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사례로 본 매니페스토 운동

선거에서 ‘매니페스토’ 개념은 1834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제시됐지만, 선진 정치문화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60여 년이 흐른 뒤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매니페스토추진본부 등이 연 토론회에서 발표된 이현출 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의 해외 사례 분석에 그 과정이 상세히 나와 있다.

매니페스토의 대표적 모범국인 영국의 경우 97년 토니 블레어 노동당 당수는 ‘노동당과 국민의 계약’에서 10대 비전을 제시하는 매니페스토를 발표했고, 결국 이것이 선거에서 노동당의 승리를 이끌었다. 교육 최우선 원칙을 명시하고 ‘청년 실업자 25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5∼7세 아동의 학급 규모를 30인 이하로 줄인다’ ‘5년간은 소득세 증액을 하지 않는다’ ‘입원 대기 환자 수를 10만 인으로 줄인다’ 등 반드시 실현할 사항들을 제시했고, 무엇보다 이에 필요한 재원에 관해 구체적이고 분명한 방안을 밝혔다. 일례로 입원 대기 환자 수를 줄이는 사항에 대해 현 국민의료서비스를 효율화해 1억 파운드를 염출, 재원에 충당한다 등이다. 이 같은 매니페스토는 2년간 2회에 걸쳐 각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작성된다.

영국, 집권후 이행 평가에도 적극적

문제는 정권을 획득한 뒤 선거에서 제시됐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는 매니페스토가 어떻게 담보, 실현되느냐는 문제. 영국의 경우 총선 후에 내각이 구성되고 내각 중에 ‘내각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집권정당의 매니페스토를 기초로 예산편성 사업을 담당하게 된다.

또 행정 각 부의 대신과 재무대신은 매니페스토의 달성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목표를 명시한 ‘합의문서’를 교환하고, 목표치가 달성되지 못한다면 소관 대신이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이와 함께 매니페스토에 대한 공개적 평가도 병행된다.

노동당의 경우 97년 매니페스토의 177개 공약에 대한 연차보고서를 발표해 항목별로 ‘달성 완료’ ‘진행 중’ ‘미착수’ 등으로 나누어 평가했고, 2001년 총선 당시 매니페스토에선 지난 4년의 집권기간의 성과나 미달성 이유 등을 분석해 공표했다.

일본, “매니페스토 없이 이길 수 없다”

2003년 매니페스토가 도입돼 정책 중심의 정당 대결이 본격화된 일본의 경우 같은 해 통일지방선거에서 매니페스토를 제시한 후보 14명 중 7명이 현 지사로 당선되는 성과를 낳았는데, 이들 7명 중 무려 5명이 신인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후 지역 정치인과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매니페스토 네트워크가 크게 확산됐다. 이어서 2003년 말 중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매니페스토 도입을 위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돼 중참의원 선거에 매니페스토가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그 결과 2003년 11월 총선거, 2004년 7월 참의원 선거, 2005년 9월 총선거 등 세 번의 선거를 통해 매니페스토를 제시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을 정도로 매니페스토형 선거가 정착되고 있다.

미국, 각 정당 강령이 매니페스토 역할

        

미국의 경우 전당대회에서 채택하는 대통령 공약에 해당하는 당 강령이 매니페스토 역할을 한다.

이는 ‘플랫폼’(Platform)이라 불리는데, 실제 공약 달성도는 평균 70% 정도. 미국 대선에선 추상적 정치 슬로건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지만 80년 레이건 후보의 선거캠페인에선 조세개혁 등 구체적 공약을 많이 제시했고, 92년 대선에선 민주당 클린턴 후보가 국내 경제정책, 의료·복지 개혁을 쟁점으로 내걸면서 ‘미국 재생의 시나리오’란 부제를 달아 정책공약집을 출판했다. 결국 이것이 현직 부시 대통령을 누른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94년 중간선거에선 공화당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의 발의에 의해 하원 본회의에서 개원 후 최초 100일간 채택할 것을 약속하는 10대 정책 공약을 ‘아메리카와의 계약’이란 타이틀로 국민에게 제시, 하원에선 40년 만에, 상원에선 8년 만에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개가를 올렸다.

독일, 정책선거 평가에 점차 높은 관심

독일에서는 매니페스토란 명칭보다는 ‘선거강령’(Wahlprogramm)이란 용어를 쓰는데, 최근 ‘선거매니페스토’(Wahlmanifest)란 말이 점점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선거를 앞두고 국영방송 ZDF가 베를린과 쾰른의 독일경제연구소에 위탁해 작성한 ‘2005 연방의회선거를 위한 선거강령 판단’이 발표돼 선거매니페스토 평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평가엔 5개 정당의 선거강령에 명시된 노동시장·조세·연금보험·의료보험 4개 정책 분야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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