지역에서 살아가고 싶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저임금의 불안정한 여성 집중 일자리뿐”이라며 “중앙 정부와 지자체들은 모범 사용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다하고 지역 내 기업에 성평등한 일자리를 제공하도록 견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밍갱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는 실제 대구의 청년 여성 노동자의 경험 사례를 들며 “대구 지역 청년 여성의 일자리는 불안정하다”며 “지난 2021년 여성노동자회가 ‘90년대생 여성노동자 실태조사’를 한 결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들은 대체로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대구는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전국에 비해 실업률이 높고 임금 수준도 낮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로기준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업장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채용성차별 또한 전국 평균보다 심각했다”고 지적했다.

성별임금격차가 해소된 성평등한 일터와 관련해선 ‘돌봄노동자 노동권 보장’이 전제로 꼽혔다. 이들은 “돌봄일자리는 대부분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서비스 영역에 속한다. 이들의 임금과 노동 조건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라며 “돌봄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은 정부가 마음만 먹고 예산을 투여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 사회서비스원을 폐쇄하고 저임금의 이주가사돌봄노동자들을 들여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돌봄은 국가의 책임”이라며 “공공성 강화가 필요하고 양질의 돌봄 서비스를 위해선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김유정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 조직국장은 시간제 돌봄 전담사의 발언을 대독했다. 김 국장은 “현재 정부는 기존 학교 돌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늘봄’이라는 정책을 덮어씌우려 하고 있다”며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을 통합 개선한 늘봄학교를 올해 2분기부터 모든 초등학교에 운영하겠다는 교육부의 발표에 따라 학교 현장은 매우 혼란스럽다. 실무책임자가 없으니 늘봄학교 업무가 돌봄전담사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좋은 돌봄을 아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선 안정된 노동 환경이 전제돼야 한다”며 “시간제로 압축된 노동과 불안정한 자원봉사자들로는 질 높은 보육이 나올 수 없다”고 규탄했다.

예방과 근절을 중심으로 하는 안전한 일터를 위해선 ‘성차별적 괴롭힘’ 규율이 필요하다. 이들은 “여성비하적 언행, 성차별적 업무 관행, 여성혐오적 조직 문화, 상사들의 심기수발 요구, 꾸밈 노동, 외모 품평 등 차별이자 괴롭힘이지만 관행으로 취급되며 문제로 수용되지 않는다”며 “성차별적 괴롭힘을 금지하는 광의의 성차별 중 하나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미국과 유럽연합(EU), 캐나다 등처럼 한국 사회에서도 성차별적 괴롭힘을 문제로 인식하고 규율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5대 성평등 노동 정책’을 발표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여성 노동자들이 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5대 성평등 노동 정책’을 발표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최수영 서울여성노동자회 상담실장은 성차별적 괴롭힘 사례를 들며 “성차별이라는 문제 제기에 ‘성차별은 없다’고 뭉개지 말라”며 “‘이것이 성차별’이라고 말하는데 ‘저것도 보라, 역차별’이라며 논점을 흐리지 말라. ‘이것’도 ‘저것’도 성차별이라면 모두 바꾸어내면 될 일”이라고 했다. 최 실장은 “성차별에 대한 논의는 남녀 갈라치기를 하려거나 여성만 잘 살겠다는 선동이 아니다”라며 “성별의 다름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모두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리는 사각지대 없는 일터를 위해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었다. 이들 단체는 “여러 정당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노동법’을 제정하겠다고 공약했다”며 “일하는 모든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을 ‘노동자’라고 인정하는 노동법의 변화, 근로기준법 안에서의 노동자 정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주영 전국여성노동조합 상록 CC분회 분회장은 20년 동안 캐디로 일하고 있다. 이 분회장은 “정부는 캐디를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해 부당한 해고를 당해도 법적 보호나 근로자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며 “그러니 회사도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저는 아이를 출산한 이유로 회사에서 배척당하고 해고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고용신분이 어떤 근거로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는지 매 순간 억울함을 느낀다”며 “정부와 국회는 특수고용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법률과 정책을 만들어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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