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의 향방은

여성 표에서 진보와 보수의 경계는 흐려지고 중도층은 점점 더 두터워지고 있다.

지난 9일 ‘서울신문’이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 응답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인 49%가 자신의 이념 성향을 ‘중도’라고 답했다. 진보는 28.9%, 보수는 22%에 그쳤다. 남성 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중도가 43.5%로 가장 많았고, 보수 28.5%, 진보 28.1%가 뒤를 이었다.

중도로의 대이동은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포착되는 현상이다. 15일 ‘한겨레’가 실시한 ‘국민 이념 성향 추적’ 여론조사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국민 이념의 중도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에는 보수가 43.8%로 가장 많고 중도는 30.4%에 그쳤던 반면, 올해는 중도가 47.4%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보수는 36.2%에 머문 것이다.

이에 대해 김형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은 “실제 생활과 동떨어져 있는 보혁 갈등에 끼어들기보다는 경제 살리기 등 실용노선으로 국민 의식이 이동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과거 진보세력의 주축을 이루던 386세대와 대표적 보수층인 수구세력이 중도로 자리를 옮긴 영향도 크다는 설명이다.

남녀 모두 중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근소한 차이긴 하지만 남성(43.5%)에 비해 여성(49%)의 진보 성향이 높다는 조사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특히 학력과 소득이 높을수록 자신의 이념 성향을 진보라고 답한 여성이 많다는 결과는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은 남성과 비교할 때 향후 여성 진보층의 약진을 기대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김 부소장은 “대표적인 남성지배구조로 지적받았던 호주제가 폐지되고,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총리가 나오는 등 사회가 여성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진보적 성향을 가진 여성층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양성평등이 강화될수록 여성 진보층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한계도 존재한다. 같은 조사에서 진보적 여성 유권자의 32.6%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를 찍겠다고 답한 것이다. 진보적 남성 유권자의 35.3%가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를 택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한나라당은 15일 ‘한겨레’ 설문조사에서 5개 정당 중 가장 보수적인 정당으로 꼽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부소장은 “진보라는 단어를 들으면 변화와 개혁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오세훈 후보가 한나라당에 적을 두고 있긴 하지만 당 내부 변화와 개혁에 노력했던 점들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여성 진보세력 사이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세훈 후보가 개혁적 인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강금실 후보 역시 검찰개혁을 진두지휘한 개혁적 인물이지만 국민이 체감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 김 부소장의 분석이다. 그는 “강금실이 아닌 오세훈에게 표를 주겠다는 것은 아직까지 여성 진보층의 방향성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한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여성의 진보 약진이나 국민의 중도 대이동 흐름은 이번 지방선거 표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결론부터 말하면,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방선거보다는 총선, 총선보다는 대선에서 정치적 이념의 중요성이 더 크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김 부소장은 “이번 지방선거는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에 이념 성향 정도가 표심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강금실 후보 역시 여당 후보라는 점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켜 여성 후보라는 상징성이나 개혁성 등 긍정적 요인들이 묻혀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15일 행정자치부가 작성한 선거인명부 결과에 따르면 여성 유권자가 남성보다 57만 명이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여론조사에서 40대 이상 여성의 투표율이 같은 연령대의 남성을 훨씬 앞질렀다. ‘부동층’이라 일컬어지는 중도층에 국민이 대거 편입하고 있는 흐름에서 여성 표가 어느 곳에 던져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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