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원칙과 신념으로 보수영국 최장기 총리 ‘우뚝’

마거릿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는 1925년 10월 13일 그랜덤이라는 인구 3만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그곳의 여학교를 거쳐 명문 옥스퍼드대학에 진학했다. 정치와는 무관한 화학과였지만 보수학생클럽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적극적인 학생활동을 통해 정치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정치에 관한 야망을 포기하지 않은 그녀는 53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 59년 보수당 소속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며, 61∼64년 연금·국민보험부 정무차관, 70∼74년 교육·과학장관을 지냈다. 그리고 75년 E 히스를 물리치고 영국 최초의 여성 당수(보수당)로 선출되었다. 79년 노동당의 L J 캘러헌 내각이 의회에서 불신임 결의를 당하고 해산된 직후 치러진 총선거에서 보수당이 승리함으로써 대처는 드디어 영국 최초의 여자 총리에 취임했다.

대처는 집권 후 긴축재정을 실시하여 영국의 경제 부흥을 이룩했고, 82년의 포클랜드전쟁에서도 뛰어난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다.

또 83∼87년 실시된 총선거에서 보수당이 승리, 3기를 연임함으로써 영국 사상 최장기 집권의 총리가 됐다.

그 후 과감한 사유화 및 민영화와 노조의 와해, 교육·의료 등 공공분야에 대한 대폭적인 국고지원 삭감 등 획기적인 정책 추진과 독단적인 정부 운영 등으로 ‘철(鐵)의 여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90년 유럽 통합 반대 입장을 고수하다가 당 지도부의 반발을 사게 되어 자진 사임했으며, 91년 5월에 정계를 은퇴했다. 하지만 92년 남작 작위(케스티븐의 대처 남작)를 받고 귀족회의인 상원의원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가장 보수적인 사회의 전형인 영국에서 그것도 보수당의 당수요 또한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기까지 대처의 인생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역시 그녀의 가정환경이라 할 수 있다. 대처가 자란 가정은 빅토리아 시대의 미덕인 소박하고 정직한 태도, 자조정신과 약자에 대한 보살핌의 정신이 넘치고 있었다. 마거릿 대처의 사고와 행동에 중요하게 작용한 감리교적 신앙심과 더불어 빅토리아 시대의 유산도 그녀의 인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처는 언제나 ‘확신 있는 정치인’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는데 이것은 그녀 안에 자유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적 원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까닭에 세인들은 그녀를 신자유주의자로 묘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녀에게 정치 입문의 꿈을 키워준 아버지의 영향을 감안할 때, 훌륭한 정치인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이는 결국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의 정치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재삼 인식케 한다.

그녀의 집권기 동안 이렇다 할 여성정책이나 훌륭한 여성 정치인 하나 배출하지 못한 것에 대해 21세기적 관점에서의 아쉬움과 정치적 공과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극히 보수적인 사회에 태어난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정치인의 정상에 오른 대처의 성과는 여전히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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